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죄의 궤적 1~2 - 전2권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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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쿠다 히데오, 하면 자연스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공중그네'와 '남쪽으로 튀어!'이다. 그리고 나는…… 그 두 작품을 읽다가 포기했었다. 그만큼 오쿠다 히데오는 내게 있어서 ‘불호’로 남아있는 작가이다. 


그런데 <죄의 궤적>은 내가 알고 있던, 혹은 생각하던 오쿠다 히데오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장르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범죄 소설, 사회파 미스터리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기에(실패만 했을 뿐) 비교가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오쿠다 히데오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 걸작'이라는 평은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죄의 궤적>은 일본 전역을 뒤흔든(너무 뻔한 표현이지만 이만큼 정확한 표현은 없을 듯하여) 유괴 사건. 그 유괴 사건의 시작을 되짚어, 추적해 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는 어느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이 되는데, 분명 '유괴 사건'에 관한 책이라는 설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1권을 다 읽기 전까지도 유괴의 '유'자도 등장할 기미가 없음에 몇 번이나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책에 관한 정보를 다시 읽어봤다(혹시 내가 다른 책과 헷갈린 건가 싶어서…). 조금 계산이 느릴 뿐인 이 빈집털이범과 유괴 사건이 대체 무슨 상관이지?

(읽다가 어느 순간 ‘아…’하고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이 찾아오는 구간이 있는데, 사전 정보 없이 읽는다면 그 충격이 더 할 거 같다.)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나오는 이야기의 경우, 대부분 자극적인 범죄를 묘사하며 ‘얼마나 더 잔인한가’를 겨루곤 한다. 잔인한 사건을 내세워 읽는(혹은 보는) 이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그 범인이 잡혔을 때의 통쾌함을 오락으로서 제공하는 것이다. 


<죄의 궤적> 역시 학대, 사이코패스, 유괴, 매춘 등등... 인간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각종 요소가 집합해 있지만, 이 작품은 범죄 자체는 묘사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범죄 자체에 주목을 하지 않는다. 범죄자가, 그런 범죄를 일으키기까지의 과정, 성장기. 마치 나비효과처럼… 방치되고 학대되었던 아이가 감정 없는 살인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그를 감싼다거나 죄의 무거움을 좌시하는 건 아니다. 이러한 끔찍한 범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 건지.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부터가 소설인지 읽는 내내 궁금했는데, 그만큼 작가의 묘사가 섬세하고 집요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 무시하고 잔인한 범죄의 근원은 어디일까? 이 소설은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든다. 범죄자는 검거되었고, 사건은 해결된 듯하지만 그 어떤 통쾌함도 없이 찝찝함만 남는 이유이다. 


인간의 죄는 구분될 수 있을까? 

읽고 나서도 한동안, 지금까지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

#오쿠다히데오 #죄의궤적 #은행나무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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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세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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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이나 편집 후기가 아닌 작품 해설이 덧붙어 있는, 그 작품 해설을 집중해서 꼼꼼하게 읽어본 소설은 실로 오랜만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했는데, 작품 해설까지 읽고 나서도 어리둥절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답십리 도서관을 배경으로, 상주 작가인 ‘나’의 시점으로 쓰인 이 책은 블랙 유머인 듯 판타지인 듯 알 수 없는 소설이다.

상주 작가로서,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은 하지 못한 채 언뜻 월급 루팡으로도 보이는 작가 ‘나’.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의,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다며 거칠게 비판하는 화학 교수 KC. 자신이 상주 작가가 되지 못했음에 분노하며 복수를 결심했다가, 자신의 범죄에 작가를 끌어들이는 진진. 도서관을 누비며 ‘똥!’이라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민활성까지…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 평범하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도 예측할 수가 없다. 일반적인 형식의, 줄거리가 있는 소설은 아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유머를 담아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체 소설이 뭐기에,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냐고. 그냥 똥이라고 외치는 듯하다(개인적으로, 이렇게 똥이라는 글자를 많이 봐야 하나 싶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를 하고, 서평을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짧은 분량으로, 금방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쉬이 평을 남기지 못했던 이유이다…(그냥 느낀 그대로 쓰기로 했다.)

개인적인 감상은… 모르겠다. 소설은 이래야 한다,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번 틀에 박힌 이야기만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쓸 필요도 없고 말이다. 이런 실험적인 작품, 작가가 존재해야 하는 게 맞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내 취향이 아닐 뿐.

실험적인 작품을, 파격적인 형식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깔깔 웃으며 읽었을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 어떤 책보다도 다른 이들의 감상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에서 지원 받았으나, 솔직한 감상을 남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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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여름 - 이정명 장편소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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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의 원작 소설을 쓴 이정명 작가의 신작 <부서진 여름>. 두 작품 모두 책은 물론이거니와 드라마도 본 적이 없지만, 그 명성은 익히 들은지라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몰입도가 높은 추리 소설이라는 설명 덕에 더욱. 


<부서진 여름>은 돈과 명예를 모두 쥐고 있는, 성공한 화가 한조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인구 30만이 안 되는 이산시의 자랑거리다. 초반에 묘사가 된 부분을 보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나중에 꼭 저 사람처럼 돼라’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아내는 자신의 비서 역할을 자처하며 작품 활동 이외의 모든 일들을 처리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조는 역대 최고 낙찰 금액을 받고 아내와 소소하게 자축 파티를 한다. 이 행복이 영원할 것만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 이야기는 그 행복이 깨지며 본격적으로 진행이 된다. 한조의 아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화차>같이, 사라진 아내의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내는 의도적으로 한조를 떠난 것이 맞았고, 그 일은 그를 26년 전의 한 살인 사건으로 데려간다. 한조가 사랑했던 여고생, 지수의 죽음. 


이야기는 26년 전의 그 사건을 훑으며, 독자를 혼돈의 카오스로 빠트린다. 사건의 전말이, 범인이 궁금해 계속해서 책장이 넘어가고… 이해할 수 없었던, 한조의 아내에 대한 비밀도 서서히 드러난다.


‘몰입도가 높은 추리 소설’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한 번 든 책을 놓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조금 시시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디서 몇 번은 읽어본 듯한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다. 결국 밝혀진 진실은 허무하고, 복수의 이유나 방법도 다소 허술하게 느껴진다.  스포일러가 될까 싶어 자세하게 쓸 순 없지만 앞뒤가 안 맞는 구석도 있었다. 다소 찝찝한 결말… 


누군가의 거짓말이, 한 마디가, 오해가, 걷잡을 수 없이 큰 사건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어 낸다. <부서진 여름>은 그러한 사건을 섬세한 묘사와 문체로 다루고 있다. 특히 사랑, 증오, 그 외의 복잡한 감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해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 


그들이 그토록 오래 침묵을 지켜온 이유는 서로를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진실은 덮어둔다고 사라지지 않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토록 오래 침묵의 내부에서 자라난 거짓이 그들을 파멸시킬 거라는 뒤늦은 깨달음이 밀려왔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에서 지원을 받았으나,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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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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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라카미 류는 나에게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이다. 때는 중학교. 무라카미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일본 작가들이 출판 업계를 휩쓸던 시점이었다. 그 안에 무라카미 류가 포함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하루키에 빠진 문학소녀(?!)였음에도 무라카미 류의 작품은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는데, ‘외설적이다’는 평가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류의 작품들을 접한 친구들은 주로 외설적이다, 파격적이다, 기분이 나쁘다(?!)는 평가를 하곤 했다. 같은 무라카미이니 취향에 맞을 거라는 희한한 발상으로 도서실에서 책을 빌렸던 나 역시 이내 책장을 덮었던 기억만 있다. 


때문에 작정단의 첫 선정 도서로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 나인’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난감했다. 식스티 나인. 게다가 청춘물이라니... (평소 영화든 책이든 남학생들이 바글바글 나오는 청춘물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없다.)


그때는 이 책이 왜 이렇게 외설적으로 느껴졌을까. 세월이 지난 지금 읽으니 외설적이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제목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여전히 기분이 나쁜 책이다. 새롭게 개정된 상큼한 표지에도 내용은 구시대적이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편견을 갖고 읽었기 때문일까? 


1969년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이가 풀어내는 그 시절의 썰, 철없는 남자 고등학생의 시점에서 쓰인 이야기는…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유머스럽게 쓰인 비유나 표현, 경쾌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도 좀처럼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격동의 시기, 여자에게 빠져 정치에 관심 있는 척하며 친구들을 선동하다가 결국 퇴학 위기에까지 처하고 마는… 오직 사랑에 빠진 여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 엉뚱한 영화를 만들고, 페스티벌까지 여는 무모한 멍충이의 이야기. 굳이 미화하거나 꾸며내지 않고 솔직하게 쓰였다. 작가의 말이나 작품 해설에서도 재미를 위한 책이라고 쓰여있다. 솔직하고 가식 없는 내용과 문장 덕에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멍청했던 그 시절. 


영화나 책을 선택하고 감상을 이야기할 때 종종 보수적이다는 이야길 듣곤 하는데, 그런 내가 읽고 즐기기에는 편안하지 않은 책이었다. 출간 당시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이렇게 몇십 년이 흐른 후에도 개정판이 나오는 걸 보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받는 책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개인적인 감상은 이렇고, 작정단 책으로 선정된 책이니 만큼 다른 분들의 감상도 찾아봐야겠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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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르는 언덕
어맨다 고먼 지음, 정은귀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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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맨다 고먼의 <우리가 오르는 언덕>. 선물과도 같은 패키지로 봄과 닮은 시집이 도착했다 🌿🌼 


<우리가 오르는 언덕>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 낭독 된 축시로, 노란 표지는 낭독 당시 어맨다 고먼의 강렬했던, 노란 의상을 떠올리게 한다. 


남의 나라(....) 대통령 취임식 때 낭독된 시라 별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우여곡절 끝에 치뤄지고, 이뤄낸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특히 영시는 정말 알못이라 펼치기 전부터 두려운 마음이 앞섰는데, 막상 펼치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단어에, 문장에 해석을 붙이지 않아도 어맨다 고먼이 전하고자 하는 희망과 의지의 언어가 와닿는다. 


🗣 한때 우리 물어본 적도 있어: 이 재앙을

어떻게 하면 이겨낼 수 있을까?

이제 우리 힘차게 말하네: 이 재앙이

우리를 굴복시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So while once we asked: How could we

possibly prevail over catastrophe?

Now we assert: How could catastrophe

possibly prevail over us?


소리내어, 읽어보시길... 


+ 선물하기에도 너무 좋을 듯한 시집이다. 

+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좋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았으며,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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