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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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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격동의 시대인 1977년부터 1981년, 한 가족의 애환과 주인공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순수한 소년의 시선으로 담아냄과 동시에 우리네 역사를 간접적으로 비추며 한국인의 비애를 가감없이 그려낸 소설이다. 정겨운 정취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정경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기도 하다.

인왕산 허리 부근에 딸린 조그만 달동네에 사는 4대 독자 동구에게 6살 어린 여동생 영주가 생긴다. 아기는 더럽고 이기적인 존재라 여겼던 동구는 자신이 영주의 아빠라도 된다는 듯 영주를 예뻐한다.

영주가 세 돌이 되기도 전에 한글을 뗀 것과는 사뭇 다르게, 동구는 초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난독증으로 인해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동구의 담임을 맡게 된 박 선생님 덕분에 동구는 조금씩 읽고 쓰는 법을 터득해 나간다. 다른 어른들과 달리 박 선생님은 동구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동구의 이야기를 세심히 들어준다. 자신을 타박하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보듬어주는 박 선생님에게 동구는 경모의 감정을 품는다.

1980년, 동구의 인생에 첫 역경이 찾아온다. 쿠데타로 인해 정세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동구가 그토록 따르던 박 선생님이 5.18 민주화 운동의 급류에 휘말려 서울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소식을 듣는다.(복선을 알아차렸을 때 자연스레 입을 틀어막게 된다) 설상가상 동생 영주에게도 비극적인 사고가 생긴다. 안 그래도 웬수같은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가 영주의 일로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가부장의 표본이던 아버지도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구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큰 결단을 내린다. 네 식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동구는 비록 어릴 적 추억이 곳곳에 묻은 동네와 정원을 떠나게 되지만, 동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마음속 한 켠 깊숙한 자리에 그곳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생각하며, '모두'의 마음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정원을 떠올리며, 먹먹하고 아련하면서도 따스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동구"라는 캐릭터에 애정이 참 많이 갔다. 동구는 어리숙하면서도 생각이 깊다. 말썽을 부리다 사고를 친 영주를 대신해 혼나주는 듬직한 오빠이자 엄마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아들이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아는 속 깊은 아이다. 나보다 나이는 한참 어려도, 가족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어른스러운 면모를 지닌 동구를 보며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선생님이 물으시는 대로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면서 나는 뜻밖에도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 이런 것들을 물어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고 했다. _p116

🔖언제였던가. 엄마와 영주가 학교로 찾아왔던 그날. 선생님은 칠판에 예쁜 글씨를 쓰셨고 지저귀는 어린 새 같은 영주는 배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그 글씨들을 읽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박수를 쳤고 엄마는 교실 문 앞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누르며 겸손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던 행복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훗날 박 선생님이 나에게 그렇게 큰 은혜만을 베풀고 자취 없이 떠나가실 줄도 몰랐고, 사랑하는 나의 동생이 그렇게 덧없이 어린 숨결을 거둘 줄도 몰랐고, 엄마가 광인(狂人)이 되도록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줄도 몰랐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순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깊고 소중한 찰나라는 사실도 까맣게 모른 채 그저 신명 나게 손바닥이 부풀도록 박수만 치고 있었다. 지금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_p35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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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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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게서 인물에게로 이어지는 ‘호위’의 서사를 엮어가면서, 누군가는 비웃을지라도,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다시, 믿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권은에게 증여된 카메라가 이 세상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_p258 작가의 말 中


이 소설은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다. 승준의 마음이 허기와 추위 속에서 죽음만을 생각하던 열두 살의 권은을, 권은의 마음이 가족을 잃고 죽은 거나 다름없던 살마를, 살마의 마음이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 있던 나스차를 구한다. 연쇄적으로 작용하는 인간의 호의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한다. 다른 형태이지만 결국 같은 형질의 사랑. 삶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단순한 진심>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번 소설은 전작보다 훨씬 좋았다. 작가님께서는 사회적  주목과 관심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인물들에 주목하는 소설을 꾸준히 써오셨는데, 이번 작품 역시 소외된 타인을 조명하는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2017년 출간된 작가님의 소설집 <빛의 호위> 중 표제작 '빛의 호위'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빛과 멜로디를 읽기 전 빛의 호위를 먼저 읽으면 좋을 듯하다)


어떤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든지 간에 어린 승준의 행동은 권은의 인생을 (좋은 쪽으로)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값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선물한 셈이 됐다. 선의가 선의를 낳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 뭉클했고, 그들의 결심과 마음이 너무나도 숭고하게 느껴졌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멨는지 모르겠다. 권은과 승준은 연인 관계가 아니지만, 그들 사이엔 그 어떤 사랑 이야기 속 주인공들보다 더 애틋하고 절절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을 한 층 더 매력적으로 만든 요소라 생각한다. 겨울에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

“그 친구, 은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어?”

“중요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왜냐하면•••••• 버려진 나를, 고작 숨을 멎게 해달라는 기도밖에 할 줄 몰랐던 열두 살의 나를, 그 자신도 모르게 다시 살게 한 사람이었으니까. _p83-84


🔖“게리는 사진에 자기 삶을 다 바쳤잖아요. 저는 게리 같은 사진가는 될 수 없는 사람이에요.” 

“한 사람이 살면서 어떤 고생을 했고 뭘 포기했는지, 실버, 그걸 속속들이 파악한 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_p113-114


🔖일산의 북 카페 앞에서 눈을 맞고 서 있던 권은, 을지로에서 택시를 타기 전 다급하고도 간절하게 고맙다고 말했던 권은, 병실 침대에 앉아 그를 건너다보며 말을 고르던 권은, 그리고 열두 살의 권은들ㅡ그가 골목과 이어진 현관문을 연 순간 낡은 이불 속에서 가늘고 긴 목을 삐죽 내밀고는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건너다보았던 권은과 눈 쌓인 운동장에서 마주쳤던 권은이 그 순간 차례로 떠올랐다. 다른 차원의 시간에서 추출된 그 모든 권은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 있다는 걸•••••• 반장,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_p 222-223


🔖알마를 살린 장 베른의 악보와 권은을 방에서 나오게 한 카메라는 결국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둘은 다른 사랑이지만 같은 사랑이기도 하다고, 한 사람에게 수렴되지 않고 마치 프리즘이나 영사기처럼 그 한 사람을 통과해 더 멀리 뻗어나가는 형질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덧붙이면서. _p223-224


🔖“나는 누구를 위해서 레스보스섬에 가고 너를 도운 게 아냐.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인지도 몰라.” 그녀의 말을 듣고도 바로 대꾸하지 않던 살마는 잠시 뒤에야 그게 문제가 되느냐고 물었다. “오히려 너는 지금보다 더 너 자신을 위해 살 필요가 있어. 은이 행복하지 않다면 다 무슨 소용이야?” _p241


🔖지난번 편지에서 나는 네게 부탁했지. 그 친구와 나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달라고. 누군가 너의 진심을 몰라준다 해도, 세상이 지금보다 황폐해져 네가 기대어 쉴 곳이 점점 사라진대도, 네가 그것을 잊지 않는 한, 너는 죽음이 아니라 삶과 가까운 곳에 소속돼 있을 거야. _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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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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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착각으로 밝혀지지. 악에는 끝이 없어. _p588


홀리 기브니는 한 여성으로부터 3주 전 실종된 자신의 딸 보니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보니가 실종된 장소와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자전거가 발견되고, 자전거에는 ‘더는 못 참겠다’라는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다른 흔적을 찾기 위해 보니의 자전거가 발견된 카센터 주변을 맴돌던 홀리는 남자 아이들에게서 스팅키라는 소년 역시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듣는다. 이후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 더 많은 행명불명자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홀리는 사건들간의 연관성을 발견하고, 지난한 추적의 끝에서 상상조차 못한 순수 악을 맞닥뜨린다. 


공포소설계의 거장 스티븐 킹이 이번엔 연쇄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 ‘홀리 기브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러 소설로 우리를 찾아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초장부터 범인의 정체를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80대인 해리스 교수 부부는 인육을 먹음으로써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믿는 미치광이다. (진통제는 독약이라고 생각한다.) 배터리가 나간 휠체어를 차 안으로 밀어 넣어달라고 부탁함으로써 미끼를 무는 수법을 이용하여, 오로지 자신들의 탐심에서 비롯된 끔찍한 엽기 행각을 벌인다. 


납치한 사람에게 핏물 가득한 간을 먹도록 강요하고(간을 섭취하면 각성을 유발해 활력을 유지하고 수명을 늘릴 수 있다나 뭐라나. 안 먹으면 물도 안 준다) 인간의 신체부위로 만든 음식을 먹거나 그것들로 화장품을 만드는 등 읽기 거북할 만한 대목이 종종 그려지니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주의할 것!


전직 형사이자 홀리의 이전 파트너였던 빌 호지스에 대한 이야기와 홀리가 이전에 겪었던 범죄 사건들, 어머니의 뒤틀린 사랑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수시로 언급되는데, 이처럼 홀리의 개인사 역시 소설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전 소설들을 읽지 않아도 이번 작품을 읽는 데엔 전혀 무리가 없지만 그녀의 앞선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면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많이 의지하던 동료 빌과 애증하던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한 층 더 성장하는 홀리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티븐 킹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분들에겐 선물 같은 책이 될 것 같다.


💌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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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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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사람, 우당탕 함께하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우리》


📝 총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sf 소설집


▪︎육아에 지친 부부가 말벗 기능을 탑재한 젖병 소독기의 비주얼라이즈드 AI 알렉산더를 만나 겪는 해프닝을 그린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 아기가 태어나면 보호자는 그때까지의 생활로부터 갑자기 뚝 잘려 나와 낯선 세계에 던져지게 됩니다. 아기와 나만 존재하며, 내가 아기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는 독방의 시간이 닥치죠. 많은 인원이 그 시간을 나눠 감당해주면 수고를 덜겠지만, 아시다시피 그건 아직도 이상에 불과하고요. _p.30


✏️ 알고리즘 오류로 인해 비주얼 구현에 문제가 생겨 알렉산더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겨우 엿새 동안 같이 지내며 수유를 도와준 게 전부인 인공지능 알렉산더. 진짜 사람도 아닌, 전기로 만들어진 가상물체에 부부가 그렇게나 마음을 쓴 이유는 알렉산더가 미주에게 말한 것처럼, 인간은 사랑으로 살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와 함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엄마가 인공지능 로봇이 탑재된 프리미엄 차량 서비스 '황새영아송영'을 이용하는 이야기 <오늘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 “보호자들은 아기의 울음에 감정과 마음을 소모하기 때문에 힘들어하시죠. 우리는 그렇지 않아서 우는 아기가 힘들지 않아요. 아기의 울음소리를 쉬지 않고 서너 시간 들어도 괜찮답니다. 아기가 울음을 그치고 편안해질 수 있도록 모든 가능한 사항을 확인하고 수정하고 변경하고 적용하고 다시 확인하고 다음으로, 다음으로, 그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까요. 사람처럼 ‘정신이 없어지거나’ ‘혼이 빠지는’ 사고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죠.” _p.100


▪︎"인간의 존엄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로봇이 법정 입회인으로서 과연 적격한가?"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으로>


📖 “간병 로봇이란 게, 간병 로봇의 인공 인격이란 게 인간을 인간답게 돌보기 위해 인간의 일과 행동을 다 모방해서 된 건데 구공일 씨가 인간이 아님 뭐예요? 나와 얘가 똑같이 인간식 간병을 해요. 똑같은 일이에요. 이 방에서 나랑 제일 똑같은 종족은 구공일 씨예요. 그리고 지난 13개월 동안 옥련 할머니랑 세상에서 가장, 제일 가깝게 지내온 것도 나와 얘구요. 어떻게 얘가 옥련 할머니의 진실성을 보증하지 못할 수가 있어요? 정신을 잃으실 때까지 보살폈는데 어떻게 그 끝에 자격이 없다고 할 수가 있어요?” _p.135-136 


▪︎한국무형문화연구소 소속 무형문화 현장조사 기록 보조 연구원 AI 구금산이 망자 천도 의례를 행하는 이야기 <만물의 앎에는 끝이 없다>


✏️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으로>와 연작으로 이어진 소설로, 구금산이 간병 AI 로봇 IM-901의 친구인 설정이에요! 이 소설 속에서 구공일은 더이상 간병로봇이 아닌, 강원도 내 유이한 카페 '한가'의 바리스타랍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현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로봇 코엘름과 이를 완강히 거부하는 로봇의 선조 말레우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인간 영주의 이야기 <보편적인 내 엉덩이>


▪︎신들이 채팅GPT 서버 NO. 33 Universe를 드나들며 인간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이야기 <채팅GPT의 신들>


🪽 육아와 간병을 돕고, 굿을 하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고, 심지어 인간의 '눈치'라는 개념까지 학습한 로봇의 이야기라니...! 개인적으로 저와 코드가 정말 잘 맞는 작품이었어요!! 제목이 하나같이 다 특이한데, 그에 걸맞게 글이 진짜 재치 있어요🤩 저는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와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으로>를 가장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처음 두 작품은 육아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더 감명깊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존에 종종 접했던 암울한 분위기의 sf소설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희망차고 발랄한 느낌이었어요. 인간과 로봇이 함께 꾸려나가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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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3 빛 SF 보다 3
단요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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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이 아닐까❞


다채로운 이야기로 독자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sf 앤솔로지 sf보다. 세 번째 테마는 ‘빛’이다. 이번 단편집은 전작인 얼음과 벽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을 요하는 단편들로 인해 개인적으로 쉽게 읽히진 않았지만, 신선한 플롯 덕에 새로운 느낌을 가장 많이 받기도 했다.


✨️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 단요,「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당연히 보야야 할 빛은 보지 못하는, 대개는 보지 못하는 빛을 보는 족속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종교역사학 연구자인 친구와 송전망 관리 기술자인 ‘나’의 대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술이 곰팡이처럼 난무하는, 음침하고 평화로운 31세기. 마지막 남극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냉동된 원시인이 발견된다. 원시인의 유전자를 복원하자 감광성 신경절 세포가 돌연변이임이 밝혀지는데, 그가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에 반응하는 눈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과거 어떤 이들은 열화상 카메라처럼, 색상이나 음영이 아닌 온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상을 구분했으리라는 가설이 제기된다. 


예수가 단지 돌연변이 인간이었다면? 굉장히 파격적이고 발칙하게 느껴지는 소재다. 누군가는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으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 서이제,「굴절과 반사」

지상에서의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해저 도시 생활을 하게 된 인류. 주인공은 교도소의 수감자를 심해로 내려보내 독방에 가두는 일을 한다. 시공 당시 안전성 논란이 있었던 교도소와는 달리 최고의 기술력으로 시공되었다던 해저터널이 무너져버리면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너'는 5년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과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주인공은 한 아이로부터 ‘너’가 인화된 사진과 ‘너’가 보낸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지상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고, 자신은 5년 전 사고 때 물살에 휩쓸려 육지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해저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브로커를 따라 지상으로 올라오라는 말과 함께. 극소수의 연구자에게만 해수면 밖으로 나는 것이 허용되어 있는 세상에서, ‘나’는 지상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이밖에도 ‘빛’을 소재로 상상력 가득한 세계를 보여준 작품들


〰️생체리듬을 무시한 채 수많은 전자 빛에 노출되면서 정작 제대로 된 햇빛은 쬐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을 다룬 _이희영, 「시계탑」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항성계를 배경으로, 영화감독 라블레윤과 그의 작품을 다룬 _서윤빈,「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소고」


〰️법정 밖에서 분쟁을 해결해주는 인공지능 볍률 서비스 기업을 소재로 하여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이점과 우리가 여전히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들을 제시하는 _장강명,「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


〰️변광성 SN 2024B (일명 ‘등대’) 기 자신들을 구원할 빛이라 여기며 등대로의 여정을 시작한 인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정녕 구원의 빛이 맞을까? _위래,「춘우삭래春雨數來」


🔖신은 빛을 창조했지만, 빛은 세계를 창조한다. 빛은 우리를 보게 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세계는 존재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우주는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만큼만 확장된다. _p.7 


🔖빛은 인간을 위한 안배가 아니다. 누구에게서 기원했든, 이런 작품에서 빛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조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_p.196-197


💌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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