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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의 하이파이브
이주리 지음 / 수필과비평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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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 웬만해선 시, 수필, 소설과 같이 감정을 건드리는 글들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내 생활 자체가 괴로움의 연속이고 직업조차 실직자의 아픔을 함께하는 직업상담자인데. 굳이 누군가의 글을 통해서까지 타인의 아픔에 그 이상의 감정을 소비하기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일을 하는 직업상담가가 책을 쓰셨다고 해서 이주리 선생님의 시/수필집 <고통과의 하이파이브>를 구매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은 수필집임에도 특이하게 책 곳곳에 절절한 시들이 포함되어 있어 시-수필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합니다.

 

아래 글들은 이주리 작가님의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로서 본인의 눈에 들어온 글들만 발췌한 것입니다. 부분 부분 발췌하다보니 작가의 의도를 훼손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어 작가의 너그러운 혜량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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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리 작가는 노동부에서 실직자를 상담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다. 작가이자 상담가인 저자는 기본적으로 실직자의 고통을 느끼는 데 깊은 감촉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이 느끼고 아파하는 부작용을 수십년을 감내하는 직업병을 앓고 있다. 게다가 상담가에게 가장 중요한 영혼을 거세할 것을 강요(?)하는 조직문화는 상담가에게 주는 아픔을 배가 시켜 작가로 하여금 생을 놓아버리게 할 위험마저 엿보이는 부분도 있다.  홀로 두자녀를 꿋꿋이 키워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담가이자 작가로서의 필수 자질인 예민한 감성과 영혼을 전지당하지 않고 살아 남은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아울러 생계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하루 하루를 버텨가는 이 나라 모든 여성가장들에도.....

.

책의 끝부분에 이르러 비로소 작가는 찔려도 피가 나지 않는 '두꺼운 갑옷'을 얻게 되고 누군가가 심장을 향해 칼을 겨누면 방패로 막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긴 칼로 그를 공격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개발하게 되지만, 이로 인해 상담가로서의 중요한 능력인 감수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갖게 된다.

 

상담가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아를 온전히 보듬어주는 정신의 불가침 지역으로 <지상의 방 한칸>을 권고한다.

 

이 글을 마치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내 손을 보며 이주리 작가와 같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너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행하는 손이었냐고, 그리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손이었냐고". 몇번 물어보다 나도 작가처럼 이내 깨달았다.

 

부끄럽다.

 

이제 곧 점심 시간이다. 고용센터와 노동부를 방문하기 전까지 내가 먹을 밥을 생산하였을 해고노동자와 산재노동자를 생각하며 영혼의 적십자인 밥을 먹으러 가야겠다.

 

"밥은 눈으로 내린다
생의 출현은 밥으로 싸매진다
밥은 영혼의 적십자
언제든지 저 밥은 저 홀로
천국의 장독대로부터 걸어 나온다"?
이주리 시 <밥> 중에서?

간만에 혈관에 감정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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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발췌글입니다. 개인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이지만 발췌하지 못한 글 중에 더 아름다운 영혼을 만날 수 있으니 다들 완독해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수천의 실직자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수만의 소리없는 분노와 편견, 그리고 깊은 슬픔들이 내옆에 머물다 갔다. 하루하루 견디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으므로...,


건조한 틀 속에서 잔인하게 전지되어 남은 청춘을 보냈다. 목련, 나도 이곳에서 만든 사리 두엇쯤 너처럼 가지에 달고 있었을 게다. 저 사무실에서.
<고통과의 하이파이브> 중에서 p. 28

 

가방 안의 역사

가방을 국경으로
바깥 나라는 온통 연두,
꽃들은 차고 넘치는데
가방 안 나라는 이력서만 팔십개
뉴스는 청년실업을 목청껏 외치지만
가방 한 사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걸음 옮길 때마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내 청춘
기억을 물어뜯고 싶던날
부서지는 자아는 통증을 모르는 척했다
대기업 취업되었다고 술 사주는 친구 녀석과
공무원 시험 합격했다고 저녁 사주는 애인도

숯불갈비 입에 구겨 넣은채
짝짝짝 서글픈 박수 소주잔에 구겨 넣고
돌아오는 골목길에 훔쳤던 눈물, 가방 안 나라
역사처럼 간직해온 줄 그 누가 알까
<고통과의 하이파이브> 중에서 p. 28~29

 

아이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뒤늦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다니며 싱싱한 이십대 사이에서 면접을 보던 지난날 초라한 내 모습이 보인다.
<촛불> 중에서 p. 38

 

나는 상처받은 채, 존재 가치를 무시당한 채 오직 홀로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적당히 둥그러져서 융합되는 삶의 방식을 혐오한다. 불꽃처럼 처절히 홀로 타고 싶다.
불꽃처럼 처절히 홀로 타고 싶다. 내게 주워진 모든 사람과 사물을 조용히 비추이며 자신이 타는 동안 전력을 다해 어둠의 뼈까지 태워버리는 그 역동의 에너지로, 모래시계를 위로 흐르게 하는 힘으로 삶이란 먼길을 가기를 원한다.
<촛불> 중에서 p. 39

 

내 인생의 8할은 이별이다.
별들도 새벽이 되면 사라지듯, 손톱끝에 물들였던 봉숭아 물도 계절이 되면 사라지듯, 손톱이 자라면 봉숭아 물은 점점 사라진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면 나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내가 조금씩 자랐을 때 엄마도 조금씩 사라져 갔을 것이다. 저 조금씩 사라짐에 대해 그저 자연의 이치라고 단순히 새기기에는 너무 아픈 것들이 인생엔 있다.
<아름다운 이별 2> p. 40

 

밥상 위의 밥그릇 두개
엄마, 가슴 두쪽 잘라 진설한 순교
하루도 빠짐없는 저 밥의 힘
하루치 사용할 피를 수혈한다.
가족을 신앙으로 가졌던 그녀의 손이
경전 위에서 탁탁탁, 파를 썬다
염원의 목탁소리, 보글보글
찌게 그릇으로 스민다
대문 밖 발설치 못한 내력들을 싸매주는 붕대는 젖어 있다
실적 시원찮다고
나이 어린 팀장에게 얻어터진 아빠
모의고사 성적 뚝 떨어져
옥상 위를 오락가락하던 아들
내인에겐 차인 딸은 가파른 자존심의 벼랑에도
밥은 눈으로 내린다
생의 출현은 밥으로 싸매진다
밥은 영혼의 적십자
언제든지 저 밥은 저 홀로
천국의 장독대로부터 걸어 나온다
<아름다운 이별 2> 중에서 p. 41~42

 

비가갠 오후, 나무의 잔가지들이 제 몸의 비늘을 터는 소리가 들렸다.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든 죄 밖에 없는 깨끗한 잎사귀들이 부럽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나는 내 마음 속에 쌓는 먼지는 얼마나 더 털어야 '아아, 이만하면 괜찮아.'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강가로 나갔다. 산들이 제 그림자를 풀빛으로 헹구고 스스로 길어져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시간. 오랬동안 강가에 서서 내가 흘려 보내버린 43년을 생각했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에서 ... 사형집행을 6년째 미루어온 사형수의 마지막 밤과 아침 그리고 한낮을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읽은 지 오래돼서 정확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어느 덧 집행의 시간이 오면 '1405호!'하고 번호로 부른다지.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순간치고 이렇듯 간단한 호출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사형수이다.
<천지가 꽃이다> 중에서 p.87

 

한참 삶 저편에 죽음이 있다면 한 번 강을 건너가 보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지배했다. 날마다 살고 싶다와 죽고 싶다의 줄타기를 아무도 몰래 마음속에서 했던 때 허방 한번 짚으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을 때였다.
<사랑과 이별> 중에서 p. 118

 

결국 종신형을 받았고, 나는 지금도 복역중이다.
베란다 창문이 유난히 바람에 들석이거나 불면의 대가를 치르는 밤, 엷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픈 상처 부위를 누르며 하나님께 외쳤다. 내가 죽은 다음으로 형을 유예시킬 수는 없습니까? 하고.
<사랑과 이별> 중에서 p. 120

 

내 경우엔 사람을 볼 때 맨 처음 눈길이 가는 곳이 손이다. ... 그가 걸어온 생이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지는 곳이 손이기 때문이고, 좀처럼 감출 수 없는 무방비 상태의 진실한 표정이 손에 있기 때문이다. ... 노동부는 내 직장이며 생존의 터이다. ... 민원실에서 임금체불, 산재 등 사고가 준 고통으로 상처입은 짐승처럼 갈라진  가슴을 가진 노동자들의 수 많은 손을 보아 왔다. 그 때마다 힘들어도 희망의 풀씨마저 그들 마음 속에서 없어져 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난 늘 조바심을 내곤 했다. ... 손에는 만만찮은 그 사람의 역사가 들어 있다. 행함으로써 가지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향기가 있다.
나는 손에게 물었다. 너는 너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행하는 손이었냐고, 그리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손이었냐고. 몇번 물어보다 이내 깨달았다.

부끄럽다.
<손> 중에서 p. 123~129

 

파리넬리는 18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카스트라토일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악가로 칭송 받았던 사람의 이름이다. ... 그는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를 화려한 기교로 묶어두는 것을 혐오했다. 그만큼 영혼과 맞다은 예술혼을 원했던 것이다. ... 그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그를 욕심내는 작곡가와 사랑과 예술의 본질을 잊은채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귀족들을 향해 그는 외친다. "당신들은 내 영혼을 거세하고 있어!"
<울게 하소서> 중에서 p.188~189

 

'정신과 육체를 이어주는 혈관은 감정이야'
<지상의 방한 칸 2> 중에서 p. 201

 

세월이 흐른 뒤에 알았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리도 내가 원했던 나만의 방 한칸은 실제로의 방 한 칸이 아닌 내 자아를 온전히 보듬어주는 정신의 불가침 지역이었다는 것을.
<지상의 방한 칸 2> 중에서 p. 202

 

이제 난 꽃이 진 자리를 보아도 눈물이 나지를 않는다. 쬐그만 잎을 햇빛에 비춰보면 잎의 혈관을 도는 초록빛 생기에도 별로 감격하지 않는다.  그 마음이 내 가슴안에서 보따리를 사들고 가출해 버린 동안 난 무엇을 했던가? ... 이제 난 누구군가의 혀의 칼에 찔려도 곧바로 피가 나지 않는 두꺼운 갑옷을 심장의 표면에 입히는 데 성공했다. 이제 더 이상 눈물 짓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가 내 심장을 향해 칼을 겨누면 난 방패로 막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긴칼로 그를 공격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 하나를 개발한 셈이다.
<잃어버린 마음 하나를 찾습니다> 중에서 p.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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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 박원순의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박원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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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상담자가 알고 있는 직업의 한계가 내담자가 꿈꿀 수 있는 직업의 한계일 수 있기에,

진로상담자는 다양한 직업들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직업사전이 현재 존재하는 직업들을 종류별로 나열하고 무엇을 하는 것인지 설명을 하고 있다면,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은 곧 다가 올 미래의 직업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 박원순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경험한 결과, 서구 선진국과 비교해 대한민국에는 없지만 곧 생겨날 직업이나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미래에 유망할 것으로 보이는 직업 천개를 선별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남들보다 앞서서 무엇을 할 것인가 도전하고자 하는 청년들이나,

새로운 분야에서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해봅니다.

 

저자 박원순이 보는 '1) 미래 세계상과  2)미래 세계 속의 나의 직업 그리고  3)그  미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상'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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