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상처 입힌 일에도 내 잘못부터 찾으려고 했다. 내 잘못을 찾을 수 없을 때는 타인의 잘못을 실수라고 이해했다. 나만 잘하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고 자랐다. 책임을 묻거나 외면하거나 눙치려는 어른이 아니라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나타나길 바라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도 감사하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며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신앙인들을 볼 때가 있다. 물론 많은 분들이 그분들의 상처를 공감하며 함께 분노해주고 마음을 다독여주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피해자의 고통은 고려하지 않고 용서하라는 다그침으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더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을 볼때가 있다. 특히 가해를 가한 상대가 부모일 경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인용해 피해자를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을 보았을 때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또한 교회 내에서 용서라는 이름으로 범죄가 묵인되고 덮고 넘어가는 식으로 처리될 때, 하나님은 가해자들을 위한 하나님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하지만 예수님을 붙들고 기도한 끝에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용서는 피해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이 책을 읽고 많은 분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억압 속에서 상처가 곪아 가게 두어 자신의 삶까지 썩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분노하되 분노에 삼켜지지 말며 용서하되 자신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스스로를 고통으로 몰지 않았으면 좋겠다. 간혹 마음을 무너뜨리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겠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놓지 않고 살아냈으면 한다.
저는 문학을 위해 노래합니다. 생명을 위해 노래하고 사랑과 존엄을 위해 노래합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어느 날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이나 대대로 전승되는 명작을 쓰고 말겠다는 사치스러운 희망을 갖지 않습니다. 문학으로 인해 위대해지거나 이름을 빛내야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문학이 제 속마음과 영혼을 보다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서문 중
...할 수만 있다면 내 품에 안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몸 위에 난 더러운 손자국들을 지워주고 싶었다. 그녀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아니다. 나는 그녀와 나이가 같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녀의 나이는 살아온 햇수, 달수, 날수가 아니라 얻어맞는 동안 본 별들의 개수, 그것일 테니까.p.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