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한길그레이트북스 26
에드문트 후설 지음, 이종훈 옮김 / 한길사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여 년 전 칸트는 한 때 학문의 여왕이었지만, 이제는 웃음거리로 전락한 형이상학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순수이성비판을 저술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었던 철학의 한계를 설정하고, 진리 자체보다는 그 진리가 가능한 조건을 탐구하는 (메타)학문으로 철학을 재정의 하였으며, 그를 통해 당시 태동하던 자연과학의 위협에 맞서 철학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런 칸트의 시도에서 출발한 독일 관념론은 결국, 쉘링과 피히테를 거쳐 헤겔에 의해 (실상 칸트가 구상했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완성되었는데, 그러한 노력과 별개로(아니 심지어는 그것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면서 까지) 자연과학은 점차 견고한 학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가면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가히 지배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자연과학주의의 득세는 실증주의(positivism)라고 불리는 사조의 전성기로 대변된다. 실증주의란 기본적으로 감각적 경험이나 실제적으로 검증 할 수 있는 지식만이 유의미한 지식이라고 간주하는 일종의 인식론적 태도 혹은 방법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실증주의는 원래 물리학과 같은 제한적인 학문 영역에서 통용되어져 왔던 하나의방법론이었으나, 이 시기 자연과학의 득세와 함께 그 지배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사회 물리학을 제창하며 사회학의 기틀을 닦았던 콩트나, 인간의 심리를 하나의 실증적 연구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다양한 실험과 통계적 방법론을 적용하고자 했던 빌헬름 분트와 같은 실험 심리학, 심지어 언어의 변천을 엄격하고 합리적인 자연과학적 법칙에 의한 것이라 믿었던 라이프치히 대학의 문법학자들(소장문법학파)에 이르기까지, 가히 학문의 전 영역으로 그 지배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자연과학에 반대되는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의 독자적인 영역을 수호하려는 시도 역시 여전히 존재해 왔다. 정신과학이라는 용어를 제창하며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설립하려면 딜타이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문화과학(Kulturwissenschaft)이라는 용어를 제창했던 신칸트학파의 수장 리케르트나 빈델반트, 이해 사회학(verstehende Soziologie)

이라는 독자적인 연구 방법론을 제창하며, 실증적 자료와 분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콩트류의 실증주의적 사회학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했던 막스 베버 같은 사람들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철학의 영역을 지키려는 칸트의 시도를 다시 한 번 반복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방법론적으로 실증주의에 얽매이거나, 궁극적으로 모든 학문의 메타 학문으로서 보편학을 추구했던 칸트와는 달리, 그저 자연과학과 병치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을 정초하려는 시도에 머무르고 말았다. 후설의 현상학은 바로 이러한 학문적 위기에서 출현한 학문으로, 진리를 실재하는 객관적 사실에 머물게 하려는 실증주의와 주관적 인식의 구성주의적 틀로 환원하려는 유사 관념론적 입장 모두를 비판하면서 의식의 지향성과 대상간의 관계를 엄밀히 연구하여, 인식과 관련해서 선험철학의 견지에서 하나의 엄밀한 보편학을 추구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후설 현상학은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등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적으로 수용, 발전되어 하나의 독자적인 철학체계를 형성 하였으며, 오늘날 까지도 매체철학, 미디어 학, 미학, 영화 비평등 다양한 영역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학문으로, 구조주의나 분석철학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조로 손꼽히고 있다.

 

유럽학문..은 후설의 말년(1936)의 저작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기 보단 그때까지 전개된 이론들을 정리하는 느낌의 저작으로, 현상학이라는 거대한 사조에 입문하기 위한 하나의 입구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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