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익명의 여인 지음, 염정용 옮김 / 마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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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 _ 익명의 여성

2차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4월 20일. 소련군에게 함락 직전에 놓인 베를린에서 한 여성이 전쟁의 참상을 일기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기록을 정리하여 1954년에 책으로 발간한 것이 바로 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이다.

책이 원제는 ‘Eine Frau in Berlin, A Woman in Berlin’ 이고 2008년에 독일 영화감독인 막스 파르베르복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이 영화는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친절하게도(?) 누군가가 자막까지 삽입해서 올려놓은 영상이 있다)

베를린 함락 당시인 1945년 4월에 베를린의 민간인 수는 270만명 정도였고 그 중 200만명이 여성이었다. 베를린은 여성만 남은 도시였고 이곳에 전쟁의 광기가 휘몰아친다. 점령군으로 들어온 러시아 군인들은 베를린의 여성들을 마치 전리품으로 취급하며 무자비한 성폭행이 이어진다.

베를린에서만 10만명 이상의 여성이 집단강간의 피해를 입었고, 독일 전체로는 80만~200만명의 여성이 성폭행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일 계속되는 성폭행으로 인해 베를린 여성들 사이의 첫 안부인사가 “당신은 몇번이나?” 였으며, 부족한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러시아군에게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내몰린다.

이 책에서는 주로 러시아군에 의한 성폭행을 서술하고 있지만 패전국인 독일여성에 대한 집단강간은 미국군과 영국군, 프랑스군 점령지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미군 점령지에서 일어난 성폭력 피해자만도 1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은 미소 냉전의 논리와 나치의 옹호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잊혀졌고 지워졌다. 독일여성의 집단강간 및 성폭력에 대한 언급은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독일의 정치가, 역사학자들에게도 금기사항이었다. 피해자로서의 독일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미군이 점령한 도시는 베를린도 있지만 도쿄도 있다. 태평양전쟁의 승전국인 미국이 도쿄를 점령할 당시에 일본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없었을까? 설사 있었더라도 베를린의 사례처럼 이들의 피해도 잊혀지고 지워졌을지 모른다.

만약 일본여성의 피해를 다룬 책이 출간된다면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의 상처를 안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쟁으로 유린된 여성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해결의지가 없는 가해자로서의 일본인 피해자로 받아들일지...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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