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서 상, 중 하의 반을 읽은 지금 몰아보지 말 것을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 몰아서 보니 속된 말로 ...소설 같다. 차별적 언어라 차마 쓰진 못하겠군. 따로따로 보았다면 참 좋았을 작품이 몇 편의 불쾌함으로 인해 참 좋았을...까지 모두 희석되는 상황이라니. 시대적인 차이를 감안하고, 당대 대중소설임을 감안해도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끔찍하다 못해 잔혹해, 책임편집자인 미야베 미유키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작품을을 뽑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대 세이초의 독자가 남성이며, 남성 위주의 소설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의 남자들은 탁월하게 역겨우며, 피해자인척 자기 말을 부풀리며,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탐욕스러우며, 성욕에 들뜬 악녀일 뿐이다. 난 여타까지 잘 살아왔어, 내가 잘못된 건 못된 여성들 때문이야. 그 여성들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알겠고, 어떤 의미인지도 알겠는데, 그의 남성 주인공들이 책을 잡은 손에 힘을 주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는듯.
역겹지? 역겨우라고 만들어진 인물 유형이니까. 그들은 비열하고 비도덕적이고, 탐욕스럽고, 나약하며, 일본 사회의 추악함을 응축한 인물이라고! 그러니까 역겨워도 참아야하고, 역겨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보이는 소위피코, 피해자 코스프레는 진짜 혐오스럽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려지는 여성캐릭터들은 너무나 음울한 악녀의 초상일 뿐이고, 자기 목소리 한 번 지니지 못한 바빌론의 창녀일 뿐이고. 진짜 피해자가 누군데 남성 화자를 피해자로 보이게 하는 구조란.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를 감안해서 이리저리 마이너스 플러스를 하고 읽더라도 참......얼마 전에 읽은 짐승의 길까지 합쳐져서 한숨.
세이초가 왜 위대한 작가고 왜 지금까지 읽히는가를 깨닫게 된 것과는 별개로 몇몇 단편 빼고는 다시는 읽을 일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