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임자경 지음 / 달꽃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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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마음가짐.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에 수록된 엽편소설 <한 밤 중 검 소리>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소설에서는 어머니가 아기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오지만, 이 문장은 작가인 임자경 같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면서, 자신이 자라오면서 읽고 보고 들어온 책, 영화, 드라마, 음악들에 대한 예찬을 써낸 작가의 소설집은 말 그대로 작가의 소중한 것을 지키는 마음가짐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글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이런 이야기를 붙여 자랑하고 싶었구나 싶어서. 그럼 오케이! 하고 소재가 된 작품들도 보러 가게 됐다.

 

소설집은 자칫 잘못하면 여러 소설의 등장인물과 장소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이기 쉽다. 저 인물이 이 장소에 나오지 않았나, 하고 헷갈릴 수도 있을 법한데 이 소설집은 그렇지 않다. 지구 밖에서 피오나, 홍콩에서 온 페이, 대한민국의 보석 사기단, 이런 식으로 소설의 배경이 왔다 갔다 하는 목차 구성 덕분이다. 소설마다 등장인물과 장소들이 너무나 다양해서인 것도 있지만, 조화롭게 섞이지 않게끔 구성한 게 한몫을 단단히 했다. 14편의 소설을 더욱 잘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책 가장 마지막에 소설마다 소재가 된 작품을 나열한 것 역시 신의 한 수였다. 소설 중간에 각주로 작품이 등장했다면, 필자같이 산만한 독자는 소설을 읽다가 검색창에 검색하러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에 등장하니 하나, 하나 검색해보며 읽었던 소설을 다시 생각해보고 떠올리면서 더 소설들을 깊게 음미할 수 있었다.

 

모든 소설이 불행하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내던 옛날 옛적 동화책들이 생각난다. 동화와 다른 점은 생각할 거리가 남는다는 거다. <우리 우정 뽀에버>를 읽고 삶을 살아가는데 이런 친구들과의 우정 스토리가 큰 가치로 남는 것 같다는 심도 있는 생각부터, <우주에서 가장 맛있는 연어 베이글을 찾아서>를 읽고 연어 베이글이 맛있나 같이 단순한 생각까지 말이다. 이런 통통 튀는 소재들을 문체가 뒷받침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재가 낯선 이들을 문체가 붙잡는다. 이게 뭔 소린가 싶은데 문체가 잠시만 기다려봐, 대단한 것이 펼쳐질 거야! 하고 말을 건네는 기분이다. 중독적이어서 책을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읽게 만든다. 14편의 이야기가 결코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적게 느껴지고 갈증이 이른다. 더 읽고 싶다.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 하고, 위로해주는 이야기, 좋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필요하다던 작가는, 정말로 독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선물해주었다.

 

끝으로, 14편의 이야기 중 가장 첫 이야기를 읽은 뒤 이 책의 정체는 뭐지? 하고 생각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급하게 작가의 말을 펼쳤는데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났다. 엽편소설집? 그게 뭐지?

 

엽편소설: 가볍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며, 예상을 뒤엎는 경이로운 결말을 갖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나뭇잎처럼 작은 지면에 인생의 번쩍하는 한순간을 포착해 재기와 상상력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문학 양식이다. 특히 작가의 세계관과 문학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응축시켜 놓는 데 가장 적절한 문학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태어나서 엽편소설을 처음 읽었다. 나는 이런 장르를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읽어 본 적도 써 본 적도 없다. 3년 반 동안 글을 쓰고 읽는 법을 배웠던 학교에서도 마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이 책을 읽고 엽편소설에 대해 알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과 특성상 재학 내내 글을 쓰면서 찾은 나의 문제는 글을 토막토막 쓰는 거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표현도 너무 많아서 생긴 것인데, 많은 이야기를 한 번에 묶지 않고 한 편, 한 편씩 쓰면 좋은 엽편소설이 나올 듯하다. 다시 나에게 글을 써 볼 용기를 만들어준 이 책에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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