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드라마 - 무의식에서 나를 흔드는 숨겨진 이야기
앨리스 밀러 지음, 노선정 옮김 / 양철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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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읽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이 책을 다 읽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이 책은 내 과거의 상처를 끊임없이 직면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 책을 다시 펼치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난 어렸을때부터 줄곧 우울한 감정을 달고 살았다. 대학와서 부모와 처음 떨어졌을 때 짜릿한 해방감을 느끼고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놀았을 때 외엔 줄곧 우울감은 날 따라다녔다. 초등학생 때, 사춘기때, 취업을 하며,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그리고 현재까지 말이다. 줄곧 나란 누구인가를 항상 고민하며 살았기에 난 우울감이 많은 아이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며 살았고 이 우울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는 내게 가장 큰 과제였다. 때문에 상담을 실제로 받은 적도 있고 상담을 공부한 적도 있으며 자존감에 대한 책도 꽤 읽어왔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이 책은 내 우울감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계속해서 찾아보도록 날 자극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20년간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얻은 깨달음과 연구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도 많이 서술되어 있는데 내 어렸을 적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되어 읽기가 참 힘들었다. 나는 어렸을 적 부모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지속적으로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과 진정한 나 자신과 겉으로 드러난 내 자신 사이의 괴리에서 나는 어둠속으로 어둠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타인들의 욕구가 보내는 무의식적인 요구와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는 특별한 감각 체계를 발달시키게 되었고(p.20)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하며 대리만족을 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나와 같은 사람들은 내면을 반성하는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공감하는 성향을 가졌는데 이는 어린 시절에 가졌어야 마땅한 감정들을 부정하며 감정을 지나치게 자제하거나 왜곡하려는 성향, 또는 훌륭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p.17)


훌륭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 아래 나 스스로를 줄곧 채찍질하며 살아왔는데 이 책의 38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스스로가 느끼는 만큼 그렇게까지 늘 잘못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우리가 흔히 믿는 식으로 잘못을 한 건 아닌지도 모른다." 참 위안을 받고 눈물을 흘린 구절이었다. 굳윌헌팅의 "It's not your fault."구절이 자동적으로 연상이되며 무엇때문에 나 스스로를 이렇게 매몰차게 대했는지 되돌아보게 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내세우며 끊임없이 과거의 나를 마주보게 하고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안을 주며 자신의 진실을 바로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더이상 과거의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감정의 체험을 통해 의식을 달리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책 한권으로 나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이제부터 과거에 함몰된 삶을 살지 않으리라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나와 주변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분명하다.

 

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이 책에서 인상깊게 읽은 구절 몇가지를 소개하며 마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자식은 그야말로 언제나 부모 곁에 있어주는 존재다. 아이는 부모를 버리고 도망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한편 부모는 아이를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도록 키울 수 있다. 아이에게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받아들이게 할 수도 있으며, 아이들의 사랑과 존경 속에서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투영해 볼 수 있다. ... 아이들의 눈은 부모의 모든 발자국을 언제 어디서든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p.25)

 

어린아이가 자기만의 참된 감정을 경험하고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순간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고착화되며, 자신의 욕구와 다른 사람의 욕구를 구분하는 경계를 설정할 수 없게 된다.(p.29)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는 맨 처음부터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워요. 방치되고 학대받고 착취당한 아이는 그걸 영영 배울 수가 없지요. 하지만 난 알고 싶어요. 그리고 난 미하엘에게서 사랑을 배워요. 천천히, 날마다 조금씩 새롭게, 부모님의 잘못된 가르침에 반하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고 있어요. 언젠가는 나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으면서요.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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