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국의 시간 -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조한혜정 지음 / 사이행성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선망국의 시간》


작가는 언젠가 지식인의 서재에서 눈여겨봤던 이름이다.

그동안 많은 책을 쓰셨다고 하는데 나는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다.

이 책은 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크고 작은 화두들을 짚어본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표지의 사진과 문구가 인상적이다.

민트색 표지. 넉넉한 표정으로 위를 바라보는 모습.

제목을 보며 선망국이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했다.


서문에서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선망국에서 선망국으로 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며,

돈과 권력으로 먼저 망가진 나라에서 모두가 부러워할 선망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

삶을 잠시 멈추고 쉼의 시간을 가지며 우리(시대)의 삶을 되돌아보라 권한다. 

"그간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하며 달려온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자발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민'"이 되기를 촉구한다(18쪽).


남북통일에 대해 저자는 소설가 박민규가 경향신문에 실은 기사("우선은 그저 서로의 ‘실익’을 얘기하자. 하나의 겨레였느니 그딴 소리 접어두고 이익과 생존을 목표로 한 ‘각자’와 ‘각자’로 서로를 존중하자. 한 걸음 한 걸음 끝까지 너는 너를 위하고 끝까지 나는 나를 위하자.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나를 위한 일이 너를 위한 일이었음을, 그래서 너가 나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각성하자.")를 인용하며, 단일성과 통합을 강조하는 '통일'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다양성과 생태적 감각, 곧 시민적 공공성을 바탕으로 남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20-21쪽).

이 부분을 읽으며 무척 공감했던 것은 '남북통일'의 가능성이 열렸음을 느꼈을 때, 뜨거운 애국심과 함께 내가 모종의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경쟁 중심적이고 성취 중심적이며 수비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의 영성과 명상을 회복함으로 새로운 방식으로의 내면적 자아를 획득해가려는 움직임(37쪽)"이라는 부분에서 내 안의 모순과 결핍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내 줏대로 살아간다면, 그래서 사회와 나를 분리시키지 않고 사회 안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를 중심으로 내 주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회를 더 좋게 만들려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105쪽에 실린 '성미산 마을'이야기를 보며 '이웃'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종종 외국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웃 간에 어울리고 만나는 장면을 접하는데, 그럴 때면 정말 남의 나라 얘기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웃은 모두 온라인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기야 나도 맛있는 음식점을 알게 되면 아랫집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다. 이웃은 정말로 온라인에만 있다.

전에 사과가 많이 생겨서 아랫집 두 집에 나눠드렸는데, 너무 송구스러워하고 불편해하시길래 나눠드리고도 찝찝해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씁쓸한 기억이 난다. 성미산 마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아이들 교육이 목적이어서 서로 이웃이 소통하고 사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 외의 이유로 이웃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칼럼은 〈고요하고 넉넉하게 늙어가기〉(143-147쪽)이다. 때로 나는 '전쟁같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도태되는 느낌을 받는다. '늙어가기'라는 말을 쓰기엔 아직 내가 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사람은 스무 살 언저리가 되면 자라기를 멈추고 이후에 모두 늙어가니까. '일상의 성화'라. 때로 커피 한 잔에 일상을 '성화'하려는 내 욕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위안을 받았다.

144쪽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한옥 마루에서 그는 이제 고요를 즐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날'이 오리라 믿으며 일상을 하찮게 여겼던 나날, 늘 허기지고 불만스러워하면서 함부로 몸을 굴렸던 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 그는 '일상의 예술화'를 시도했던 19세기 사회주의자 윌리엄 모리스의 책을 읽고 있었고 '일상의 성화'라는 단어를 즐겨 썼다.

145쪽 '일상의 성화'를 말하면서 성스러운 것을 발견하는 삶

146쪽 일상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예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유, 고요가 살아 있는 시간을 우리 안에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전환의 시간 > 미래의 시간 > 신뢰의 시간 > 시민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세월호, 광화문 광장, 탄핵, 지진, 핵발전소, 촛불, 입시, 교육, 취업, 노동 등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의 화두들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게 만드는 책, 공론장 안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책 같다.

때로 나는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지' '원래 그렇지 뭐'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런 체념을 벗고 사회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함께 올바른 변화를 일궈나가라고 힘을 실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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