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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소녀 ㅣ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2
이경화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12년 10월
평점 :
도서명 : 죽음과 소녀
지은이 : 이경화 / 펴낸곳 : 주니어김영사
학습부진아 재희. 초등 4학년 때부터 정육점의 돼지고기 등급처럼 따라 붙기 시작한 꼬리표다. 한의사 아빠에 전국 석차 상위 3%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오빠와 비교되며 엄마의 완벽한 가정을 망가뜨리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기준이 선과 악의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스스로 나쁜 것으로 구분해 주눅 들어있다. 학교에서도 존재감 없이 지내는 방법을 터득한 후에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들을 피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 전학이었다. 재희는 그게 다시 시작하는 마지막 선택이라 믿었다.
그렇게 아무도 흔들리는 소녀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소녀 곁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끌어내린 '죽음과 소녀'의 음악을 듣고, 그림을 드로잉북에 옮겨 그릴뿐이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가 1915년에 그린 그림 <죽음과 소녀>는 열일곱 살 소녀가 잔뜩 겁을 먹고 불안한 표정으로 죽음을 안고 있으며, 소녀는 죽음을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는 듯 그려진 그림이다. 또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던 슈베르트가 자신의 어두운 삶을 반영한 작품으로 영원한 잠으로서의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을 의미하는 음악이다.
열일곱 살의 재희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그래서 마음을 끌어내리는 이 작품들에 빠져있다. 마치 소녀가 된 듯 재희는 그 그림에 매달렸고, 음악을 들으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차단했다.
재희는 긴 머리카락에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긴 머리카락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어막이었다. 고개를 약간 숙이면 머리카락이 내려와 시선이 차단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에 학교에서도 그렇고 전학 온 학교에서도 친구라 믿었던 친구가 왜 갑자기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지 재희는 이해가 안 된다. 여전히 수업시간에는 우리나라 말을 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도통 알 수 없는 채 시간은 느리게 가고 있다. 소녀는 또 다시 외톨이가 된 것 같다.
툭하면 '공부도 못하는 게' 라고 폭언을 내뱉는 재희 엄마의 태도에 화가 났다. 무책임한 엄마의 모습과 아무런 말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재희가 안타까웠다. 재희를 이용하기만 하려는 친구들, 조롱하는 친구들에게 화가 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선생님도 미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에서 빠져나와 그로인해 모르고 있었던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재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찾아간다. 재희를 사랑하는 아빠와 오빠, 미안해하는 엄마 그리고 모두 아닐 것 같았지만 사실은 신경써주었던 친구가 있었기에 재희는 다시 용기를 내본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되었고,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보기도 한다.
재희를 보면서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에 읽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혹시나……하는 염려에서다. 자존감과 용기 한 가닥 없이 죽음만을 생각하는 재희를 보면서 주위에 친구, 가족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거다. 청소년들의 자살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현실에서 그 아이가 삶을 포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과 갈등이 함께 했을지 재희를 보며 짐작이 됐다.
하지만 재희가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좀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책 읽는 동안 내내 들었다. 학교에 유독 소심하고 말도 없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먼저 말을 걸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창문이 닫혀 보이지 않아도 태양은 언제나 환하게 떠 있단다.”
재희 아빠가 재희에게 해준 말이다.
태양은 곧 희망이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내일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