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릴 때, 인도 - 나를 만나러 혼자 떠난 사십오일 간의 배낭 여행
박재현 지음 / 책과나무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도.....하면 사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물론 IT 강국에 영화산업이 발달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하지만 아직도 '카스트'라는 계급제도가 남아있고, 위생관념이 떨어지며, 치안이 불안하다는 등의 이유로 선뜻 여행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라는 아니다. 사실 종종 해외뉴스를 보다보면 인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관련 사건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어서 더더욱 인도는 '무서운 나라'라는 이미지가 컸다. 그래서 인도는 내가 여행가고 싶은 나라 리스트에 아예 들어있지조차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삶이 흔들릴 때, 인도'라는 제목부터 묘한 끌림을 느꼈다. '삶이 흔들리는 것과 인도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 어떤 편안함과 안정을 주기에 삶이 흔들리는데 인도에 가겠다는걸까?'등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내용을 서둘러 읽어보고 싶었다. 마치 무지개 끝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무지개의 끝을 찾아 떠났다는 동화내용속의 아이들처럼 나는 이 책 속에 숨어있는 '인도의 매력'을 찾아 서둘러 책속으로 들어갔다.

 

 

      이 책의 저자는 대기업 중역으로 일하다 은퇴한 후 인도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늘 딸아이가 가이드가 되어 모든 여행일정 및 스케줄을 짜주는 덕에 저자는 그동안 그저 딸아이를 따라만 다니는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혼자서 여행계획을 짜고 혼자서 떠나보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실천에 옮기게 된다. 그것도 인도 배낭여행을 말이다.

    " 내가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삶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있어서였다. 퇴직 후에도 현직 때와 같은 생활 리듬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언젠가부터 점점 그 노력이 잦아들기 시작했고 생활이 풀어진 운동화 끈처럼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흘러가기 시작했고, 너무 빠르고 쉽게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게 뻔한 내일이 오늘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새로 산 바지의 기장처럼 잘라내도 상관없을 듯 의미 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 본문 6쪽 인용 -

    삶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게 답답했던 저자...... 더군다나 하루하루가 의미없이 지나가버리는 게 아깝고 속상했던 저자.......  그는 거기서 속상함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감히 인도로 배낭여행을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에 옮기게 된다. 그것도 45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을, 그것도 혼자, 배낭여행의 성지라고 알려진 인도로 가겠다니 한참이나 젊고 어린 나로서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졌다. 보통 우리는 해외여행이라면 일단 깔끔하고 볼 것도 많으며 사진찍기에 좋은 명소가 많은 곳 그리고 쇼핑하기까지 좋다면 그야말로 여행지로서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좀 다르다. 기본 마인드가 일반적인 우리와 많이 다르다. 

      " 인도의 공기가 내 비위를 못 견디게 굴지만 않는다면 나는 두 달이고 세 달이고 '여행'을 하고 싶었다. '힘든 노동을 통해 비로소 신이 천지창조를 하는 데 얼마나 고생했는지에 대해 공감해 볼 수 있다'던 <탈무드>의 구절처럼 그 기간 동안 감히 신의 수고를 공감하는 그런 노동 같은 힘든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 본문 28쪽 인용 -

   

 

         이 책은 단순한 인도여행기가 아니라 한 편의 철학서적을 보는 것 같다.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인도의 역사 및 유물들을 저자만의 철학적 사고와 성찰과 잘 버무려 맛깔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유명 철학자 못지 않다.

       " 나는 여행 계획을 짜면서 여유로운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도시에서 최소 3박을 하겠다고 작정을 했었다. 그래서 내 여행 일정에 포함된 도시는 45일 동안 10개 도시를 넘지 않았다. 황소처럼 느리게 걷고, 곰처럼 어슬렁거리는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두르는 사람은 막된 사람이고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레이시아 켄탈라의 농부들처럼 느림에 가치를 두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사막의 모래 웅덩이 '프슈프슈(le feche-feche)'에서 빠져나오려면 타이어에 바람을 빼서 타이어와 모래의 접촉면을 넓혀야 하는 것처럼 내 몸에 든 바람을 다 빼내서 세상과의 접촉면을 최대로 넓히고 싶었다."

                - 본문 160쪽 인용 -

      그래서인지 책을 점점 읽어나갈수록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마치 편안한 분위기 가운데 상담자로부터 조곤조곤 조언 및 격려의 이야기를 듣는 내담자가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야말로 힐링이었다. 여행기를 통해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 처음있는 일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인도여행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상한 그녀> 영화에 나오는 '오말순' 할머니가 '오두리'라는 젊은 아가씨로 잠시 살았던 것처럼,  45일간 인도를 여행하는 기간동안은 '인도'라는 마법에 걸려, 배낭여행이라는 마력에 끌려 청춘으로 돌아가 살아보았다고......

       " 새벽 3시의 깜깜한 인도 하늘에는 아무도 없었다. 45일 전 아무도 나의 잠입을 몰랐듯 지금 나의 이륙 역시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지난 한 달 보름 동안 나는 인도라는 거대한 무인도에 조난당했었고, 그곳에서 혼자의 힘으로 생존을 했고 몰라보리만큼 강해졌다. 청춘의 모습으로 위장해 살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변장이 내 본 모습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 본문 291~292쪽 인용 -

       어떤 뜻인지 바로 느낌이 왔다. 나 역시 그랬으니 말이다. 여행지에서만큼은 더이상 삶에 찌들린 도시인도 아니요, 두 아이에게 잔소리를 쏟아붓는 엄마도 아니요, 그냥 '나'가 될 수 있는 자유로움과 '나'에게만 집중할수 있는 20대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 그 느낌적인 느낌....... 충분히 공감이 됐다. 그리고 저자의 '잠입' 및 '이륙'을 허락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섭고 지저분하다는 이미지로 가득했던 '인도'라는 나라에 나도 한 번쯤은 여행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 책의 부제인 '나를 만나러 혼자 떠난 사십오 일간의 배낭여행'처럼 내 안의 나를 제대로 만나러 가보고 싶다. 더 늙기 전에 저자가 말한 '노동같은 여행'을 나도 한 번 .......... 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