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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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문학상을 받았다는 문구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주는 거 같다. 상을 받았으니 뭔가 대단한 작품일 거 같고, 대단한 작품이기 때문에 내가 이해를 못 할 거 같고… 몇 년 전 대차게 실망한 후로는 OO 문학상 수상집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은 안 읽었다. 한국 문학이 내 취향이 아닌 건지, 내가 뭘 몰라서 재미없는 건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럼에도 이번 김승옥 문학상 수상집은 보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이 라인업… 뭐지? 지금껏 무슨 무슨 문학상 수상자들을 이름을 봤을 때, 전부 아는 이름인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전부 납득이 가는 이름들. 몇 년 전 OO 수상집을 읽으며 한국 문학의 미래를 걱정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한국 문학의 미래가 여기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황정은 작가님의 <문제없는, 하루>이다.

📘 293p. 나한테 정말 중요한 일들이 있어. 내가 생각하기엔 사람들에 도 정말 중요한 일들이거든, 그래서 나는 자꾸 그걸 말하는데, 말하면 시답잖은 일이 돼.
시답잖아져, 말하면서.
말하면, 내가 그걸 말하면, 사람들은 그 진부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왜 여태 하느냐는 얼굴로 나를 봐.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 그 이야기가 왜 나와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곤란하고 안쓰럽다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를 봐. 그러면 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얼마나 신경 쓰지 않는지를 알게 돼. 그게 그 사람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 내게 너무, 너무 중요 한 그 일들이, 사람들한텐 중요하지 않아.
그걸 보게 돼.
그게 어떻게 나를 죽이고 있는지, 언니는 몰라.

📗 308p. 너는 악을 얼마나 생각해?
글쎄.
요즘 나는 악을 많이 생각해.
어떤 악.
그냥 악, 평범하게 있는 악.

📙 310p. 양동이에 낙지를 떨군 친구한테 악의가 있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아. 무슨 악의가 있었겠어? 낙지가 조각나는 동안 손놓고 보기만한 우리한테 무슨 악의나 적의가 있었겠어? 우린 그냥 다 같이 멍청했고, 그뿐이었어. 언니, 세상이 언제고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다면 사람의 악의나 적의 때문은 아닐 거야. 그보다는 멍청함 때문일 거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음. 그런 거 때문에.
난 그걸 다시 하기 싫었을 뿐이었는데.
양동이를 칠게로 욕심껏 채워 거기에 작은 낙지 털어 넣는 거. 자동으로 그게 되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 그런 척 구는 거. 그런 거, 다시는.

사실 업계 사람도 아닌 일반 독자에게 누가 상을 받냐는 큰 관심사가 아닐 듯하고… 꾸준히 활동하는, 엄선된(?!) 작가의 최신 단편을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군다나 올해 작품집은 한국 소설을 읽어봤다면 누구나 알만한 작가들이라, 이름만 들어보고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면 이 책을 통해 각 작가들의 색채를 경험해 보기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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