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곁에 있어주던 사람에게
박병순.박탄호 지음 / 부크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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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한참을 숨죽인채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눈물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습니다.

읽으면서 삼십 년도 넘은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라 콧끝이 찡-했습니다.



저희 아빠는 제가 중3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삼십년도 넘었네요. 사실 저는 그리움 보다 미움이 많은 아빠였습니다. 엄마를 그렇게 고생시키시고 한량으로 사신 것도 모자라 엄마와 자식 가슴에 대못을 박고 가셨기 때문이죠.



아빠의 극단적인 행동은 중학생 여자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충격이었더랬습니다. 간경화를 앓고 계셨기에 아빠의 삶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만. 뭐가 그리 급해서, 뭐가 그렇게 힘들어 세상을 놓아버리신걸까요.



당신의 속마음은 십분 알지 못하지만 엄마보다 더 힘드셨을까. 살아생전 엄마한테 다정은 커녕 누가 ㅇ씨집안 아니랄까봐 술만드시면 폭군이 되시는 당신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사신 엄마보다 더 힘드셨을까.



이곳저곳 멍이들어 골골 하시면서도 당신 손에 죽을고비를 몇번이나 넘으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하얀 쌀밥을 지어 대접하며 사신 엄마보다 더 힘드셨을까. 그렇게 첩첩산골에 엄마를 처박아놓고 낮이나 밤으로 음주로 방탕하게 사신 당신을 이제나 저제나 무서움에 애태우며 사신 엄마보다 더 힘드셨을까.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농사 한 번 안지어 본 엄마를 당신께선 술로 니나노 하시는 동안 뙤얕볕에서 묵묵히 밭을 일구시던 엄마보다 더 힘드셨을까.



그렇게 한량으로 사시면서 빚까지 잔뜩 져놓고 자식새끼 주렁주렁 넷씩이나 남겨놓고 나이 마흔에 과부 만들어 놓고 가신 당신은 저세상에서 편안하신지.



저는 지금도 아빠를 미워합니다.

아니, 용서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이 큰 만큼 미움도 크다나요? 하지만 아빠와 저와의 삶은 겨우 십육년 밖에 없는데 그마져도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습니다. 미워할 만큼의 사랑이 있었어야 미워하죠. 뜨믄뜨믄 엄마에게서 들었던 것 밖에는요.



그래서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아버지가 참으로 많이 부러웠습니다.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 맹목적인 사랑과 아들을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아내에게는 또 얼마나 로맨틱한 남편이었는지 너무나 감동이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특히나 아들에게, 아내에게 쓴 편지들을 읽을 때는 눈시울이 붉어지더랬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주옥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어쩌면 그렇게 희망과 용기가 묻어나는 말씀이셨던지, 당신의 아들인 것을 그런 남자의 아내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실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부모란 게 저도 자식 낳아 키워보니 맹목적일 수 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게 내가 힘들고 어렵게 살았다면 더 그렇게 되더랍니다. 내 자식은 나만큼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게, 부모 보다 더 잘 살아줬으면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더라구요. 당신 입에 들어갈 거 하나라도 아껴뒀다 자식 입에 넣어 주시는 게 그걸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 그게 부모 더라구요.



나라로부터 부모를 잃고, 월남전에 끌려가 지독한 후유증을 얻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다발골수종(혈액암)까지 얻었으니. 이럴 때는 남들 말하는 신이 참 야속하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선하디 선한, 법 없이도 살 분을 어찌이리 가혹하게 만드시는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악한 마음 품지 않았고, 남을 속이거나 원망하려 들지 않았고, 나눌 수 있는 거라면 사소한 것까지 나누려 했던, 그러면서도 자식과 아내를 끔찍히도 위했던, 그래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미워한 사람이 없었고 존경과 위대한 분으로 기억되는 아버지로 남으셨다는 거.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이 글을 읽고 어찌 그런 생각이 안 들까요. 저 역시 그러했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로서 부러웠고 저자 님이 부러웠고 저자 님의 어머님이 부러웠다면 믿으시겠는지요.

비록 다발골수종이란 병으로 힘들고 고통스럽게 견디다 가셨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또한 크시겠지만 제가 만약 아들이었다면 아내였다면 마냥 슬퍼만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남겨진 추억이, 사랑스런 추억이, 따스한 추억이, 함께 공유할 추억이 많으니까요. 하나 하나 열어 볼 수 있는 추억이 많다는 게 남겨진 사람에게는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과 희망이 될거라는 걸 아니까요.



추억을 소환하고 싶어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만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모릅니다.

생각하니 저는 또 원망만 하려드네요.

심지어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 한장 없다는 게 참으로 애석합니다.



부모를 잃고 가시는 날까지 당신이 아닌 자식 위해 가족 위해 온 마음과 힘을 다 쏟아내신, 내 자식이 귀해 남의 자식까지 귀하게 대하신 아버지의 성품을 길이 새겨야겠습니다.



부디 저 하늘에서는 고통 없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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