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 인류학적 오답 연구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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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P 4~6 가장 영리한 실패

인간은 문제를 만나면 머리를 쓴다. 답을 만들고, 고치고, 더 나은 답을 또 만든다. 그 능력 하나가 인간을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이렇게 영리한 종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실패한다. 답을 만들어놓고, 그 답이 새로운 문제가 된다. 다됐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데서 무너진다.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 흘러갈지는 끝까지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만드는 순간에는 당장 눈앞의 문제에 더 강하게 끌리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보여주려는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들 아래 깔려 있는 하나의 패턴이다. 이 책은 인간이 반복해온 오류의 기록이다.

 

제목이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이라서 책을 읽고 싶다는 이끌림으로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동물중 가장 최상위의 인간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오류를 발생할 것이고 그 사건들에는 패턴이 있다는 기록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습니다.

 

PART 1 정의와 폭력

P 12 이 장에서 보게 될 형벌들은 단순히 잔혹한 옛이야기가 아니다. 그것들은 한 사회가 죄인을 어떻게 보았는지, 권력이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그리고 인간이 정의를 말하면서 어디까지 폭력을 정당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과거부터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만든 정의와 형벌, 정당성에 대한 타당성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그 시대의 형벌은 어떻게 구성되고 만들어 졌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P 13~22 자루 형벌. 절차라는 이름의 면죄부

죄인을 짐승과 함께 묶어 처리하는 의식은 단순한 처형이 아니라, 공동체가 폭력을 정의의 절차로 바꾸며 죄책감을 지워내는 장치였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던 고대 로마의 형벌 중 하나인 포에나쿨레이, 즉 자루 형벌은 죄인을 자루에 넣어 묶은 뒤 물에 던지는 처형으로 전해진다. 그 번거로운 절차는 사실 인간의 본증적인 저항인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잔인함을 정의로 포장하기 위한 정교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정의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시대적 합의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자루 형벌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이 범한 오류였다.

 

존속 살인이라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기에 당연하게 벌을 받아야 마땅 합니다. 그런데 형벌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자루 형벌은 지금 시대의 정의로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예전에 사형수들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이 죄책감에 많이 괴로워 해서 3명의 집행관이 동시에 버튼을 눌러 실제로 누가 누른 버튼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는지 모르게 방식이 바꿨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자루 형벌을 행하는 절차와 사형수의 집행 절차가 왠지 닮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P 23~29 코끼리 형벌. 살려줄 수도 있다는 공포

이 형벌의 핵심은 죽음 그 자체보다 군주의 자비와 처벌이 한순간에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군중 앞에서 보여주는 데 있었다. 하지만 왜 본능대로 움직이는 맹수 대신 코끼리라는 동물을 처형장으로 불러냈을까? 코끼리의 지능과 훈련 가능성은, 이 동물을 역사상 가장 정밀하게 통제하는 처형 도구로 만들었다. 도대체 코끼리를 이용한 처형이 오랜 시간 동안 넓은 지역에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권력의 연출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인간이 범한 오류는 권력자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폭력을 덜 행사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폭력의 축소가 아닌, 미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살려줄 수도 있다는 말은 언뜻 보면 관대해 보이지만 사실은 더 완벽한 지배를 뜻하기도 한다. 코끼리 처형이 사라진 것은 인간이 그 잔혹함을 성찰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새로운 권력이 오래된 권력의 도구를 대체한 것이다.

 

코끼리 형벌에 가려진 권력자의 폭력을 알고 나서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잘못에 대한 형벌에 대한 기준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공룡은 사라져도 지금까지 코끼리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코끼리 형벌은 사라진 이유가 새로운 권력의 도구에 의한 대체라는 사실 또한 놀라울 따름입니다.

 

PART 2 감옥 : 통제와 역설

P 62 인간을 망가뜨리는 데 필요한 최소 조건은 무엇일까. 이 장에서 보게 될 감옥들은 단순히 범죄자를 가두는 시설이 아니다. 그것들은 통제가 어디까지 인간을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국가가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P 100~107 산 페드로 교도소. 돈이 법이 되는 감옥

국가가 규율을 포기한 자리를 돈과 거래가 대신하면서, 감옥 안의 질서는 법이 아니라 구매력에 따라 재편된다. 교도관은, 판사가 넘긴 수감자들을 교도소 안으로만 안내하고 담장 바깥에서만 지키는 단순한 문지기에 불과하다. 볼리비아 사법 체계의 구멍과 만성적인 예산 부족이 겹치면서, 국가는 교도소의 운영을 포기했다. 형벌의 무게를 결정하는 건 범죄의 크기가 아니라 통장 잔고다. 국가가 형벌의 집행을 포기하고 수감자에게 자치를 넘기면, 수감자들이 만드는 건 자유가 아니다. 불평등이다.

국가는 예산을 아꼈고 감옥은 스스로 경제를 돌렸으니, 완벽한 방치의 경제학이 완성된 셈이다. 국가가 손을 놓은 감옥에서 수감자들은 사회를 만들었다. 그 사회는 바깥 세계의 복제품이었다. 이것이 자본의 공포다.

 

산 페드로 교도소를 읽으며 나는 진정 자본의 공포를 간접적으로 체험했습니다. 교도소 안의 규칙과 규율이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자본에 의해서만 이루어 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믿을 수 밖에 없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은 진정 무엇일까요?

어느 책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평등을 외치며 똑같이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의 돈을 지불해 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로 나뉘어 지더라는 것을 보면 자본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P 108~119 ADX 플로렌스. 완벽해서 무서운 감옥

이곳의 공포는 통제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너무 성공적이어서 인간접촉과 시간감각마저 제거해 버린다는 데 있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간들. 이 인간들을 죽을 때까지 가둬놓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들어라. 보안 체계는 단순하면서도 과잉이다.

설계자는 폭력을 제거하려 했다. 성공했다. 그런데 폭력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평화가 아니었다. 진공이었다. 자극이 없고, 접촉이 없고, 변화가 없는 완전한 진공. 그리고 인간의 뇌는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감옥은 사람을 다루는 제도인가, 아니면 위험을 관리하는 장치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ADX 플로렌스 감옥입니다. 인간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것만으로 싸움, 무질서, 폭력이 사라졌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혼자는 살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폭력이 사라지면 당연히 평화가 찾아 올 줄 알았는데 진공상태라니 그리고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점입니다.

 

PART 3 완전범죄 : 완벽과 균열

P 122 인간은 왜 완전범죄를 꿈꿀까. 거기에는 자기 통제력에 대한 과신, 상대를 끝까지 조종할 수 있다는 착각, 그리고 자신은 평범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이 함께 들어 있다. 그들은 인간이 완벽함을 설계하려 할 때 어디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P 123~135 BTK, 더스트. 관객 없는 완벽은 견딜 수 없다

완벽한 범죄를 꿈꾼 사람은 끝내 그것을 혼자만의 비밀로 남겨 두지 못한다. 어떤 허영심은 스스로 무대 위로 걸어 나오고, 어떤 허영심은 무심한 틈 사이로 새어 나온다. 때로는 과시욕, 자만심,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허점이 더 치명적인 균열이 되었다.

이것은 기묘한 역설이다. 잡히지 않는 것이 완벽한 범죄의 조건이라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도 완벽한 범죄의 조건이어야 한다.

형벌을 설계한 권력자들도, 감옥을 설계한 국가도, 누군가가 그것을 봐야 했다. 범죄자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 인간은 이것을 견디지 못한다.

 

우리는 완전범죄는 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언젠가는 범죄가 밝혀진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사람이 가진 특징 때문이라고 하니 아이러니 합니다. 내가 저지른 범죄를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과시욕 때문에 나는 완벽하다는 자만심 때문이라고 하니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만의 비밀이 밝혀 지는 것은 결국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누구에 의해서 그 비밀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어쩌면 내가 발설한 것이니까요.

 

P 157~169 레오폴드와 로엡. 실수하지 않는다는 확신

완벽한 범죄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던 것은 치밀함이었지만, 실제로 그 계획을 무너뜨린 것은 자신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자기는 애초에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이, 가장 기초적인 점검마저 멈추게 만든다. “우리는 틀리지 않는다는 전제였다. 그들은 실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계산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월감의 오류는 이런 구조다. 자신은 틀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순간, 틀릴 가능성 자체를 계산에서 지워버린다. 완벽하다는 확신이 점검을 멈추게 하고, 점검이 멈춘 자리에서 가장 단순한 균열이 시작된다.

 

완벽하게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까요? 나는 완벽해 그리고 틀리지 않다는 생각은 유독 범죄를 저지를 때 더 강력하게 발휘되는 행동 인 것 같습니다. 꼭 나쁜일에 이런 자신감과 우월감을 나타내야 하는 것일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의 심리적인 부분을 이용해 범죄를 밝히는 것에 이용되기도 하지만 완전범죄를 실행해보고 싶었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끝까지 잡히지 않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에 분노하게 만듭니다.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올까 까지 생각했었더라면 이런 일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PART 4 전쟁 무기 : 해답과 재앙

P 172 인간은 왜 전쟁에서 늘 더 정교한 무기를 만들려 할까.

전쟁 무기는 언제나 분명한 목적에서 출발한다. 더 빨리 이기기 위해서, 더 적은 희생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더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그 계산이 설계도 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간이 승리를 설계하려 할 때 어디에서 가장 크게 오판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전쟁을 지시한 사람은 절대 전쟁터에서 써우지 않습니다. 명령만 할 뿐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도 모두 전쟁을 주도한 사람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입니다. 그럼 이 전쟁에서 또 어떤 설계 때문에 엄청난 결과들이 나오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P 172~183 판젠드럼. 거대한 문제, 거대한 착각

문제가 압도적으로 커 보일수록, 인간은 해답 역시 같은 크기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믿기 쉽다. 판젠드럼은 그 과감함이 얼마나 쉽게 착각으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의 압박과, 뒤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엔 이미 투입된 시간과 노력과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문제가 크고 급할수록, 인간은 해결책도 그만큼 과감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해결책의 크기가 문제의 크기를 닮아 갈수록, 의외의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판젠드럼이 그랬다. 문제를 크게 볼수록 해답도 커져야 한다고 믿는 순간, 해결책은 종종 스스로 또 하나의 위협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환경과 시간의 압박 속에서는 아무도 정상적인 생각과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사건입니다. 전쟁이라는 환경과 제한된 시간의 압박이 없었다면 그 많은 인명피해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들을 가지고 계속 잘못된 실험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네요.

 

P 232~243 에이전트 오렌지. 성공이 멈추지 않을 때

이 무기의 가장 큰 공포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었다. 너무 잘 작동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피해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남았다. 화학 물질로 나뭇잎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잎이 떨어지면 바닥이 보이고, 숲 아래에 숨어 있던 적의 모습도 드러난다. 이 발상이 에이전트 오렌지의 출발점이었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정체는 고엽제, 즉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화학 물질이었다. 그런데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설계자들이 계산 안에 끝까지 넣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크게 우려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다이옥신이었다. 적에게 쓸 것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엽제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대가를 치르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설계자들은 화학 물질이 퍼지는 공간의 범위와, 그 물질이 남는 시간을 모두 과소평가했다.

문제는 인간이 그 해결책을 설계하는 순간, 자신이 결과까지 함께 설계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쟁 무기가 드러내는 인류학적 오답이다. 인간은 언제나 더 정교한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왔지만, 정작 그 무기가 세상과 부딪힌 뒤 어디까지 번져 나갈지는 끝내 완전히 계산하지 못했다.

 

에이전트 오렌지가 고엽제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1988년 랜치 핸드 작전에 관여한 미 공군 연구자 제임스 클레리 박사가 고엽제의 아이옥신 오염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적에게 쓸 것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더 잉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늘에서 뿌려진 고엽제들이 바람에 날려 공기중에 사람들이 호흡할 때 신체에 흡수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땅에 그대로 내려 앉을 거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요? 한 번만 뿌린 것도 아니고 10년 가까이 살포했다고 하는데...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그 많은 피해자들에게 제임스 클레리는 어떤 보상과 사죄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나중에 베트남전에 참여한 미국 군인들은 치료와 보상이 가능해 졌다고 하지만 베트남 국민들은 어떻게 치료와 보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네요.

과거 인류학적 오답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과 인류애가 제일 필요할 때가 전쟁이 아닐까란 생각과 함께 유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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