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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어제와 오늘 내일의 가정실습
연년세세는 여성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소설이다. 단편 연작 소설들은 순일의 집안 여자들의 각각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파묘는 세진의 시선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영진의 시선으로, 무명은 순일의 시선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세진의 시선으로 쓰였다. 분명히 개개의 소설이 각각의 주제와 끝이 있지만 그 소설들이 레고처럼 조립되면서 또 다른 큰 이야기를 만든다. 그런 접근 방식 덕분에 인물이 삶을 살아가는 다름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자가 많은 집안에서, 첫째 손녀인 내가, 할머니와 엄마와 나의 삶을 비교해가며 읽을 수 있었다.
순일의 삶은 혹독했다. 전쟁을 겪고, 외조부 밑에서 지내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약속받고 간 고모네 집에서는 식모살이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때의 여자 아이들은 순자로 불렸다. 너무 많은 순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름이 없어지고 말았다.
세진과 영진은 같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서로 극명하게 다른 궤적을 이룬다. 영진은 판매원으로 악착스럽게 살아가지만, 세진은 여자친구와 시나리오 작가를 하면서 보다 불투명한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세진의 시나리오 <가정실습>과 그 연극 중에 나오는 굉음은 의미심장했다. 그들이 같이 살아가면서 굉음과 같은 마찰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굉음은 그들의 삶을 망치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듣지 못하는 척 살아간다. 연극에서와 같이.
연년세세는 어렵지는 않지만, 가벼운 소설은 아니다. 책의 내용의 관점에서, 명랑하기 보다는 삶의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생각을 해주게 하는 소설이다.
또한 분명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경계가 너무 뚜렷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특히 제일 마지막 챕터가 그 전의 1.2.3챕터와는 성격이 다르게 쓰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개개의 소설이지만 하나의 전체가 새로운 작품으로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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