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기억의 저편에서 삶의 실을 잣는 쓸쓸하고 따스한 이야기들> 이 책은 9개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입니다. 화려한 반전과 흥미를 바란다면 이 책은 선택하지 마세요. 하나 하나의 작품이 모두 서정적이고 가만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고 나의 슬픔을 성토하고 오천 번, 아니 오만 번을 죽었다 살아나는 의식의 부작위성. 그 순수한 속삭임에서 생의 의미를 갈구하고자 하는, 그런 분들께만 감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아르테 작은책에 붙이는 작은 찬사(讚辭)

우리나라 불멸의 속담 중 하나는 “작은 고추가 맵다”이다.
이 속담이 식상하지만 불멸인 이유는 작은 것들이 전부 다
매워서라기 보다는 작아 보이는 것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아직도 만연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르테의 작은책 출간은 참 반갑다.
작지만 절대 작지 않고, 가볍지만 단연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한국 소설들로 가득해지길 바란다.


2. 아르테 작은책 컨셉에 적확하게 부합하는 소설.

이 책은 정말이지 ‘작은책’이라는 옷을 제대로 입은 느낌이다.
캐주얼하고 가독성 좋은 소설이지만 사회를 향해, 사람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작지만 매운 그런 소설이다.

아직은 어린 ‘문지혜’의 눈으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죽음.
한순간도 할머니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한 채 말이 앞섰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진하고 배려 깊은 소녀.

“그렇지만 지혜야, 너무 그렇게 남들 눈치 보고 거기에 다
맞춰줄 필요도 없다. 너는 워낙에 네 기분보다 남의 속을 먼저
들여다보니까,순서가 반대로 됐잖니. 그게 걱정이야.” __(120p)


3. 죽음이라는 명사에 선택지를 부여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의식의 잃음’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려 한다.
할머니에게는 오히려 어렵지 않아 보이는 선택이기만 하다.
(물론 안락사가 합법화 된 미래의 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이제부터는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어서 나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 사람도 차분하게 자기가 뚝딱 계획 세워서 저세상 갈 수
있도록 허락을 해준다는 얘기야. 얼마나 좋아그래.” __(48p)

은모든 작가가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박력있게 일어나진 않지만 마지막 단락을 읽은 이에게
이런 선택을 한 인간에 대한 ‘여운’과 ‘울림’을 주고 싶었다”고.

그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이 소설은 너무나도 성공했다.
선택된 죽음의 씁쓸함과 그로부터 파생된 공명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쉬이 멈출 줄을 모르니 말이다.

————
인물, 사건, 배경이 적절히 구성된 Well-made nove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인터내셔널의 시간은 공간을 초월한다.

제목부터 나의 의식을 공기 중에 부유하게 만든다.
“인터내셔널의 밤.”
인터내셔널은 왜 외래어로 표기했을까?
국제의 밤, 세계의 밤이 아닌 인터내셔널의 밤이다.
단순히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는 <인터내셔널가>를 의도한 걸까?

거기서 의문은 멈추지 않는다.
밤이라는 시간적 개념이 주는 몽상적 메타포.
그 순간부터 인터내셔널은 공간이 아닌 시간으로 치환된다.

이미 떠나간 것, 지금 떠나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떠나갈
미지의 새로운 시간. 이 세가지로 의식을 집중해 본다.

2. 이미 떠나간 것 __ 삶의 안락과 영혼

무엇인지는 모를, 아니 생각조차 무의미한 ‘박한솔’의 수술.
과거는 과거로서 잊혀진다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현실.
그렇게 떠나버린 삶의 잔혹함이 만들어 낸 생채기와 흔적들.

일본에서 결혼하는 친구 ‘영우’만이 떠나버린 전부는 아니다.
현재까지 아슬하게 이어져 온 삶의 영속이 깨진 그 순간 이전
삶 전체가 ‘한솔’에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앎의 고리들이 끊기는 일들. 서로 알고 있는 기억들이
부분부분 끊겨서 누군가는 분명하게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은 그 기억만 청소하듯 버려버린다.” __(28p)

3. 지금 떠나고 있는 것 __ 교통수단의 물질성과 의식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한솔’과 ‘나미’. 그 우연이 또다른 수단인
‘배’에 까지 이르게 된 인연을 주조한다.
현재의 심리상태를 교통수단으로 빗대어 표현한 메타포가
단연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차 시간표로 눈을 돌리면 멀리 간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고
비행기를 생각하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열차는 내릴 수가 있고 비행기는 내릴 수 없이 도착만 있어서
그럴까.” __(73p)

4. 앞으로 떠나갈 시간 __ 인터내셔널의 밤

이제 밤은 ‘한솔’에게 인터내셔널의 밤이다.
배를 타고 가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영우’의 결혼식을 보러
일본까지 가는 일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의 주민등록을, 내 영겁의 세월을 흘려 보내버리는 일이다.

이제 ‘한솔’에게 주민등록이란 그저 촘촘한 숫자들의 무작위성
배열에 불과하다.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겠다.
하나의 세상에서 배제된 ‘무존재’로 존재할거니까.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__(37p)

————
“손에 든 수첩에 방금 떠오른 말을 썼다. ‘모든 것이 좋았다’고.” __(11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렇게 저는, 삶을 채우는 문장들을 만났습니다.>

작가 중에는 쉬운 말도 부러 어렵게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어렵고 복잡한 말도 가슴에 사무치도록 쉽게 쓰는
작가가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법치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브라이언 타마나하’ 교수입니다.
학자의 주장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어려워요.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이 책의 작가 백영옥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말도 쉽게 풀어낼 뿐 아니라 심지어 뇌리에 아름다운
문장들을 각인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곱씹어 보게 만드는.
저에게 백영옥이라는 이름은 그런 존재인가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1분, 1초마다 인식한다면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까요. 감당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불시에 버려진 사람들은 비로소 행복의 정의를 새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행복은 평온한 순간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행운이 멈추기 전까지의 상태일 뿐이라고요.”
_ ‘흘러간, 놓아준 것들’ 중에서.


<가끔은 지나치리만큼 흘러넘쳐도 괜찮습니다.>

슬픔의 격랑이 심장을 잠식해 들어갈 때,
고독의 무게가 버텨온 삶보다 무겁게 짓누를 때,
외로움의 온도가 차가워 심장 한 켠이 얼어버리려 할 때,
그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지는 않나요?

슬픔을 슬픈 감정 자체로 인식하는 일,
힘듦을 살아가는 과정 중 하나로 생각하는 일,
그러한 마음의 출구는 눈물과 웃음 같은 감정의 표출이 아닐까 생각해요.

작가는 말합니다.
때로는 약함을 내보일 수 있는게 진짜 용기라고.
가끔은 그냥 흘러넘쳐도 좋다고.

“무언가를 사랑하며 산다는 건 그것이 주는 행복뿐 아니라
고통도 함께 원해야 하는 것이죠.” _ 프롤로그 중에서.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