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 갈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든 온다. 가족이나 사람, 책임이나 사랑, 그리고 의무나 대의. 그리고 그냥 시절로부터도.'쇼코의 미소' , '내게 무해한 사람' 등 섬세한 작품을 쓰는 최은영작가의 밝은 밤. 이 책 속의 많은 그녀들의 밝지 않았던 밝은 밤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큰 짐을 얹고 살아가야 하는 때가 있다. 의도와 다르게 내 삶이 다른길로 간다. 회피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말 아닌지 알 수 없는 주인공 지연이 물의 도시 희령에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내가 어릴 적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는데 할머니는 할머니 답지 않게 이야기를 잘 못하셨다. 난 할머니들은 다 이야기를 잘하는 줄 알았다. 실망이 컸다. 결국 할머니에게 아무이야기라고 해달라고 떼를 썼다. 그냥 아무이야기라도.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까 그냥 할머니의 관심을 요구한건지도 모른다. 어릴때나 커서나 할머니께 요구한건 관심이나 내가 듣고 싶은 표현이나 칭찬이었다. 한번도 할머니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할머니와 엄마와 나 , 엄마와 딸, 부모와 자식 이라는 불평등한 관계는 표현하기 미안할정도로 누군가의 희생의 깔려있기 쉽다.결국 인간이 지켜내야 하는 가치와 무게는 같구나. 70년전에는 70년전의 무게가 지금은 지금의 무게가 포장만 다를뿐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하는 길은 같다. 지연의 할머니는 가슴에 어떤 뜨거움을 품고 살아왔을까 한사람 한사람의 긴 역사는 내 앞에 장엄하게 펼쳐진다. 목숨을 걸고 살며 지켜낸 가치들이 나를 겸손하게 했다.모든 관계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건 쉽지 않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은 매번 새로운 관계에서 무너진다. 기간이 얼마나되는지 알 수 없는 누구나의 남은인생에서 헤어짐을 기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일까 삼천이의 외로움이 오롯이 느껴진다.삼천이를 움직이게 하는, 그를 그답게 만드는 에너지원은 무엇이었을까.모두의 마음을 꺼내어 씻어서 넣어주고 싶다. 세탁기 삶음 코스로도 돌리고 건조로 뽀송하게 말리고 어떤 날 ,상처가 깊을 때는 미지근한 물에 손빨래 해서 다시 넣어주고 싶다. 여러 상처를 안고 사는 여인들. 그리고 전쟁과 가난이 주는 시련들 속에 인내 할 수 있는 마음의 근원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착하고 성실히 일만 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착취당하거나 속기 쉽다. 굶고 가난하고 당하는 사람들을 또.다시 움직이고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가족은 싸우고 울고 표현하고 살며 어떤 가족은 짐작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것을. 상처는 아무리 보여줘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을. 떠안고 가는 그런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는것을. 나는 치유받는다고 믿었다. 누구나 치유받는 장소가 있고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다행일텐데. 항상 인간의 관계가 가장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인간으로부터 치유받지 않은가. 미처 다 읽지 못한 편지들이 궁금한, 밝은 밤이다. #밝은밤#최은영#문학동네#북클럽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