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 피카소의 게르니카 걸작의 탄생 4
박수현 글.그림 / 국민서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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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처음 소개받을 땐 어떤 책일지 감이 안잡혔다.

더군다나 평화의 상징을 한다는 게르니카와 피카소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또 피카소는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피카소를 단순히 명화를 그린 화가로 알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그림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한 피카소가 달라보였다.


앞면지, 뒷면지에 보여지는 그림이다. 어쩜 울부짖는 모습이 폭격했던 시간을 알리듯

고통의 모습이다.

평화롭기만 했던 게르니카 지역에 갑작스런 폭격이 시작되었다.

사전 예고도 업고, 이유도 없는 폭격 시민들은 당혹스러움에 고통을 느껴야 했다.

엄마와 시장을 나왔던 어린 페드로의 모습을 통해 전쟁아닌 폭격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려준다.

이 사실을 신문으로 전 세계로 알린 용감한 신문기자가 있었다.

조지 스티어 그는 용감하게 전 세계에 이 끔찍한 광경을 알렸다.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 독재를 위한 폭격이였다.

프랑코 장군의 독재를 도와준 이탈리아, 독일은 손을 더 굳게 잡고 유럽 전체를 불구덩이로

몰아가기 위해 연합했다. 끔찍한 전쟁을 막기 위해 누군가 알려야 한다.

조지 스티어의 게르니카 소식을 접한 피카소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그림이 아닌

게르니카 자체를 알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림의 제목을 게르니카로 정했다. 그리고 게르니카는 세상을 위한 그림이 되도록 그렸다.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통해 게르니카는 사람들에게 보여졌다.

슬픔, 절규, 고통이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쟁의 비극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피카소는 독재자에게 맞서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게르니카를

전세계 나라에 보냈습니다. 피카소는 게르니카 그림이 게르니카로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독재자 프랑코가 죽자 게르니카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 전쟁을 알린 신문기자 조지 스티어는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딴 거리고 생겨

게르니카의 소식을 알려준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그리고 독일정부는 게르니카 폭격에 대해

60년만에 사회를 했습니다.

게르니카의 그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상징하는 그림과 해설이 함께 있어 피카소의

게르니카 전쟁의 슬픔을 더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처음엔 미술작품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인 줄 알고 그림이 웃기고 유령같이 생겼다고 하더니

심각성을 알았는지 아주 진지하게 책을 읽어가네요.

그리고 지난 겨울에 보았던 피카소 미술 전시회를 떠오르며 열심히 피카소 그림에 빠졌답니다.

유명한 명작을 그린 피카소, 자신만의 색깔로 마음대로 사람, 숲, 건물을 표현한 사람이 아닌

오늘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전쟁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아직도 계속 되어지는 슬픔을

이겨 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멋진 평화 운동가로 다시 알게되었다.

피카소의 새로운 면을 보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게르니카의 아픔도 함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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