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읽어봐야지'라고 마음먹었던 책을 읽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반가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나를 찾아온다. 대개 이런 경우는 책 자체의 난이도도 있고, 그 두께도 엄청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일리아스》는 안타깝게도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차일피일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던 중 마침 미루었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책은 헥토르로 대표되는 트로스인과 아킬레우스로 대표되는 아카이오스인들의 전쟁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서로서로가 죽고 죽이는 설전을 벌이는가하면, 그들과 엮겨 있는 수많은 장수들, 가족들도 그 역경 가운데에서 고통받으며 슬퍼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리아스》가 다른 서사시와 다른 특별한 점은 이런 사람들의 대립에 있어서 신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다. 하물며는 신들 사이에서도 편을 나누어 전쟁에 개입을 지속하기도 한다.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와 싸우러 나가기 전 고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두려움이 그를 감쌌고 가족들도 그를 말렸지만 고뇌끝에 그와의 싸움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자신의 죽음이었다.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병사,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한 채 전쟁터로 나가야 했을 그가 감당해야 했을 무게감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인류 최초의 블록버스터','서양 문학의 시작'등과 같은 말은 이 책의 위상이 얼마나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어렸을 때 보았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제우스, 헤라, 헤라클레스등의 신들은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신들도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이 서로를 도와주고 아껴주고 경쟁하고 견제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나의 운명, 책을 삶을 대하는 태도 등 많은 것들이 내 마음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