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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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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움가트너 』, 폴 오스터


*도서제공 @openbooks21 


✍️사고로 배우자인 애나를 잃은 바움가트너의 시선과 감정을 담은 소설. 상실과 애도, 회상과 그리움, 과거를 지나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시간을 '사이 바움가트너'라는 인물을 통해 전달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어느 날, 냄비를 불에 까맣게 그을려 버린 사건을 시작으로 바움가트너는 잇따른 여러 사건을 겪고, 결국 그는 아내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린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이 지닌 분위기와 사뭇 닮았는데, (좀 더 정제되고 차분한 느낌의 오베라는 남자 같았다) '어딘가 괴짜 같은 면이 있으면서도 정 많은 노인,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쓸쓸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남자' 같은 면들 때문인 것 같다. 애나를 직접적으로 회상하는 장면뿐 아니라, 그의 일상에서 묻어나는 여러 행동들에는 애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물씬 풍긴다. 특히 상실을 환지통에 비유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큰 충격을 동반하는 일인지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주디스라는 인물을 굳이 등장시켜야 했는지엔 끝까지 의문이 들고, 애나에 관한 꿈을 꾼 이후로 급작스럽게 변화한 바움가트너의 태도에 잘 쌓아왔던 몰입이 한순간 와사삭 됨,,,)


🔖그는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여자,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이들의 고통이 신체 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몸에 붙어 있었고, 사라진 사람은 한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p68-69


🔖그녀가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내세의 삶, 의식적 비존재라는 이 역설적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해주는 존재는 그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는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녀의 느낌으로는. 하지만 그가 살아 있고 그녀에 관해 계속 생각할 수 있는 한 그녀의 의식은 그의 생각에 의해 깨어나고 또 깨어날 것이며, 심지어 가끔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들을 듣고 그의 눈을 통해 그가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전혀 모르고, 어떻게 지금 그와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가 확실하게 아는 것 한 가지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이룩했던 깊은 연결은 죽어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p76-77


#바움가트너 #폴오스터 #책추천 #소설 #베스트셀러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 작가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이번에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원래 표지도 너무 영롱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리커버가 더 내 취향에 가깝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표지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정말 눈독들이실 만한...! 게다가 이번 리커버에는 폴 오스터의 영면을 애도하는 김연수 작가의 헌정 에세이 <굿바이, 폴>이 수록되어 있어 더더욱 소장 가치가 있다. 이미 바움가트너를 읽으신 분들은 재독하면서 새롭게 읽히는 부분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외국문학은 특유의 변역투 때문에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거슬리는 어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한국문학 읽는 것처럼 정말 술술 읽힌다. 나처럼 번역체 때문에 외국소설 읽기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 한번 잡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극적인 사건 같은 건 없지만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잔잔하게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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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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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 오션 브엉


*도서 제공 @influential_book 


🔖저는 지금 그 사슴을 떠올려요. 엄마가 어떻게 그 까만 유리 의안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비친 스스로를, 엄마의 전신을, 그 생명 없는 거울에 비친 일그러진 모습을 보셨을지를요. 어떻게 엄마를 충격에 빠트린 게 짐승의 잘린 목으로 만든 그로테스크한 장식이 아니라, 박제의 모습으로 나타난 결코 끝나지 않는 죽음, 우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나칠 때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그 죽음이었는지를요. p13-14


🔖베트남에서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할 때에도 거의 항상 영어로 하는 게 사실이에요. 우리에게 있어 돌봄과 사랑은 봉사를 통해 가장 선명히 발음되죠. 흰머리 뽑기, 자신의 몸으로 아들을 눌러 비행기의 흔들림과 아이의 공포를 흡수해주기. 아니면 그때 란 할머니가 저를 부르셨던 것처럼, “리틀독, 이리 와서 네 엄마 주무르는 것 좀 도와라”하면 우리는 엄마의 양옆에 앉아 팔뚝의 단단해진 힘줄부터 펴면서 팔목으로, 손가락으로 내려왔어요. 중요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그 시간 동안 무언가가 이해되었어요. 서로에게 손길로 연길된 마루 위의 세 사람이 ‘가족’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것 말이에요. p54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는 <기쁨의 황제>의 저자인 오션 브엉의 데뷔작으로, 베트남계 이민 2세이자 성소수자인 화자가 엄마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전쟁이 사람의 마음속에 남긴 혼란과 상흔, 일상 곳곳에 스며든 폭력,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외로움, 궁극적으로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엄마에겐 영원히 가닿지 못할 편지의 내용까지.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처연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 이 소설은 뚜렷한 서사가 존재하지는 않고 화자의 경험과 기억의 편린들, 당시에 화자가 품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서술한 형태에 가깝다. 따라서 소설적 재미를 추구하기보다는 화자의 감정선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글임에도 문장이 지닌 아름다움이 활자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번역된 글이 이 정도인데 원문으로 읽으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호불호가 조금 갈릴 책인 것 같다. 은유나 비유가 많은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문체의 미학을 중요시하는 분들께 강추드린다👍


오션 브엉 작가의 데뷔작을 읽었으니, 이 다음은 추천해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던 <기쁨의 황제>를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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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의 도시
연여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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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의 도시 』, 연여름


*서평단 도서제공 @moonji_books 


🔖주권과 정체성을 빼앗긴 도시에서 방향을 찾고자 헤매고 고민하는 소년은 여기에도 있지만, 그 행보가 ‘부재함’보다는 ‘존재함’으로 ‘사라짐’보다는 ‘드러남’ 쪽으로 향하기를 바라며 쓴 글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을 조금씩 거울에 비춰보기도 하면서. p457 작가의 말 中


✍️인생의 많은 부분을 운에 내맡겨야 하고 때론 목숨까지 위협당하더라도, 주어진 삶에 순응하기보다 닥쳐온 운명에 과감히 맞서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주인공 시진은 각인인 누나를 위해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사막으로 뛰어들어 흑각을 가져오고, 자기도 잡혀왔으면서 각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노모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코어에 있는 라티오를 찾아가 약속과 신뢰를 끝끝내 지키고,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한 순간에도 라에를 구하기 위해 있는 힘껏 발을 내딛는다. 굳은 심지와 용기, 단단하고 선한 그의 마음이 책을 읽는 동안 내게도 전염되는 것만 같았다. 


호의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장면들도 인상 깊었다. 시진은 로드와 데인에게서 얻은 호의를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진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라티오에게 베푼다. 라티오 역시 얼마 되지 않는 흑각을 각통으로 고통 받는 어린 아이에게 나눠준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세상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되는 게 아닐까. 내가 건넨 작은 호의가 타인에게는 숨 막혀 질식할 것 같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심폐소생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이렇게 또 한번 깨닫는다.


차별과 배제, 혐오는 한 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제 2 국경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을 뿐, 라뎀은 여전히 공중과 지상으로 분리되어 있고, 본사의 영향력 하에 각인과 면역인으로 구별되어 있다. 하지만 기존의 견고한 틀은 무너졌고, 그늘에도 밝은 태양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초중반에 쌓아놓은 두터운 서사층에 비해 뒷심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탄탄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등장인물, 뚜렷한 메시지가 강점인 작품이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연여름 작가님이 구축한 세계관은 내게 늘 흥미롭다. (나랑 잘 맞는다는 얘기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만나뵙고 싶다 !


🔖“사막은 어땠지? 암석사막, 처음 나갈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묻는 거야.”

당연히 가슴이 터져나가도록 무서웠다. 열 살짜리 아이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것과 두려움은 같은 의미이기도 했다. 어쩌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끔찍했지. 사막에서의 첫날. 공포 그 자체였어.”

하지만 자기가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 처음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두렵던 감정은 곧 내가 해냈다는 흥분으로 변했다. 그리고 암석사막을 감히 자신의 두 번째 집이라고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p92-93 


🔖“나는 대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느냐고 유진을 다그쳤어. 겁도 없느냐면서. 그런데 되레 유진이 나한테 화를 냈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느냐고. 어째서 하고 싶지 않은 러프 샌딩을 해야 하고, 흑각에 안달복달해야 하고, 왜 마음대로 길을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거냐고.” p288


🔖"나는 그늘에서 태어나 그늘에서 자랐어. 어둠을 마치 공기처럼 친숙하게 느끼는 인간이고. 그늘이 나를 키웠으니까. 너처럼. 물론 때로 모든 게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할 때도 있지만, 그건 그만큼 이 어둠의 땅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내가 기대왔던 것들이나 지켜내고 싶은 것들을 포함해서 말이지. 그래서 지금 내가 지키고 싶은 건, 이 땅보다 거기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이야. p309


🔖많은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포르틴으로 떠나도, 최악의 경우 본사가 지상을 완전히 버린다고 해도, 그늘의 모두가 남김없이 이곳을 떠나진 않아. 그늘의 시간은 그늘대로 계속해서 흐를 거야. 여기의 사람들과 변함없이. 그게 어떤 모양이든. 폴린이 그랬어. 라뎀의 원래 명칭은 라뎀이었다고. 본사가 사들여서 이 모든 규칙을 만들기 전에도 같은 이름이었다고. 그 흔적을 지니고 살아갈 사람들도 있다고. p342-343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네가 싫었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으니까. 면역인이면서 공중에 초연한 것도, 뱅커에 쫄보인 주제에 그늘을 좋아하는 것도. 각인들과 우정을 쌓는 것도. 그런데 그게 우월함이나 반항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단순한 진심이라는 사실이.”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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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아웃 보이 문지 푸른 문학
정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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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아웃 보이 』, 정은


*서평단 도서제공 @moonji_books 


❝늘••••••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강제로 와 있는 기분이야. 세상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은, 유령처럼. 거기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포커스아웃 보이와 싱크아웃 걸을 다룬 독특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주인공인 정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사람들은 흐릿한 얼굴을 가진 정진을 종종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거나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 3 같은, 엑스트라 같은 존재인 정진. 얼굴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출석 체크가 누락되는 일이 일상이고, 그렇게 또 한 번 누락되어 자원봉사 시간을 다시 채우기 위해 간 도서관에서 정진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소리와 마주치고 난생 처음 타인과 두 눈을 맞춘다.


꿈과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진에게 부모가 삶의 목적이나 꿈이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꿈을 실현하는 것도 좋지만,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삶, 스스로와 잘 지내며 내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삶,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 삶을 실현하는 것으로도 때론 충분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 이르러서야 이 책의 작가님이 《산책을 듣는 시간》을 집필하신 작가님이라는 걸 알았다 ! 그러고 보니 두 책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다소 어긋나 있는 두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감정을 나누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작가님은 자신이 왜 이렇게 두 아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독자로서는 <산책을 듣는 시간>, <포커스아웃 보이> 같은 책들이 필요한 때가 분명 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때가,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는 시기가 있기에🙂


🔖영민이랑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영민이는 보곤 했다. 관심이 많으면 그만큼 세상에 많은 것이 존재했다. 관심이 없으면 있는 것도 없는 것이 된다. 그러니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맞고, 지금 내 눈앞에는 내가 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들만 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보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한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 친구 덕분에 내가 ‘본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p50-51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이 서로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각기 다른 80억 명의 낯선 사람이 있다는 사실부터 기적인데, 그 각각의 사람이 간혹 서로를 알아보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기적 중의 기적이겠지. 그게 기적이 아니라면, 원래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것이겠지. 우연이 아니라면 필연이겠지. 어릴 때는 이런 내가 운이 없다고 생각했고, 조금 더 커서는 이렇게 태어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런데 유리 누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이유를 꼭 몰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은 원래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니까. 먼미래가 이유를 알려줄 수도 있겠지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나는 그저 오늘을 살 뿐이다. 오늘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몰라도 괜찮았다. p80-81


🔖“나는 네가 편하고 재밌어. 너랑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해.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네 도움이 있어야만 내 삶이 완전해지는 건 아니야.

불완전하면 또 어때? 무수히 많이 늦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러니 갈수록 무엇이 옳은지 판단 내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삶을 아주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는 오늘의 실패가 실패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꼭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기보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 마음을 열고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싶어. 내 인생이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지금의 나는 모르니까. 그건 포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해. 나와 세상에 약간의 시차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시차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내 세계가 완전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p128-129


🔖“시간은 많아. 실패해도 되고.”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잖아.”

“그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지금 너에겐 낭비할 시간밖에 없어. 맘대로 써. 실패라고 또 실패해도 괜찮아.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찾아보고 또 찾아봐.”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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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맨
스티븐 킹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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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닝 맨 』, 스티븐 킹


*서평단 도서제공 @goldenbough_books 


✍️ 세계 경제가 붕괴된 후 전체주의가 된 2025년의 미국, 벤자민 리처즈는 병에 걸린 딸 캐서린을 위해 잔혹한 생존 게임 "러닝 맨"에 참여한다. 가족을 위해 잔혹한 서바이벌에 참가한 벤은 경찰과 사냥꾼, 시청자의 추적을 피해 30일 동안 살아남아야만 하고, 이 과정은 전국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과연 리처즈는 전 국민의 집요한 감시와 추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최초의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이 1982년에 쓰였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세련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인 소재는 “생존 게임”이지만 이와 더불어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잔혹한 현실(생명의 상품화, 미디어의 횡포, 빈부격차와 환경문제 등)을 함께 다루고 있는데, 그때 당시에 이미 21세기의 각종 문제점을 예측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속도감 있게 읽히는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 데스 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공교롭게도 원작 소설의 시간대인 2025년에 출간되어 현실과 작품 속 시간이 서로 일치하고,  다가오는 11월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영화 《탑건: 매버릭》의 행맨 역으로 한국에 이름을 알린 글렌 파월이 주연을 맡았다. 생존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면 <헝거게임>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개인적으로 서바이벌을 소재로 한 작품을 즐겨보는 터라 <러닝 맨>의 영화화도 무척 기대 중이다.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박진감 넘치는데 영상으로 얼마나 강렬한 몰입을 선사할까 !


🔖이 부자 동네에서 헐렁한 회색 바지에 싸구려 바가지를 머리를 하고 눈이 움푹 들어간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게임이다. 자격 심사는 정각 12시에 시작되었다. 줄은 끝도 없는 뱀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경찰들은 총의 개머리판이나 전기봉에 손을 얹은 채 줄을 선 사람들을 지켜봤다. 제복으로 개인을 감춘 경찰들이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 

••••••괴물들 구경하는 것만큼 재밌는 건 없다니까•••••• 


🔖"이제 우리 모두는 사형대에 올라탄 거야."


#러닝맨 #스티븐킹 #therunningman #책스타그램 #책추천 #소설 #황금가지 #sf소설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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