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백범일지
김구 지음, 도진순 엮음 / 돌베개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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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그저 교과의 한 과목으로만 생각하고 지냈었는데 우리 이화여고를 들어오고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보고 또 얼마 전 울 아빠께서  열사와 의사의 차이점을 아느냐는 질문을 하셨었는데 그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거처럼 설명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열사는 정신적인 저항으로 비록 성공하지 못했어도 위대함을 보여주신 분들이고 의사는 주로 무력과 행동으로 큰 업적을 세우신 분들이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
우리 학교에 세워져 있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었다.
백범일지를 읽다 보니 아빠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나고  백범 김구 선생님을  그저 독립운동가라는 위인 중 한 명으로 만 인식하고 살았는데 이런 분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행복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백범은 부유하지 않은 가난한 양반층에서 '김창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고 나와 비슷한 나이인 18세에 갑오농민전쟁에 참가해서 해주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활동하고  교육이나 배움에도 관심을 가지고 봉양 학교를 설립하여 학교장이 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목숨까지 바쳐가며 감옥에 갇혀서 고문을 당할 때도 밤새 열심히 고문하는 고문관을 보며 저 고문관처럼 나라를 위해 꼬박 밤을  세워 수고한 적이 있었는가 스스로 물었다는 선생님.. 그리고 온몸이 바늘방석에 누운 듯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망국노의 근성이 있지 않을까 하여 부끄러운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을 읽었을 때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나라 사랑, 나라 걱정만이 존재하는 분이었다는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어른들이 백범 김구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시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였기 때문이구나 생각이 들고 선생님께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우리나라가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가족 이야기는 백범 김구 선생님 애 대한 연민과 측은함마저 든다.
김구 선생님은 아이가 넷이었는데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어릴 적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장성한 맏아들은 28세에 중경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내도 막내아들 낳은 후 얼마 있다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 막내는 엄마라는 말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더욱더 나라를 잃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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