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 - 2014 서점 대상 2위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3
기자라 이즈미 지음, 이수미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이란 입맛을 돋우는 제목의 가벼우면서도 고급스러운 양장본이다!

껍질을 벗겨보면 새하얀 캔버스에 작고 귀여운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다.

친구들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고 친구가 싸준 남은 음식을 가지고 와서 먹고 난 후

커피를 마시며 읽어야 할 듯한 분위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특별할 것도 없고 드라마틱 하거나 격정적이지도 않지만

깊은 고민보다는 포근하고 평화롭게 메마르고 불안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나도 사랑스럽고 따스한 사람이 된 듯한 행복감을 주는 책이다.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초빙한 강신주 씨의 강의가 생각난다.

'음식'을 먹는 것과 '사료'를 먹는 것은 다르다고.

이른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고를 마다치 않는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음식 마주하면서 느끼는 그러한 행복감이 이 책에서는 묻어난다.

평생 대충 허기만 때우는 '사료'만 먹는 사람들도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정성스럽게 대접해주는 음식을 대할 수 있었다면 행복한 것이다.

 

소풍 때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는 정육점에 가서 소고기를 사서 갈아왔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정성껏 한 두 시간씩 초밥을 만들어 그 소고기와 갖은 채소를 넣어서 도저히 혼자서 먹을 수 없는 도시락 서너 개의 양을 만들어 주셨다.

소풍 가서 기죽지 말라는 배려였다.

 

박완서 선생님은 말년에 그러셨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다 부질없는 것이다.

다 짐이 될 뿐이라고.

차라리 밥 한 끼 사는 게 낫다고.

정확히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노년에는 그러한 마음이 강해지셔서 집안의 물건을 자꾸 버리셔서 따님들이 말리셨단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더 해 질수록 수많은 이별을 해야 하고 그럴수록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 소중해진다.

그러한 이별의 아픔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음식이다.

첫 등산길에 차이라는 달콤한 밀크티 차 한잔을.

내려오는 길에 맥주 두 캔을.

카레 내음을 입안 가득히 머금은 귀여운 소녀.

그 소녀와 빵 가게에서 재현하게 되고 빵이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등장한다

한 번 이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다 나열해 봐야겠다.

 

데이트에는 팬 케이크와 핫 케이크가 등장한다.

실연에는 한 개당 오백엔 짜리 최고급 초코렛이 등장한다.

생소해서 무얼까 싶은 음식들도 나온다.

음식점을 해 볼까 하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작고 정갈하고 정성 들여서 만드는 음식점.

언제나 찾아가면 큰소리로 환영을 해 주어서 행복해지고 단골이 되어 매일 찾아가게 되는 음식점들이

일본의 책이나 드라마 영화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누구나 아픔을 갖고 있지만, 옆에는 마음을 품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충만감으로 배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면서 위로가 되는 음식들이 등장한다.

일본 특유의 문화인 것 같다.

이러한 일본의 문화가 그대로 녹아있는 책이다.

겉모양만큼 내용도 케이크의 생크림처럼 부드럽게 넘어가고 포만감으로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실연의 아픔은 사실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흔들어 깨우던 그 새벽은 아직도 선명히 마음에 남아 있다.

할머니와 마지막 대화는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보시더니 고모에게 "얘 밥 차려줘라" 라고 하시던 말씀이셨다.

 

소나기가 내리는 이러한 날씨에 김치전이 생각나는 이유는 김치전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그 분위기가 그리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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