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태후
신용우 지음 / 산수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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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 시대를 살면서 마주하고 앉은 이의 말 한마디라도 그 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할 때는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로 저자가 담아내는 그 그릇의 보여 지는 면에만 치중하다보면 결국 겉핥기식의 책읽기밖에 되지 않는다. 하물며 길고 긴 역사의 한 자락을 표현해 낸 빈약한 글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 이들의 면면을 안다고, 이해한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랄 수밖에 없다.

  새해를 즈음하여 방영된다는 사극 ‘천추태후’에 대한 관심은 나보다 아이들이 더 지대했다. 곧 중학교에 올라가는 딸아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초등학교 2, 3학년에 올라가는 꼬맹이들이 아줌마들처럼 대왕세종과 같은 사극을 방영날짜와 시간을 맞춰서 보는 걸 보면 어처구니없다. 사극에 그다지 많은 관심이 없고, 여유 있게 볼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없기 때문에 자주 시청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시간대가 맞아 남편과 아이들 모두 한자리에 앉아 사극을 볼 때면 역사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보게 되니, 사실성을 떠나서 일단 ‘역사’라는 관심의 그물 안으로 들어서게 만들어주니 텔레비전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극에 앞서 출간된 ‘천추태후’, 고려사에 몇 줄 기록되어지지 않는 글을 토대로 그 시대를 되돌아보고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내기까지의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가 천추태후의 연인이었던 김치양이 사망한지 1000년이 되는 해라고 하니 더욱 의미 깊을 것 같은 책은 1652년, 효종이 이완에게 “천추의 한을 풉시다. 고려의 헌애왕태후였던 천추태후가 천 년을 두고서라도 풀어야 한다고 했던 북벌의 꿈을 이루자는 것이오.” 라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할머니의 상서로운 꿈처럼 위로 두 오빠를 두고 태어나서 보통의 여자아이와 같은 행동과 생각을 뛰어넘는 천추태후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그녀의 꿈이 신라의 육두품 출신들과 그 후손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생때같은 아들 목종의 시신을 앞에 두며 천년의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기막힌 결말로 끝이 난다.

  땅의 크기가 국력을 말해주는 시기가 아닌 21세기를 살기에 북벌을 향한 야망은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재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것의 기반을 뒤흔들만한 그 어떤 것도 용납지 않던 꽉 막힌 시대에서 여성의 힘으로 국가의 앞날을 내다보고 꿈을 키웠던 천추태후의 배짱만은 참 부럽다. 또 하나, ‘자국의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자국의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펴는 중국의 어이없는 역사 해석과 역사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대는 이 때, 1000년 전 ‘천추전’을 지으며 고구려의 혼을 찾고자 했던 천추태후의 기백을 이어받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처해야 하는데 뜻을 모으고 늘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단 다짐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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