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이 소금통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뒤로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과 로마 황제들과 무수한 철학자들과 시인들이 미친 듯이 그것을 다시 주워 담으려 애쓰는 모습은 우스울 정도다. 그러나 이미 소금은 세상에 흩뿌려져 아무리 닦아내려 해도 결코 닦아낼 수 없다.

똑똑히 들었는가? 오직 그런 사람만 남는다. 다른 것은 모두 사라진다. 역사도 끝나고 자연도 무너져 막이 내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세계 역사와 자연보다 크고 지성의 모든 극점과 전체 우주보다도 크다. 그 모두를 합한 것보다 크다. 알겠는가?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시시한 존재일지라도 그 사람은 기뻐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거한다.

그들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마냥 솔깃한 개념으로 쓰라린 인생에 달콤한 설탕을 뿌린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낭만주의로 무서운 죄를 유화시킨다. 천국만 남기고 지옥도 개작하여 없애 버렸다. 유혹과 마귀에 관한 한 그들은 현실을 외면한 채 굳어진 미소로 일관하며, 이미 세상을 다 이긴 척한다.

늘 자연 종교의 꿀 신(神)과 잘 지내는 쪽이 더 쉬웠다. 교회와 교회의 설교에 소금이 있으면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금은 우리 인간의 환부와 아픈 데를 쏘고 찌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 없는 치유를 원할 뿐더러 아픈 데를 떠올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서 세상은 금송아지만 아니라 꿀 신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잊고 싶기 때문이다.

소금과 빛에는 공통적인 중요한 속성이 있다. 쓸모 있게 되려면 둘 다 자신을 내주어야 한다. 다른 무언가와 섞여 스스로 희생되어야 한다.

이를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려면 당연히 소금통에서 나와야 한다. 소금통은 안정감을 느끼고 좋다. 그곳에는 선한 사람들이 있어 편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전체 음식물 속으로 내보내기가 무척 어렵다. 그들은 세상을 타락의 길로 가게 내버려두면서 어차피 구원을 잃은 세상이라고 자위한다. 그들은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물들거나 정치 때문에 더럽혀지거나 내면생활에 해를 입을까 봐 두려워한다.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분은 먼저 모든 소금통을 부수고 모든 말을 뒤집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비참한 실상을 드러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맛을 잃은 소금과 악취 나는 심지만 모여 있지 않을까 두렵다. 무엇보다 서글픈 것은 가장 종교적이었던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들으며 그분의 약속에 대해 더 많이 알았던 사람들이 이 쓰레기 더미의 가장 큰 부분을 이루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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