근원의 시간 속으로 - 지구의 숨겨진 시간을 찾아가는 한 지질학자의 사색과 기록
윌리엄 글래슬리 지음, 이지민 옮김, 좌용주 감수 / 더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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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다고들 한다. 태양계로 나갈 것도 없다. 당장 우리가 사는 지구만 보더라도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우리의 존재는 한없이 미약해 보인다. 이전에 지구과학 책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우리 인간은 지구에 못 할 짓을 많이 한다. 자연에 자본주의가 침투하던 시절에는 아예 이 사실을 자각하지도 않았다면, 이를 어느 정도 인지한 지금은 기존의 자본주의에 정치적 관계까지 얽히면서 더욱 난항을 겪고 있다. '넷 제로'가 인류 공동의 목표로 삼으면서도 결국 탄소배출권 '시장'이 열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서 환경 관련 책은 볼수록 쳇바퀴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지구의 숨겨진 시간을 찾기 위해 그린란드 빙하에서 야영했던 지질학자의 사색과 기록을 담은 것으로, 기존의 과학/환경 책과는 궤가 약간 다르다. 주제가 아닌 내용의 측면에서 보면, 과학책보다도 저자의 사색이 담긴 에세이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저자는 자연스럽게 문명과는 멀어지고 야생과는 가까워지면서 《월든》 같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월든》이 현대 문명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면, 이 책은 정반대로 그 어떠한 비판 없이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나는 이 점이 《근원의 시간 속으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순수과학인 지질학만큼이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의 조화가 눈에 띈다.


"나는 야생에서 펼쳐지는 생사의 보편성에 경탄하고 있었다. 툰드라 표면에는 새의 뼈와 북극여우의 두개골, 순록의 뿔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진화론적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 증거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새하얀 땅 위를 어두운 음영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미래는 계속해서 뼈의 표면에서 탄생하고 있었다."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환경 보존'을 촉구하는 유명 인사들을 통해, 우리는 모두 환경 문제가 '심각'하며 지구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수술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정치적·경제적 공학을 떠나서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에도 서로 다른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으며(예: 오션클린업), 한번 시행된 수술은 되돌리기 어렵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 책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진단'하는 사람의 아주 순수한 이야기다.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도서출판더숲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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