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 신고 지구 한 바퀴
박성하 지음 / 바른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이제는 돌아가시고 안계신 나의 친정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셨다. 그래서 나의 유년 시절은 군부대, 군인 아저씨들, px, 짚차 등 내 또래의 친구들은 쉽게 경험하기 어려울 법한 에피소드들이 많다. 그 중 가장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버지가 px에서 사오신 건빵(별사탕이랑 미숫가루도 들어있었다)을 엄마가 기름 두른 팬에 살짝 볶아 설탕을 뿌려주시던 거다. 그걸 들고 동네에 나가면 그야말로 인기폭발이었다. 요즘이야 흔하디 흔하고 널린 게 건빵이지만 1980년대 초반에는 건빵은 그래도 나름 귀한 간식이었다. 이렇듯 유년시절을 아버지 덕에 군부대 근처에서 보냈던 터라 나는 웬지 모르게 군인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라면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인지 그 시절의 기억들이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남아 나도 모르게 군인 관련 이야기를 듣거나 보게 되면 내 마음이 무장해제가 되곤 한다.

        이 책 역시 그러했다. 10년 넘게 군 생활을 하고 있는 현역 군인이 쓴 책이라는 책소개글에 일단 관심이 갔는데, 저자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훈련받고 경험한 내용을 여행의 감성과 함께 쓴 책이라 더 마음이 갔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내가 군 생활을 하며 해외에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적은 에세이다. 그래서 70%의 사실과 20%의 왜곡된 기억과 10%의 허세가 섞여 있다. 또한, 군사 보안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어 여러 숫자나 지명, 사람의 이름 등은 일부 모호하거나 부정확하게 기술하였다.

                       - 머리말 인용 -

      '20%의 왜곡된 기억과 10%의 허세'라는 저자의 표현이 소탈하고 재미있다. 우리의 기억은 때로는 왜곡되기도 한다. 특히 내 자신조차 내가 자랑스러웠던 순간의 기억들은 더 부풀려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남자들의 경우는 군 생활이요, 여자들의 경우는 출산 에피소드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이면 얘기하는 게 '군대, 축구, 군대에서 축구한 일'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고, 아줌마들은 누가 먼저 출산 경험을 시작했다하면 나도 질 수 없다는 듯 너도 나도 '죽을만큼 힘들었던 그 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바쁘다. (나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저자는 여기에 10%의 허세도 덧붙였다고 하는데, 책을 읽어보니 충분히 허세를 부려도 되겠다 싶다. 네팔의 고산지대를 비롯해서 콜롬비아, 사하라 사막 등 일상생활도 버거운 오지에서 강도 높은 교육 및 훈련을 받았으니 그 정도 허세는 부려도 된다고 허하고 싶다. 대한민국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을 뿐 아니라 위상 또한 당당히 높였으니 말이다.



        교육받느라 바쁘고 힘들었을텐데 저자는 짬짬이 사진도 멋지게 잘 찍어서 남겨두었고, 시간도 한참이나 지난 지금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잘 기록해둔 걸 보면 저자는 평소에도 일기나 메모 등 개인기록을 꼼꼼히 하는 듯 싶다. 군인이시던 친정 아버지를 옆에서 봐온 경험을 봐서라도 군인, 특히 직업군인들은 자기관리에 아주 철저함을 나는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저자 역시 그러한 듯 싶다. 다양한 나라에서 교육받고 훈련 받은 경험들을 아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라 여행자의 시각으로 예리하게 바라보고 있음이 책의 군데군데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훈련경험기 + 기행문'의 냄새가 다분한 책이다.

        특히 결혼 후 새신부와 함께 떠난 콜롬비아에서의 2년간 이야기들에는 훈련내용도 있지만 아내와 함께 신혼의 달콤한 시기의 추억들이 글과 사진으로 담겨 있어서 같은 여자로서 아내분이 살짝 부럽기도(?) 했다. 타국에서 보내는 신혼이라........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지 않을까 싶다. 시댁 눈치 없이 둘이서만 보낼 수 있는 신혼이라니 그야말로 부럽고 또 부러울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군인이 쓴 이야기라 다소 딱딱하고 재미없을거라 생각했던 나의 성급함이 부끄러웠다. 여자로서 경험하기 힘든 일들이라 더욱 흥미있게 읽었고, 무엇보다 군인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고 여행의 묘미 또한 적절하게 버무려졌기에 더욱 감칠 맛 나는 책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저자의 아내분이 부러울 뿐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