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5미터의 행복
다카시마 다이 지음, 전화윤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큰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태명이 '행복이'였다. 의외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없다보니 태명이라도 '행복이'라고 지어서 그 말을 자주 입에 담고픈 나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임신기간에 수시로 뱃속의 아이와 태담을 나누며 '행복'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 40대 초반에 접어든 내가 살아오면서 쓴 '행복'이라는 단어의 90%는 그 기간에 다 썼을 정도니 태명을 많이 불렀기에 그랬기도 했고, 그 이후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내가 쓸 일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듣기만 해도, 글로 쓰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참 사용할 일이 없다. "나 행복해요!", "너무너무 행복해요!"라는 문장은 광고 속의 예쁘고 멋진 배우들이 사용하는 광고문구처럼만 느껴질 정도로 입에 담기에 참 낯간지러운 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바쁜 삶 속에서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여유롭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가 때로는 사치스럽다게 여겨질 정도이기도 하다.

      이렇듯 가까이 하기에 먼 '행복'이건만, 저자는 '반경 5미터의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반경 5미터'면 그야말로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 주변에 머무는 곳까지의 거리이다. 즉 가족, 직장 동료, 친구들과 나와의 거리인 셈이다. 제목만 보고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권태기인 듯 권태기 아닌 권태기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남편, 한창 사춘기의 절정을 내달리고 있어서 하루에도 수차례 엄마인 내 가슴에 상처주기 바쁜 딸아이를 생각해보면 '반경 5미터의 행복'은 나에게 있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데 저자는 어떻게 했기에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을까 하는 생각에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한부모 가정에서 가난하게 살았고,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중학교도 겨우 졸업했으며 자신감도 배경도 돈도 없었던 저자가 어떻게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건지 빨리 알고 싶어서 책을 서둘러 펼쳐보았다.

 

 

       

        저자는 책의 목차에서 이미 '반경 5미터'에 관한 기준을 세우고 있다.   

        - 1m, 바로 곁에 그대 : 행복은 나로부터 번져가는 것

        - 2m, 인생의 짝 :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해

        - 3m, 소중한 선물 아이 : 희생하는 부모보다 행복한 부모

        - 4m, 사랑하는 연인 : 상대는 나를 비추는 거울

        - 5m, 나를 둘러싼 이들 : 스스로 행복해지기

                 - 목차 인용 -

        반경 1m 내에 있는 나로부터 행복은 번져간다는 제목만 봤을 뿐인데 가슴이 뭉클해졌다. 요즘의 나는 사실 행복할 일이 없었다. 많은 일들로 인해 '인생은 정말 혼자구나',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거구나'를 뼈저리게 깨달으며 울적할 때가 많았는데, '행복은 나로부터 번져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표현에 짧은 찰나였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내 삶이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짐작도 가며 나의 인생의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또한 얻게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아내가 참 부러웠다.

           햇살이 맑고 따뜻한 날에도

           비가 와서 춥고 어두운 날에도

           매일매일 지켜보며 넉넉한 사랑을 주고 싶다.

           딸아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라든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부모로서 늘 되새기는 약속이다.

 

           그렇게 되새기는 동시에 늘 아내를 떠올린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도 딸아이와 똑같이

           자식의 행복만을 바라는 부모님에게

           누구보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라는 걸.

                       - 본문 23~24쪽 인용 -

          그러면서 저자는 한 가지 더 덧붙여 말하고 있다. '소중히 아낀다는 건, 그 뒤에 있는 이야기까지도 함께 끌어아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 대목을 읽는데 저절로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그 뒤에 있는 이야기까지도 함께 끌어안는다'라는 말 속에 담긴 모든 상황들이 충분히 짐작이 되었으며, '내 뒤에 있는 이야기'가 오버랩되며 과연 나의 배우자는 '내 뒤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안아주고 있나 생각해보게 되었고, 아울러 나 역시 '내 배우자 뒤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안아주었는지 되짚어보게되었다.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저자는 그렇게 했기에 '행복'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삶을 예쁘게 가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번역본이라 그다지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한 게 사실이건만 책이 점점 중반부, 후반부로 넘어가도록 번역본이라는 생각을 할 사이가 없었다. 감동을 받거나, 밑줄을 그어 둘 정도로 마음에 와닿는 내용들이 넘치고도 넘쳐서 급기야 처음에 밑줄 그어가며 읽어가던 것을 나중에는 멈춰야 했다. 그렇게 읽다가는 책의 모든 내용에 밑줄을 그어야 할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파랑새'라는 명작동화를 읽었던 적이 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행복을 찾아 여기저기를 찾아헤매다가 결국 집에 와서 행복을 찾는다는 이야기였는데,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반경 1m내에 있는 나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번져간다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행복해져야 내 주위의 사람들도 행복해지는 것이니 내가 먼저 행복해지기로 말이다. 그러다보면 반경 5미터, 10미터, 50미터까지도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좋은 상상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