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수는 왜 매국 우파가 되었나? - 해방 이후 우익의 총결산, 뉴라이트 실체 해부
이병권 지음 / 황소걸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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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매서운 성장통을 앓는 중이다. 지난해 말 갑자기 시작된 이른바 ‘계엄 정국’은 그간 우리나라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오래된 갈등을 드러나게 했다. 그 갈등은 소위 ‘진보-보수’의 정치적 갈등인 동시에 ‘페미니즘-안티 페미니즘’의 성(性) 갈등’이며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기성세대-MZ세대’의 세대 갈등이기도 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드러난 갈등의 표출과 봉합은 하나의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임은 분명하지만 그 도화선이 된 계기가 ‘계엄’이라는 다분히 폭력적인 형태였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매우 빠르게 민주주의가 들어오고 정착된 나라 중 하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작을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보는 이도 있고 1948년 5월 치러진 남한만의 단독선거로 보는 이도 있지만, 분명한 건 수백 년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민주주의를 가꾸어 온 서양의 많은 국가와는 달리 우리는 이제 100년 남짓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민주주의 신생국’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안착한 100년 서사 속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일제 치하로부터의 광복, 남북 분단, 군사 독재정권의 횡포,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한 부의 축적과 배분 문제 등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근·현대사적 흐름이 함께 담겨 있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고민과 공부,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맞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시간적 여유 없이 청산되지 못한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병권 작가가 집필한 책, 「대한민국 보수는 왜 매국 우파가 되었나?’」는 극우 세력으로 불리는 ‘뉴 라이트(New Right, 신보수주의 우파)’ 가 등장한 배경과 우리 사회에 침투하게 과정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통찰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간 우리 교육 과정에서 터부시되며 숨겨 왔던 현대사의 다양한 굴곡과 비밀을 다룬다는 점에서 읽어봄직 하지만 책의 내용을 온전히 탐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정치와 역사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내겐 어려운 책이었다. 책 한권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내용을 다 풀어내기엔 부족했으며 차라리 두 세권으로 출판되어 조금 더 자세하고 쉽게 책의 내용을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리뷰는 글을 읽어내려가며 떠오른 단상(斷想)들을 적어 내려가는 것으로 갈음하려 한다.

대한민국 보수는 어디에 있는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라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시대와 형태를 뛰어 넘어 대부분의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언급한 이 사자성어에는 구태의연하게 ‘옛 것’만을 고집하지도, 대책 없이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지도 않는 조화의 자세가 담겨있다. 이 사자성어를 현대의 정치로 옮기면 ‘온고’는 보수(우파), ‘지신’은 진보(좌파)가 된다. 즉, 보수는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을 지켜내고 진보는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새로운 가치들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과거의 것들 중에 좋은 것을 취하고 그것을 발판삼아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 보수를 토대로 건강한 진보가 싹트게 하는 것이 바로 ‘온고지신’이다. 이는 결국 건강한 보수 없이는 건강한 진보도 탄생할 수 없음을 뜻한다. 문제는 2025년 현재, 대한민국에 ‘보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공존을 위한 가치를 제시하는 보수가 아닌 자신만의 부와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치달은 극우, 이른바 ‘뉴 라이트’ 세력들이 보수를 자처하며 그 세를 불리고 있을 뿐이다.

뉴 라이트 극우 보수 진영이 스스로의 이념을 합리화 할 때마다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본래 경제학 용어다. 1929년 대공황 이후 20세기 중반을 거치며 대세로 자리 잡았던 ‘케인즈 주의(정부의 적극적 시장 관여 추구)’가 1970년대 발생한 오일쇼크, 스태그플레이션 등을 겪으며 한계를 드러내자 다시 고전적 자유주의로 돌아가자며 등장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며 이들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근거로 시장의 무한 경쟁을 추구했다. 2008년 미국의 서브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며 경제학에서 자취를 감춘 신자유주의는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한 정치 세력의 사상적 근거로 재탄생하게 된다.
뉴 라이트 진영이 표방하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과도 연결된다. 다윈의 이름이 들어갔지만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과는 다른 개념이다. 다윈의 진화론의 경우, ‘환경에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이론적 배경이 되는 반면 사회진화론은 ‘강자만 살아남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질서’라는 강자생존(强者生存)을 표방한다. 다윈의 진화론 속 적자생존의 ‘적자’는 ‘강자’가 아니다. 책에 나온 예시를 그대로 소개하자면 남극에서 생존한 펭귄들의 경우 강해서가 아니라 지방층이 두껍고 깃털이 촘촘히 박혀 있어 추운 환경을 잘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뉴 라이트 보수 진영이 그 이념적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사회진화론’은 무한 경쟁을 통해 강자만이 살아남은 ‘강자생존의 사회’로 직결된다. 그래서 이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정책과 활동들은 기존 기득권 세력의 부와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진화한다. 그 과정 속에서 보수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사라지고 오로지 자기 진영의 생존과 번영만을 도모하는 이기적 유전자만이 남겨진다. 이를 위해서라면 나라와 역사를 파는 건 대수가 아니다.

정치와 민주주의는 내게 무엇인가?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다다른 끝에서 내가 마주하게 된 건, 정치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연적 질문이다. 며칠 전, 언론인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MBC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났다. 민주주의란 ‘공존의 기술’이라는 것. 필연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서로를 말살하지 않고 함께 생존하기 위한 장치가 민주주의이며 이는 다수결의 원칙과 합의를 통해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으며 나아가는 것이라 했다. 나와는 다른, 때로는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싫어지는 상대가 있더라도 ‘얼마만큼 상대를 인정할 수 있느냐’가 민주주의에게 던져진 질문이자 풀어야할 과제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하고, 때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를 배우기 위해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민주주의를 포함한 정치라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정치 초보다. 인류 등장 후, 수천 년이 지났고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이룩한 지도 수백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 끼 식사를 해결하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수십 만 원의 기름진 음식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으며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말살하고 죽이는 전쟁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초보가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왕도가 없다. 그저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며 정답 비스 무리한 것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대한민국 보수는 왜 매국 우파가 되었나?’」 는 한번쯤 나와 우리를 둘러싼 어렵지만 꼭 마주보아야 하는 정치적 담론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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