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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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진짜 말이 안 통해. 너랑 내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있을까? 너는 왜 내가 하는 말을 이해를 못 해?”

✔ 이건 내가 전에 만나던 사람과 사회적 소수자 혹은 여성 인권 등에 대한 대화를 할 때 하던 말들이다. 내가 얘기하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지 않아? 네 말이 꼭 맞는 건 아니지. 하면서 반문하거나 반박하던 그. 항상 이런 얘기를 꺼내면 나 혼자 상처받고 나 혼자 가슴을 퍽퍽 치며 답답해할 걸 알면서도 나는 항상 이런 얘기를 꺼냈고 끝은 항상 저런 말들로 끝나곤 했다. 결국 그와는 다른 이유로 헤어지긴 했지만 우리가 싸우던 이유는 항상 사회적 소수자 혹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는 헤어지기 직전까지 나에게 상처만 남기는 이런 대화를 포기하지 못했다. 만약에 이 책이 그때 나왔더라면 나는 날 좀 더 지키는 방향으로 그와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그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부제는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이다. 이 책이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이다. 대부분은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는데 이 책은 소통이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진짜 진짜 내게 필요하던 책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더 일찍 나오지 않아서 아쉬운 책이다. 내가 왜 그렇게 전에 만나던 사람과의 대화에 목을 매고 집착했는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이 책에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공감과 소통을 원합니다. 그런데 간절히 이해받고 싶고, 타인과 대화를 원하고, 자기 삶을 해명해야 하는 쪽은 대개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기득권층은 자신의 삶과 기존의 언어가 일치하지만,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는 그 두 가지가 불일치한다는 것. 그렇다면 사회구조적 약자든 인간관계에서의 약자든(예를 들어 사랑하는 관계에서) 누가 더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까요? 어려움을 겪을수록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할 말이 많은 이들은 누구일까요?”
정희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창비, 2026, p12.

내가 그와의 대화에 집착하고 간절히 이해받고 싶어 하던 이유가 바로 사회구조적 약자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생각보다 더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나 배제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삶과 기존의 언어가 불일치하고 그 때문에 더더욱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할 말이 많았던 것이다.

✔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소통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대화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소통이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소통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소통 전략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인문학은 언어의 역사이고, 언어는 정치·경제·문화·사회를 통칭하는 담론입니다. 말과 글의 개념과 정의는 모두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재생산하지요. 이처럼 언어의 세계를 파헤쳐 보면, "소통이란 언제나 가능하며 바람직한 것이다"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에 의심을 갖게 됩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속에 숨겨진 폭력과 배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정희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창비, 2026, p19.

언어는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재생산하며 우리도 모르게 타인을 차별하고 배제하거나 혐오하는 언어를 쓰고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매우 동감한다. 전에 만나던 저 사람과 싸웠던 내용 중에서 아직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쩌다 '꽃뱀'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내가 그 단어는 여성 혐오가 담긴 표현이니까 쓰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왜 그런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범죄자는 그냥 살인범, 강간범, 사기범 등 죄를 지칭하는 단어와 함께 성별 중립적으로 불리는데 유독 사기범 중에서 여성만을 '꽃뱀'으로 지칭하는 것은 여성차별적이고 그 때문에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나는 주장했고 상대방은 본인 친구 중에서 실제로 '꽃뱀'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가 있다며 전혀 다른 논점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정말 답답하고 절망적이었지만 그러한 단어가 왜 여성 혐오적인지 설명하는 칼럼까지 찾아서 보내주었고 그러면 내 앞에서만이라도 그런 단어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돌아온 답은 나를 더 절망에 빠뜨렸다. "그럼 내가 이 칼럼 쓴 사람한테 메일로 왜 꽃뱀이라는 단어가 여성차별이 아닌지 설명해서 이 사람이 내 말이 맞다고 인정하면 써도 돼?" 지금 그 답을 그에게 얘기하고 싶다. "네 맘대로 해."

✔ 사실 우리 삶에 '보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모든 사람은 고유한 본인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 각자의 사회적 위치도 다를 수 있고 셋째, 모든 인간관계는 결국 이해관계이자 권력관계이기 때문에 언어는 중립적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애초에 소통은 힘든 것이다. 또한 넷째, 언어는 고정된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불안정하며 유동적이다. 예를 들면 '자유'라는 단어만 해도 예전에 국가가 개인을 억압하던 시대에는 진보 세력이 주로 추구하던 가치이지만 요즘 보면 표현의 자유(라고 하지만 사실상 혐오의 자유) 또는 총기를 소지할 자유 등 오히려 극우세력들이 이 단어를 더 많이 가져다 쓰는 것 같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 소통이 되겠는가. 마지막으로, 사실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지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에 상대가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흔히 우리는 대화의 목표가 설득이라고 믿으며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내 말 몇 마디로 상대방의 생각이 쉽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 특히 내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라면 상처받고 영혼이 탈탈 털리는 경험은 온전히 나의 몫일 것이다. 나는 그런 경험을 충분히 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남들에게 내 가치관이나 생각을 말하는 게 더 부담스러워졌을 뿐.

✔ 그렇다면 이 소통의 불가능성 속에서 내가 나를 지키며 대화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저자는 6가지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침묵, 무응답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고정관념을 뒤집는 솔직한 말하기, 완벽한 소통 대신 중간 지점을 찾는 협상적 말하기, 굳이 타인을 설득하지 않기, 나에게 대화 종료의 권리가 있음을 기억하기가 그 방법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 '나에게 대화 종료의 권리가 있음을 기억하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저자는 나를 갉아먹기만 하는 대화는 이겨도 지는 게임이므로 소모적인 싸움을 오래 끄는 것이 절대 나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나 또한 과거의 경험을 기억해 보면 상대와 결판나지 않는 대화를 질질 끌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힘들어했는지 모른다.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의 온전한 이해는 얼마나 달콤할까 생각하면서 나는 소통이 불가능한 상대를 붙잡고 그의 이해를 갈망하면서 바닷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지만 멈출 수 없는 기분. 애초에 이긴 적도 없지만 이겼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렇게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

“강자가 선점한 주제, 강자가 만든 언어 그리고 강자에게 유리하게 짜인 규칙 안에서 아무리 훌륭하게 칼을 휘두른들 판 전체를 뒤집기는 역부족입니다. 약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은 강자의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가 '내가 싸울 자리'를 새롭게 확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굴레 같은 논쟁을 이어가는 대신, 그 에너지를 온전히 자신의 건강과 독립된 삶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기
▶▶▶ 온라인의 혐오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며 감정을 낭비하기 보다, 나의 언어가 안전하게 흐를 수 있는 다른 해방구를 찾아내기
▶▶▶ 나를 끊임없이 소모시키고 유령으로 만드는 관계를 '관계 종료'라는 이름으로 마침표 찍을 용기를 갖기
정희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창비, 2026, p186.

결국 저자는 소통의 목표를 설득이 아닌 생존으로 옮겨오는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 내 영혼을 갈아 넣기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성찰해 보고 대화 종료의 권리를 가짐으로써 내가 나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너의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그렇다고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널 지키고 아껴둔 그 힘으로 이 세상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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