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는 부모님 라인업이 별로라 그래서, 내년에 나가려구~ 너는 성격 골랐어? 지역은? 아 진짜?태어나기 전에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거다(적어도 우리가 기억하는 한). 언제부턴가 의식이 생겼을 때, 이미 우리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난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우린 일단 태어나버렸다.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어디다 신청한 것도 아닌데. 일단 태어나버렸으니, 살긴 살아야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사는게 참 어렵다. 남들처럼 살기도 어려워 죽겠는데, ‘넌 왜 줏대가 없냐’며 고나리하는 사람들. 그렇다고 내 맘대로 살아보려하면 ‘넌 철이 없다’고 비난한다. ‘철 들었다는 말은 그 말에 부합되는 나를 만들기 위해 내 진짜 욕구와 목소리를 죽이게 끔 만든 주범이었다. 생각해보면 철 없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다수가 하는 일에 얽매이지 않고 눈치 안보고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지. 결국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을 후려치는 말이었던 거구나…'‘일단 태어났으니 산다’는 제목만 보면 굉장히 삶에 의지가 없고 무기력한 내용으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뒷면엔 이런 글이 써있다. “매사에 불평이 많다고 해서 삶에 애착까지 없는 건 아냐.” 실제로 그렇다. 오히려 삶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린다. 내가 그랬듯이. 이상이 높고 기대가 크기에, 내 현실과의 간극을 발견할 때 마다 끊임없이 슬퍼하고 좌절한다. ‘우울도 졸이고 졸이다보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이 오는데, 그 순간만큼은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출처 모를 용기가 생기곤 한다.’일단 태어났으니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