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이춘기 지음, 이복규 엮음 / 학지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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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가 되면 늘 두 가지를 준비한다. 그날 그날 스케줄을 메모할 수 있는 휴대용 다이어리 한 권과 그해 일기를 쓸 수 있는 그야말로 '다이어리' 한 권을 준비하는 게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뭔가를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는 습관탓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늘 해오는 의식이기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1년을 꼬박 다 써 본 다이어리는 없다. 처음에는 늘 새로운 포부와 각오를 가지고 꼬박꼬박 기록을 하다가도 2월, 3월, 4월이 되어가며 계절이 바뀌어갈 때마다 점점 쓰는 횟수가 줄어들며 가을무렵부터는 급기야 다이어리가 백지상태가 되곤했다. 아예 펼쳐보지도 않게 되고 말이다. 이렇듯 일기를 1년 아니 몇 달만이라도 꼬박꼬박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수십 년 간 해오신 분이 계시니 바로 이춘기 옹이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3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쓰신 것이다. 매일 일기를 쓰다가도 어쩌다 바쁜 농사일로 인해 일기를 빼먹게 되면 밀린 일기를 하나도 빠뜨림 없이 한꺼번에 쓰셨다고 한다. 어지간한 끈기와 인내와 없으면 참 하기 어려운 일일텐데 말이다. 그것도 그냥 신변잡기적인 일상들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수입과 지출, 장거리 여행을 할 경우 타게 된 차의 시각, 열차번호, 도착 시각, 차비, 당시의 물건값, 인부들의 품삯 등 그 시대만의 팩트들을 일기에 기록해둠으로써 30년간의 물가와 경제상황 등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가치 또한 지니게 된 것이다.

 

 

        초반부에 나오는 부인의 투병 및 사망에 관한 일기를 읽는 동안에는 가슴이 뻐근하리만치 아팠다. 이춘기 옹의 부인은 의료기술도 열악했을 1960년 12월 무렵 발병한 암으로 인해 힘든 투병 끝에 1961년 4월 17일 끝내 눈을 감는다.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 함을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 대목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한 가정이 점점 기울어져가는 모습 또한 일기를 통해 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서두르게 된 재혼과 잇따른 실패로 인해 온 가족의 힘듦이 일기의 곳곳에 묻어나옴을 보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엄마가 건강해야 하는구나. 내가 건강해야겠구나. 내가 아프거나 오래 살지 못하면 내 가족들이 고생하고 힘들어지는구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가 건강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가족들 건강만 챙겼지 내 건강은 사실 잘 못챙기기 일쑤였는데 나의 건강을 비롯해서 가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목련꽃 필 무렵인 4월 17일에 아내와의 사별을 맞이하게 된 이춘기 옹은 해마다 아내의 기일이 되면 하얀 목련꽃을 꺾어다 아내의 무덤앞에 놓고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내를 그리워하곤 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지 못하면 자식을 시켜서라도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아내가 그리울 때마다 일기장에 시를 쓰기도 했으니 그 그리움이 얼마나 깊고도 절절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한 인간의 일생에 걸친 대서사시이자 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일기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가족의 소중함부터 시작해서 가족의 건강, 특히나 안주인인 엄마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무엇보다 크게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나갔다. 늘 연초가 되면 마음먹고 일기를 쓰다가도 어느 순간 접어버리곤 해서 올해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2월부터라도 시작해볼까 한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지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돋보기 안경을 쓰고 낡은 나의 일기장을 들춰보며 추억을 회상해보고 싶다. 여건이 된다면 내 자녀들에게도 물려주고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내 건강을 좀 더 잘 챙겨야겠다. 내 건강이 곧 우리집안의 건강임을 잊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야겠다. 이춘기 옹의 일기로 인해 좀 더 부지런하고 건강한 2018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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