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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병사들 -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평점 :
1.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거야? 여자를 강간하고, 어린아이를 죽이고, 전쟁 포로를 학대하고, 사체를 훼손하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웃을 고발하고,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불타는 로마를 구경하는 네로처럼 여유롭게 즐기고, 그러니까 대체 태어날 때부터 뭐가 어떻게 되면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와 같은 질문에 누구든 그럴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하기만 한다면, 나나 당신 역시 별 차이는 없을 테지, 라는 답이 돌아오게 된지는 한참 된 것 같다. 한나 아렌트가 그랬고, 스탠포드 대학교 감옥실험이 그랬고, 나치의 병사들과 같은 연구서들이 그랬다.
2. 서론의 관련 연구사 정리부터 각 쟁점들을 도청 기록에서 이끌어내는 본론 등, 책 자체에서 연구에 들인 품이 느껴진다. 폭력을 만드는 건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역시 괴물을 만들어내는 건 이데올로기가 아니다,라는 주장 자체는 한나 아렌트나, 밀그램, 스텐퍼드 대학교 수감자 실험의 보론일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무척이나 치밀하고 흥미롭다. 이 책은 나치의 병사들이 인류사에 뚝 떨어진 불가해한 악의 응집체가 아니라 전쟁 노동자로서 그의 의미를 다했을 뿐인, 평범한 악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한 전쟁은 그 극단적인 폭력을 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프레임일 뿐 우리의 역사는 항상 극단적인 폭력이 분출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한다.
3. 폭력은 시동이 걸리면 끊임없이 이유를 찾으며 그 폭력에 합리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전쟁의 폭력과 전쟁 외부의 폭력이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 그 메커니즘은 같다. 복수일 수도 있고, 악에 대한 응징일 수도 있다. 폭력은 일어난 일에 대한 합당한 응분으로 작용하는데, 폭력의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는 그 일은 일어날법한 일이었고, 일어나 마땅한 일.
4. 이데올로기는 전시 개인이 저지르는 폭력에서 미미한 자리를 차지한다. 폭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전쟁 그 자체이고, 전쟁, 군대라는 시스템이자 프레임의 결과이다.
5.프레임 바깥에 대한 무지. 제 아무리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도 프레임 안에서는 무지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나, 프레임 안에 갇히면 프레임 외부에 대해 무지해지거나 신경도 쓰지 않게 된다는 이야긴데, 이로서 몇 가지 지난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다. 예를들어 디워 논쟁때 김모 교수님의 "장르영화치고 나쁘지 않았다. 장르영화가 다 그렇지. 디워의 이무기는 여성성으로의 회귀다, 디워에서 아리랑의 선택은 지워진 어머니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등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