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파트를 읽으며 꽤나 놀랬던 사실은 반 고흐가 사실 자신의 귀를 자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신의 귀를 잘랐고 그의 자화상을 실제로 그렸다는 점에서 반 고흐는 괴짜 화가로 유명했다. 하지만, 앞뒤 정황을 봤을 때 반 고흐는 귀를 스스로 자를 이유가 없었으며,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도 사실 친구였던 고갱의 주장이였다고 한다. 잘못된 이미지를 부여하여 광기 어린 신화를 입혀 혹여나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저자의 용기 있는 해석이었고, 저자의 합리적인 추론을 따라가 보다 보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반 고흐가 고집이 세고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미치광이라는 것은 과대 해석이라는 학자들의 이야기들이 있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치고는 너무 평안하게 열정적으로 그림 작업을 했으며, 당시 반 고흐를 치료하던 의사도 '간질 발작' 정도로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소문만으로 주변 사람들은 반 고흐를 멀리하고 싫어했으며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런 사람들의 적대감에 반 고흐는 고립감을 느끼고 힘들어 했다. 그런 사람들을 떠나 자신의 작업에 좀 더 집중하고 건강을 회복하고자 병원에 들어가 개인 화실에서 그림 작업에 집중했던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까마귀 나는 밀밭' 작품에서 반 고흐가 자살을 암시했고 불행한 삶을 담아냈다고 하지만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림 속 까마귀는 새로움의 전조를 알리는 새였다. 나 또한, 처음에 그 그림을 봤을 때 반 고흐의 어둡고 광적인 모습이 까마귀 떼로 형상화되었나 했는데 앞 뒤 정황과 상황을 이해해 볼 때 그는 당시 절망에 빠져 있던 것이 아니였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반 고흐 삶의 발자취가 돋보인다. 반 고흐는 아버지가 목사였으며, 중산층 가정의 자녀로 상대적으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책 읽기를 좋아했고 조용하지만 친절하며 정이 많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작품들을 보면 타고난 천재성으로 그림을 잘 그렸다기보다는 엄청난 노력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설립한 노력형 화가라는 결론에 신빙성이 있다. 반 고흐는 아트 딜러로써 첫 사회 경험을 헤이그에서 시작한다. 이런 화상으로써의 경험이 그의 예술 세계의 기반을 잘 다져주었고 무슨 그림을 좋아하고 그리고 싶은 지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했다. 아트 딜러로써 꽤 많은 돈을 벌으며 승승장구했지만 돌연 그는 그림 파는 일에 흥미를 잃고 교사로써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교회와 종교에 대한 사랑으로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여러 이유로 네덜란드 및 벨기에 신학교에 입학하지 못한다.
반 고흐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싶어했었지만 대신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을 그림으로 드러내어 연약하고 상처 받은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의무를 일깨우고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 고흐의 <복권 판매소>, <이탄을 지고 가는 연인들>, <목수의 작업장과 세탁장> 등 지금 반 고흐의 화풍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작품들에서 그가 외치는 세상의 의무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무미건조하게 객관적으로 똑같이 그려내는 그림보다는 메세지와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대상의 표현보다는 본질에 집중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창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미에 대한 그의 올곧은 신념과 지속적인 배움을 통해 본질을 간파하는 시대의 걸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반 고흐와 고갱과의 관계가 정말 궁금했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견해를 가진 두 화가가 예술 공동체에서 함께 활동을 하고 결국 오해가 점철되어 둘 사이가 멀어지고 마는데, 반 고흐는 고갱을 꽤 좋아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반 고흐는 <반 고흐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그렸는데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고갱의 의자는 좀 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반면 반 고흐의 의자는 소박하며 노동자의 냄새가 난다. 반 고흐은 두 사람을 의인화해 그림에 담았고 고갱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해 그림을 그린 것이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