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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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의 좌절 이후, 공허한 개인의 사랑과 그 개인을 만들어낸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더없이 유려流麗한 문장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유려”같은 단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언어능력에 저주 있으라) 유려한 문장과는 다르게 그들의 사랑은 절실하고 애틋하다기보단,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 같다. 인습과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금기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 말이다. 금기에 대한 저항은 우리의 (일반적이라고 말해지는) 삶의 경계 밖으로 넘어가는 행위와 비슷하다. (금기는 대체로 우리가 뭐가 뭔지 모르는 현상(행위)에 대해 붙여지는 것이니깐) 경계 밖은 미지의 세계, 그것은 “끔찍하게 도려내놓은 듯한 암흑”(8쪽)의 세계일 수도 우리가 여태까지 보지 못한 성스러운 어떤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로 뛰어드는 행위는 어쨌거나 굉장히 용감한 행위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경계 안의 평온을 버리는 일은, 어쩌면 나(K)와 미키(未紀)는 텅 빈 채로 죽음을 맞이하고자 울타리 밖으로 뛰어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위는 충분히 성화(聖化) 될 수도 있겠다. 그들 각자가 경험한 “근친상간˝의 행위는 단순히 무지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선택과 가까운 것이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근친상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 때문이 아니라(사실 이쯤 되면 그런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눈부시게 환상적인 언어표현에서 만들어지는 느낌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들에게 애도를. 경계 속 우리에게도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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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라하시 유미코는 삶의 순간을 언어로 포착해내는 능력이 탁월한 글쓴이이다. 특히 미키의 일기장 부분은 읽으면서 ˝이런 오그라드는 글이 다있어!˝라고 외쳤다. 근데 생각해보면 나에게 “오그라든다˝는 감성은 16세 소녀의 감성이고 그걸 내가 읽고 오그라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결론적으로 쿠라하시 유미코가 글을 잘 쓴 것이다. 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또한 지리하게 길고 긴, ‘현대’의 사랑 방식을 ˝몸속에 심장이 있는 것 같은 존재 방식으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186쪽)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한 작가에게 축복이 있으라. (비교적 짧은 이 소설에 웬만한 장편소설보다 더 많은 플래그를 붙여가 읽었다. 특히 미키를 묘사하는 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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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봤는지에 대한 심심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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