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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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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힌다. 그런데 중간에 한번 ‘더 읽어야 하나’ 고민했다. 해병대를 갓 졸업해서 오하이오 주립대에 입학한 저자가 자신이 참전했던 이라크 전쟁을 얘기할 때. 참전 군인으로서 그곳 주민들을 어떻게 세심하게 배려했고 또 어떤 우정을 나눴는지 얘기할 때. 이를 근거로 X도 모르면서 전쟁을 비판하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동기생을 씹을 때.

이쯤에서 모든 걸 경험해보신 (요즘엔 힘드신) 이명박 님이 생각났다. 전쟁이 가져온 전반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자신을 비롯한 참전 군인이 현지 주민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얘기하면서, 비판자들의 발언을 현실을 모르는 허튼소리로 일축한다.

저자는 구조보다는 개인에 더 책임을 두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한데, 이를 테면 ‘러스트 벨트’의 주민들이 가난한 것은 구조적 원인도 있겠지만 결국 그들 개인들에게 원인을 돌리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 새끼가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헷갈렸다. 자신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지(아니겠지), 사회구조를 탓하는 건지(아니겠지), 게으르고 폭력적인 고향 사람들을 탓하는 건지(오호).

우리나라로 치자면, 바닥부터 시작해서 성공신화를 쓰고 (자연스럽게) 이제 갓 정치에 입문한 입지전적인 인물이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쓴 책 같다. 아니다. 내가 비딱해서 그렇다. 좋은 책이다(정말) . 그래도 책에 줄줄이 달린 추천사는 뜨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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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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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이라는 소설에는 자신의 존재 기반이 모두 거짓인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유능한 의사로 알려졌지만, 그건 자기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속인 결과입니다. 그는 한 번도 세계보건기구에 소속된 유능한 의사였던 적이 없습니다. 그가 해외 학회에 다녀와 아이들에게 안겨주었던 각 나라의 선물들은, 그가 공항 근처의 상점에서 고심하며 고른 것들이었습니다.

 

가족에게는 유능한 남편이자 다정한 아빠, 주변 사람들에게는 존경받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 그게 그였습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키스한 후 세계보건기구로 출근하는 대신, 카페나 자신의 차 안에서 한 무더기의 신문을 읽으며 그는 다른 한 세계를 살아냈습니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그 자신이 창조한 완벽한 거짓의 세계에서 그 자신이 창조한 자신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진실의 세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듯, 완벽한 거짓의 세계도 없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거짓과 완벽한 진실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완벽한 거짓과 완벽한 진실이 우리를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그가 만든 거짓 세계는, 그 완벽성이 존재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는 부서지는 것이 운명입니다.

 

그 세계가 위태로워지자, 다시 말해 그의 모든 존재 기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만 존재해야 했던, 그의 가족과 부모를 살해하고 맙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자신이 자신이 아니고자 하는 욕망. 이 욕망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사소한 거짓말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단지 조금 더 사랑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우리는 고양이와는 다르게, 또 느릅나무와는 다르게, 사랑을 욕망하는 존재이니까요. 이 경우엔 그 사소한 거짓말이 겹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만.

 

어떤 사소한 이유로 그의 삶을 바꾼 거짓말은 시작됐을까요? 언제부터 거짓말이 진실을 대체하기 시작했을까요? 어떻게 그의 거짓말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선 걸 까요?  그가 잡지를 보거나 산책을 하며 보내야 했던, '퇴근 이전의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한 옷을 걸치고 , 지성이 담긴 대화를 나누는 멋드러진 내가, 불안정한 욕망으로  뒤엉켜 있는 이곳의 저를 가만히 응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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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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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 대 지하철 1호선 용산행 급행을 타면, 그 비좁은 객실 사이로 사람들을 밀치며 오가는 한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항상 같은 옷, 같은 마스크, 하는 일도 신문 수집으로, 같다. 타인에게 별 관심없는 내가 이 할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은 단 하나, 객실 연결 칸 쪽에서 책을 읽는 나를 자주 밀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었다가, 다음에는 분노였다가, 종내는 감정이 없다. 익숙하니까. (오, 익숙하다는 우리의 모든 비극) '왜 갑자기 할아버지 얘기를 쓰는가' 하고 잠깐 멈췄다가, 조금 전 마지막장을 덮은 소설 <열정>과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아마, 소설 속 화자가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리라. 물론 소설 속 할아버지는 폐지를 줍진 않지만.

 

화자에게는 영혼을 나눈(혹은 나누었다고 믿는) 친구가 있고,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을 살해하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갑자기 도시를 떠나버린 친구의 집에서 아내와의 묘한 관계를 확인하게 된다. 그 이후 아내가 죽을 때까지 8년간을 별채에서 칩거하고, 아내가 죽은 이후에는 고독 속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아마, 진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말은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고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대답은 말이 아닌 ‘실제 삶으로써’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말로 무엇을 물어 볼 수 있겠나? 실제 삶이 아니라 말로 하는 대답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41년 간의 긴 기다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꼭 그 한마디의 말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기쁨도 슬픔도 없이 비슷한 하루하루를 사는 늙은이에게 그러한 하나의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 하잘것없는 진실, 썩어 없어진 육신의 비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결국 화자가 온 생을 걸고 확인하는 것은 하나이다. 우리의 열정이 가치가 있었는가? 그러한 열정이 있었으므로, 우리의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 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그 지독한 시간을 보낸 여든 넘은 늙은이의 말. 열정.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래도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하는 존재인가요? 아니.

그렇다면 41년간을 고독 속에서 지내며 기다린 이유는 무언가요? 진실을 찾기 위해서....

아니. 불타오르던 열정. 이제는 온기를 다 잃어버린 그 열정의 곁불이나마 쬐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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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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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가 쓴 자전적 기록. 
 

이 책의 특기할만한 점은, 아우슈비츠에서 행해졌던 반인륜적인 행위의 잔인함을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책 제목에서 도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인간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을 시도했다는데 있다. 
 

자극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그 상황에 무지한 독자로 하여금 간접체험하게 하여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게 하지만, 오히려 감각을 마비시키고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이미지만을 각인하는데 그치고 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가 히틀러나 괴벨스 등 '소수의 비정상적인 인물'이 만들어낸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 시대 이전까지 진행되어오던 뿌리 깊은 인종 차별주의적인 관점이 맞춤한 상황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는 철저한 인식인 것. 
 

우리는 오감을 강렬히 자극하는 상황일 수록 그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둠으로써, 그 이미지에 동화되고 함몰되는 허무주의적 폐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작가의 감정적이지 않은 서술은 존경할 만하다)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가면을 차례로 고쳐쓴 국가주의라는 괴물이 현 시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그 끈질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써 이 책을 읽은 최소한의 의무를 행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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