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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없는 아이 ㅣ 느리게 읽는 그림책 1
박밤 지음 / 이집트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입 없는 아이> (박밤 그림책)
‘차별은 나쁘다’는 명제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선량하고 평범한 시민들은 ‘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러했다. 이 책은 스스로 선량하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마음 깊이 그러하냐’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차별하지 않는 자세를 소극적으로 실천하기는 쉽다.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 누가 봐도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 좀더 적극적인 실천을 하는 것은 품이 든다. 먼저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것이 미묘한 차별이 될 수 있는지 보는 눈을 넓히는 공부가 필요하다. 잘 아게 되었다면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편견과 차별을 받는 다양한 소수자를 위한 기부에 참여할 수 있다. 소수자 인권 보호에 대한 글을 인터넷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또 꾸준한 관심을 통해 관련된 청원에 동의하거나, 탄원/서명에 참여하거나, 입법예고에 의견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러한 수고나 품이 드는 일이 생길 때 내 기준에서는 기꺼이 참여하는 편이었기에 스스로를 나름대로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뜨끔한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하다.
“내가 열두 살 때였지. 그때도 지금처럼 단풍이 들기 시작했어.”
얼굴도, 상황 설명도 없이 갑자기 주인공 ‘나(재인)’가 과거를 떠올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바로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나’는 전학을 온 첫날 결석한 친구의 옆자리에 앉게 된다. 그런데, 결석한 친구 ‘폴’이 어떤 아이인지 새로 사귄 친구에게 물으니 새로 사귄 친구는 아무 표정도 없이 “입 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나’는 겁이 나 그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길 기도했는데, 정말 그 아이가 다음날 학교에 오지 않는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나’는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울음을 짓는 이유를 알아가며 자신이 어떤 차별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었고, 그들과 한 대화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꼭 책을 사 보기를.
‘나’를 따라 가는 꿈속 여행이었지만 마치 내 무의식 속 감춰두었던 차별을 하나씩 들추어내는 기분이었다. 차별과 편견을 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나 역시 사실은 나와 어딘가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거부감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게 아닐까. 겉으로 잘해줄 수는 있어도, 아주 똑같이 대하지는 않았던 게 아닐까. 예를 들어 지나치게 배려하고 도와주려고 하면서, 막상 몸이 닿는 것을 꺼려했다든가. 나도 초록 방에 있던 입 없는 아이의 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따뜻하게, 덥석 잡고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소중한 사람과 속내를 나누며 함께 읽고 싶은 책이었다. 종이로 된 실물 책도 좋았지만, 유튜브로 나긋나긋 읽어주는 책 영상 또한 강렬했다. 영상도 꼭 보길 권한다. 또, 그림에 소질 없는 누군가가 낙서를 한 듯한 단순하고 삐뚤빼뚤한 삽화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했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강렬하게 마음 속을 두드리고 간 책이다.
(출판사 서평단을 지원하여 받아본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