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2
이경화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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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죽음과 소녀
지은이 : 이경화 / 펴낸곳 : 주니어김영사

 

학습부진아 재희. 초등 4학년 때부터 정육점의 돼지고기 등급처럼 따라 붙기 시작한 꼬리표다. 한의사 아빠에 전국 석차 상위 3%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오빠와 비교되며 엄마의 완벽한 가정을 망가뜨리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기준이 선과 악의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스스로 나쁜 것으로 구분해 주눅 들어있다. 학교에서도 존재감 없이 지내는 방법을 터득한 후에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들을 피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 전학이었다. 재희는 그게 다시 시작하는 마지막 선택이라 믿었다.


그렇게 아무도 흔들리는 소녀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소녀 곁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끌어내린 '죽음과 소녀'의 음악을 듣고, 그림을 드로잉북에 옮겨 그릴뿐이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가 1915년에 그린 그림 <죽음과 소녀>는 열일곱 살 소녀가 잔뜩 겁을 먹고 불안한 표정으로 죽음을 안고 있으며, 소녀는 죽음을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는 듯 그려진 그림이다. 또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던 슈베르트가 자신의 어두운 삶을 반영한 작품으로 영원한 잠으로서의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을 의미하는 음악이다.


열일곱 살의 재희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그래서 마음을 끌어내리는 이 작품들에 빠져있다. 마치 소녀가 된 듯 재희는 그 그림에 매달렸고, 음악을 들으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차단했다.


재희는 긴 머리카락에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긴 머리카락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어막이었다. 고개를 약간 숙이면 머리카락이 내려와 시선이 차단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에 학교에서도 그렇고 전학 온 학교에서도 친구라 믿었던 친구가 왜 갑자기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지 재희는 이해가 안 된다. 여전히 수업시간에는 우리나라 말을 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도통 알 수 없는 채 시간은 느리게 가고 있다. 소녀는 또 다시 외톨이가 된 것 같다.


툭하면 '공부도 못하는 게' 라고 폭언을 내뱉는 재희 엄마의 태도에 화가 났다. 무책임한 엄마의 모습과 아무런 말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재희가 안타까웠다. 재희를 이용하기만 하려는 친구들, 조롱하는 친구들에게 화가 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선생님도 미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에서 빠져나와 그로인해 모르고 있었던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재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찾아간다. 재희를 사랑하는 아빠와 오빠, 미안해하는 엄마 그리고 모두 아닐 것 같았지만 사실은 신경써주었던 친구가 있었기에 재희는 다시 용기를 내본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되었고,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보기도 한다.


재희를 보면서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에 읽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혹시나……하는 염려에서다. 자존감과 용기 한 가닥 없이 죽음만을 생각하는 재희를 보면서 주위에 친구, 가족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거다. 청소년들의 자살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현실에서 그 아이가 삶을 포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과 갈등이 함께 했을지 재희를 보며 짐작이 됐다.


하지만 재희가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좀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책 읽는 동안 내내 들었다. 학교에 유독 소심하고 말도 없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먼저 말을 걸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창문이 닫혀 보이지 않아도 태양은 언제나 환하게 떠 있단다.”
재희 아빠가 재희에게 해준 말이다.
태양은 곧 희망이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내일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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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단비, 연예인 되다 직업체험동화 4
길해연 지음, 강희준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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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겁 많은 단비 연예인 되다
글쓴이 : 길해연 / 펴낸곳 : 주니어김영사

 

직업체험동화 그 네 번째 이야기 <겁 많은 단비 연예인 되다>에서는 주인공 단비가 연극배우, 가수, 개그맨의 직업을 체험한다. 책을 보면 화려하게만 보이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 노력하지 않으면 꿈을 이루기 힘들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된다.


간혹 방송에서 스타들의 뒷이야기가 나올 때면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길게는 연습생만 10년 가까이 보냈다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 긴 시간동안 연습과 노력을 통해 꿈을 이뤄낸 연예인들도 있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정상에 서있어도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인기가 지속되다 보니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더 많은 노력과 경쟁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럼 단비를 따라 직접 연극배우, 가수, 개그맨의 직업을 체험해 보자. 체험을 통해 그 직업이 하는 일을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어 꿈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단비는 연예인이 되는 게 꿈이지만, 무대 공포증이 있어 제 실력을 뽐내지 못한다. 연습할 때는 노래도 춤도 성대모사도 훌륭하게 해내지만, 막상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겁이 나서 입도 벙긋 하지 못해 속상하기만 하다.


아빠는 그런 단비를 보고 아빠 친구가 하는 연극 극장을 구경시켜 주기로 한다. 세워진 지 30년이 넘은 극장 무대에 올라간 단비는 무대 위를 걸어 보면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뛴다. 그 때, 어디서 본 듯한 할아버지가 단비를 이끌고 바쁘게 이동한다.


"자, 이제부터 네가 네 꿈의 주인공이다." 라는 말을 하면서…….


순간, 단비는 연극배우가 되어 연극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에 정신이 없지만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의 오필리어 역할이다. 처음 하는 연극에 연출선생님은 발음이 나쁘다며 단비는 혼이 나기 일쑤다. 그때 단비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네는 햄릿 역의 준이 오빠 도움으로 기초부터 호되게 개인 교습을 받는다. 하지만 너무 힘든 훈련 탓에 단비는 배우를 그만두려고 한다. 그러면서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게 된다.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낸 단비는 아무것도 모르고 연극배우를 동경하기엔 수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로 체험하게 되는 직업은 가수다. 아이돌가수가 대세인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가수가 인기최고의 직종이다. 하지만 성공한 몇몇 가수들의 연습생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하루아침에 스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꿈 앞에서는 노력과 열정, 인내심이 훗날 소중한 밑거름이 된 다는 것도 알게 된다.


단비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수십 번 연습하고 보컬 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으며 가수의 길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열 번 해서 안 되면 백 번을 해. 백 번 해서 안 되면 천 번을 하고. 천 번 해서 안 되면 만 번을 하란 말이야." 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훈련과 인터뷰 등을 강행하면서 가수는 단순히 노래와 춤을 추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는 직업임을 깨닫게 된다.


이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유행어를 만들어 내는 개그맨을 체험한다. 개그맨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땀과 눈물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신입 개그맨인 단비는 파트너인 준이와 아이디어를 짜고 심사를 받지만, 인정을 못 받고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결국 대학 개그 동아리로 돌아가 그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고,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연습하고 노력해서 당당히 방송국으로 돌아온다.


책은 연극배우, 가수, 개그맨의 화려한 이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화려함 속에 가려진 노력과 힘든 연예인의 길을 단비를 통해 직접 느껴보고 경험하게 함으로서 아이들에게 훨씬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좋아하는 연예인 한두 명은 있는 아이들이 텔레비전 속에서 화려하고 멋지게 나오는 그들을 보며 막연하게 연예인이라는 꿈을 갖기도 한다. 나도 저만큼은 노래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시키면 저 연예인 못지않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뒤따르는지는 알지 못한다. 화려한 그늘에 가린 그들의 자유 없는 사생활과 정상에 올랐어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책은 연예인의 허와 실,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어서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돼줄 듯하다.


화려한 이면만 보고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라면 더욱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와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된다는 것은 오랜 시간 준비한 노력과 눈물의 결과이다. 또한 그들은 꿈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꿈을 향한 노력과 열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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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왕눈이 아저씨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7
앤 파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도서명 : 하필이면 왕눈이 아저씨
앤 파인 저 / 햇살과나무꾼 엮 / 펴낸곳 : 비룡소


좀처럼 맘에 들지 않는 엄마의 남자친구를 어떻게 해야 엄마한테서 떨어지게 할지 키티는 고민이기만 하다. 가족도 아닌데 하루가 멀다 하고 제 집처럼 들락거리며 아빠처럼 잔소리를 해대서 귀찮고 싫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엄마와 동생 주드, 고양이 플로스와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엄마의 남자친구가 등장한다. 적은 머리숱에 뚱뚱하고, 나이가 쉰 살인데다, 지구의 미래가 달린 핵 문제엔 관심조차 없는 아저씨가 말이다.


‘하필이면 왜 왕눈이 아저씨야?’
아저씨의 이름은 제럴드 포크너이다. 치마 입은 엄마의 다리를 훔쳐보며 개구리처럼 눈이 커지는 '왕눈이 아저씨'가 키티'는 싫기만 하다. 더욱이 엄마랑 활동하고 있는 핵 비무장 운동에 대해 비판적이고, 시시콜콜 자꾸만 끼어들어 참견하는 왕눈이 아저씨와 마주치거나 말하기도 싫다.


- 내가 싫어하는 것 -
‘우리 집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꼬박꼬박 찾아온다. 살이 축 늘어지고 독선적인 이것은 우리 집이 자기 집인 양 군다.’


이렇게 작문숙제의 주제로 써서 낼 정도로 아저씨가 싫기만 하다.


또한 키티는 왕눈이 괴물을 어떻게 하면 쫓아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 엄마의 옛 남자 친구 이름 들먹이기.
- 숙제에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작문을 해서 왕눈이 아저씨 심사 긁기.
- 절대로 눈 맞추지 않기.
- 있어도 없는 척 무시하기 등.
그렇게 소심한 복수를 하지만, 엄마와 주드, 플로스까지 아저씨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도대체 키티는 싫기만 한 아저씨를 왜 엄마와 동생, 고양이는 좋아하는 것일까?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저씨가 무조건 싫기만 했다. 그런데 엄마와 우리들을 챙기는 모습과 빈자리가 느껴지는 어느 순간 받아들이게 된다. 겪어보니 보기보다 책임감 있고 한결 같다는 것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혼 후 잘 웃지 않던 엄마가 아저씨와 있으면 훨씬 행복해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일 만큼 마음이 따뜻하기도 하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한결같아서 같이 있으면 편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제 아저씨가 익숙해진 것이다. 키티는 아저씨를 붙박이 가구 같다고 표현할 정도다. 엄마하고 결혼해도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며 아저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가 또 있다. 친구 헬렌 엄마에게 생긴 남자 친구는 ‘두꺼비신발 아저씨!’ 같은 고민을 지닌 친구의 마음을 먼저 이런 고민을 겪었던 키티가 위로한다.


분실물 보관 벽장에 들어가서 키티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왕눈이 아저씨를 처음 만날 날부터 엄마의 남자친구가 아닌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야기까지 아저씨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헬렌 역시도 이야기의 힘을 통해 새로운 가족에 대한 고민을 씻는다.


주변엔 이혼과 재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이 만들어진 경우를 많이 본다.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는 건 처음 가정을 만들 때보다도 훨씬 힘들 것이다. 이미 마음의 상처를 안은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가정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따를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책은 새로운 가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각자의 입장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 보게 한다. 불안한 심리의 아이들 입장에서도, 엄마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애쓰는 아저씨의 입장도 볼 수 있다. 어느 누구 하나 편치 않은 사람은 없지만, 결국 마음을 여는 게 가장 먼저인 듯하다. 마음을 여는 순간 갈등과 고민이 사라지고, 진심으로 새로운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단단해진 가정은 행복이라는 결말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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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왕눈이 아저씨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7
앤 파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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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명 : 하필이면 왕눈이 아저씨
앤 파인 저 / 햇살과나무꾼 엮 / 펴낸곳 : 비룡소


하필이면 왜 그 사람일까?
‘하필’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이라고 나와 있었다. 뜻을 풀이하자, 주인공 키티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직설적으로 담겨있었다.


엄마의 새 남자친구를 보며 십대 소녀인 키티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엄마와 동생 주드, 고양이 플로스와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엄마의 남자친구가 등장하면서 고민에 휩싸인다.


좀처럼 맘에 들지 않는 엄마의 남자친구가 키티는 싫은데, 엄마와 주드, 플로스까지 아저씨에게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못 차린다. 제 집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리는 '왕눈이 괴물'을 어떻게 하면 쫓아낼 수 있을까? 키티는 고민 아닌 고민을 한다.


아저씨의 이름은 제럴드 포크너이다. 치마 입은 엄마의 다리를 훔쳐보며 개구리처럼 눈이 커지는 '왕눈이 아저씨'가 키티'는 정말이지 싫기만 하다. 적은 머리숱에 뚱뚱한 것도 싫고, 나이가 쉰 살인 것도 싫다. 더군다나 지구의 미래가 달린 핵 문제엔 관심조차 없고 주식 기사나 읽으니 더 싫다. 더욱이 엄마랑 활동하고 있는 모임인 핵 비무장 운동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고 눈치가 없어서 마주치거나 말하기도 싫은 존재이다. 가족도 아닌데 키티 네 집을 매일 드나들며 아빠처럼 잔소리를 해대서 귀찮고 싫다.


정말 얼마만큼 미워하고 싫어해야 엄마한테서 떨어질지 고민이기만 하다. 그래서 작문숙제로 '내가 싫어하는 것'에 쓸 정도로 아저씨가 싫기만 하다. 그 내용이 우습기도 하지만 키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적어본다.


‘우리 집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꼬박꼬박 찾아온다. 살이 축 늘어지고 독선적인 이것은 우리 집이 자기 집인 양 군다.’


아저씨를 쫓아내기 위해 키티가 생각해낸 방법이란 게
- 엄마의 옛 남자 친구 이름 들먹이기.
- 루피 선생님이 내준 숙제에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작문을 해서 왕눈이 아저씨 심사 긁기.
- 절대로 눈 맞추지 않기.
- 있어도 없는 척 무시하기 등.
그렇게 소심한 복수를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가 또 있다. 키티처럼 헬렌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혼한 엄마에게 생긴 남자 친구는 ‘두꺼비신발 아저씨!’ 얌전하고 착한 헬렌은 수업 시간 도중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울자, 루피 선생님은 키티에게 헬렌을 부탁한다. 먼저 이런 고민을 겪었던 키티가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둘은 분실물 보관 벽장에 들어가서 엄마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키티는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왕눈이 아저씨가 어떻게 자신들 앞에 나타났으며, 엄마와 자신들 사이에 끼어들어 어떻게 방해를 했는지, 그리고 왜 그 아저씨가 그토록 싫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엔 트집을 잡고 자꾸만 끼어들어 참견하는 왕눈이 아저씨에게 가시를 세우고 덤볐지만, 이혼 후 잘 웃지 않던 엄마가 아저씨와 있으면 훨씬 행복해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는 그런 자신들 옆에 있어주는 아저씨의 존재가 믿음직스럽고 고맙게 느껴진다.


처음엔 고리타분하고 빡빡한 줄만 알았던 왕눈이 아저씨가 겪어보니 보기보다 책임감 있고 한결 같다는 것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재판장에 선 엄마를 찾아가 엄마가 왜 반핵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면서 지켜주고 함께했다. 그리고 집에 남겨진 우리를 위해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일 만큼 마음이 따뜻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무조건 싫기만 했던 마음에서 이젠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현재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헬렌의 마음을 위로한다.


가족이 해체되고 재혼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 요즘에 책은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이혼 자녀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하는 엄마,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저씨까지. 그들의 생활을 보면서 부모님과 함께 잘살고 있는 나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키티 네가 아저씨와 가족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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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언덕
한나 얀젠 지음, 박종대 옮김 / 비룡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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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언덕 너머 그래도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꾼다.’


1994년 르완다 내전 중 민족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아프리카 소녀 잔이 부르는 죽음의 늪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연가


도서명 : 천 개의 언덕
글쓴이 : 한나 얀젠 / 펴낸곳 : 비룡소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중 발생한 민족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소녀 잔의 아픈 이야기이다. 내전에서 살아남아 독일 양부모에게 입양되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그려낸 이야기로, 작가인 독일인 엄마가 잔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아픔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일을 직접 겪어야 했던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본 사건은 끔찍하리만큼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 짐승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책머리부터 물음표가 자꾸 나왔다.


르완다는 독일과 벨기에에 의해 오랫동안 식민지로 있었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가난한 후투족과 소수이면서 부를 독차지한 투치족의 갈등은 소수의 투치족이 다수의 후투족을 지배하는 형태였다. 그렇게 서방국가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독립을 하는 가슴 아픈 역사 속에 두 부족 간의 권력 쟁취를 위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끊임없이 정권을 차지하고 그 정권을 반대하는 반군들 간의 또 싸움이 벌어지면서 그들 간의 내전은 다른 나라의 관심에서 벗어나면서 장기적으로 갈등은 더 심화되어갔다.

 


교사인 부모님과 오빠, 여동생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잔. 어려운 것 없이 여유롭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던 잔의 가족은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8살 소녀 잔은 여동생을 질투하기도 하고, 병원 가는 걸 무서워하기도 하는 평범한 소녀였다. 투치족이라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그러던 중 잔의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크나큰 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이 타고 가던 헬기가 폭발하고 주요관리들 역시 죽으면서 투치족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할머니 집에 친척이 다 모여서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게 어제 같은데 말이다.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소식 하나로 마을엔 이상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 살던 친척의 소식을 전하로 온 소년. 잔의 마을도 곧이어 내전에 휩싸인다.


후투족 자치 군은 대통령 살해의 책임을 빌미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투치족을 닥치는 대로 살해한다. 내 민족이 어디냐에 따라 갈라진 운명들. 어제는 바로 옆에서 살던 이웃을 오늘은 찾아가 죽이는 세상으로 변한다. 한 마을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어느 날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하고, 살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고 약탈자가 되어버렸다.


후투족을 피해 도망 다니던 잔의 가족들과 이웃들은 시장의 도움을 기대하고 믿었지만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그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나온 잔은 도망치지만 돌아본 곳에서 발견한 건 비참하게 죽어가는 엄마였다. 아빠와 오빠, 동생 테야 역시도 잔인한 죽음 앞에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결국 잔만 생지옥에서 살아남지만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몸 하나도 지키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마지막까지도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잔은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며 결국 투치족 반군들을 찾아가 살아남는다. 그렇게 인종 학살은 백일 만에 종식됐지만, 이 민족갈등의 내전은 거의 백만 명의 주검을 남겼다. 8살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혹한 현실이었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은 적이 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해하고, 무자비한 약탈과 만행을 저지르는 걸 보면서 잔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를 나도 느낄 수 있었다. 한 편에선 빨래를 널며 하루를 평온하게 시작하고, 한 편에선 사람을 죽이는 광경이 100일 동안 르완다에서 펼쳐졌다. 기억을 들춰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그 잔인한 기억을 이렇게라도 끄집어내 세상에 알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죽어간 가족, 이웃, 민족을 위로하지 않았을까?


책제목이기도 한 <천 개의 언덕>은 잔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옛날 아프리카의 훌륭한 왕이 옥황상제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오는 언덕이다. 왕은 힘겹게 천 개의 언덕을 넘어 가서 옥황상제에게 왕의 북이라는 칼링가를 선물 받는다. 칼링가는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소리를 울려 아프리카 방방곡곡에 알려주는 북인데, 이 북소리는 귀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북소리다. 잔의 이야기는 천개의 언덕을 넘어온 칼링가의 북소리처럼 그때의 아픔을 우리에게 가슴으로 울리며 알려주고 있다. 잔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앞날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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