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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푸른 돌
은모든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평점 :
『 세 개의 푸른 돌 』, 은모든
*도서제공 @anonbooks_publishing
🔖실제로 경험한 적 없는 일을 마음속에 살그머니 심어둔 것은 과거에 보았던 영화임에 틀림없었고, 새삼스레 영화란 얼마나 다정한 것인가 싶어서 코끝이 찡했다. 업계에는 굉음을 내고 터지며 사방에 파편을 남기는 폭탄 같은 인간들이 여전히 뒤섞여 있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며, 전부가 되게 할 수도 없다고 현은 생각했다. 두 눈을 부릅뜨며 이제 곧 봄이라고, 봄은 곧 온다고 되뇌었다. _p112
🔖남다른 형태의 가족에 속한 채 서른이 되는 동안 루미가 확신할 수 있게 된 한 가지는 타인의 삶에 진정으로 관심이 없다면 타인이 겪는 곤란이나 고통 때문에 진심으로 화가 날 일도 없다는 것. 거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먼발치에 떨어진 곳에 선 사람이 상투적으로 건네는 칭찬은 쓸모없다는 것이었다. 하등 쓸모가 없다는 점에서는 걱정하는 투로 수군거리는 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효녀라는 둥, 장하다는 둥 하는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의식하게 되고 얽매이게 된다는 점에서는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었다. 특히 칭송의 대상이 어리면 어릴수록 더욱더. _p152-153
🔖쉽지 않겠지. 그래도 사람이 결단을 할 때는 해야 돼. 지금 어려운 일이 나중에는 아예 불가능할 수가 있어. 반대로 얘, 언감생심 그게 될까 싶었던 상황이 막상 닥치고 나면 적응하게도 되고, 사는 게 그렇더라. _p154
🔖그때 큰언니는 반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살면서 누군가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는 일에 관해서는 애써 따져 묻지 말고, 괜한 말을 보태지도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반희는 생각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명백하게 곤란하거나 고통스러울 것이 짐작되는 일을 헤집어놓지 않는 것 정도의 배려를 하며 살아간다고 여겼으므로. _p231-232
✍️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내 또래 여성들이 등장해 서로를 묵묵히 위로하며 각자 자신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를 좋아하나보다. 일면식도 없지만 어느새 그들을 누구보다도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는 그런 소설 말이다. 이 책에는 안쓰럽고, 갑갑하고, 막막한 현실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들추어진 상처가 제대로 아물기도 전에 오히려 덧나게 만드는 모진 현실들도.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겁나더라도 한번 덤벼보라고, 호기롭게 저질러보라고 응원해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작품 속 캐릭터들이 하나 같이 다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들이 각자 너무나도 다른 성정을 가지고 있어, 그들의 대비감이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특히 현이라는 캐릭터가 참 좋았다. 일단 성격 자체가 시원시원하고, 거침 없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성숙한 인간 같아 보였다. 올해 만난 수많은 책 속 캐릭터 중 원픽:)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루미와 현의 관계성도 너무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