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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평점 :

소설은 때때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실에 다가갑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바로 그런 소설입니다.
범죄를 다루면서도, 단순히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이 책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 선택의 끝은 어디로 이어졌는가’에 더 집중합니다.
죽음 자체보다, 그 죽음을 둘러싼 침묵과 외면, 망각과 회피에 더 주목하는 이야기.
그래서 읽고 난 뒤, 말없이 오래 머물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이 단편집은 총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작품의 결이 다르고, 등장인물도 배경도 각각 다르지만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분명합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제목과 동일한 표제작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한 소년의 죽음과, 그것을 둘러싼 어른들의 침묵,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마주하게 되는 진실을 다룹니다.
진실을 말할 기회가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
그들이 던지는 말 없는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
독자는 어떤 의미의 ‘공범’이 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글은 격정적이지 않습니다.
침착하고 절제된 문장 속에서,
독자는 오히려 더 깊고 차가운 통증을 경험하게 됩니다.
폭력이나 공포를 직접 묘사하지 않음에도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 어떻게 일상 속에 녹아드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매섭고, 깊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살인을 저지른 사람’보다
‘죽음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태도를 주목한다는 점입니다.
가해자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때론 말하지 않은 자, 무시한 자, 회피한 자도
그 죄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한 문장 속에 단단히 새겨놓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단편이라는 형식 안에서도 작가가 결코 결말을 단정 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처벌을 받지 않고 끝나기도 하고,
어떤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끝맺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여운은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더 오래 떠나지 않습니다.
‘정의’란 무엇인지, ‘진실’은 누구의 것인지,
그 무거운 질문을 소설은 쉽게 풀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이 단편집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합니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13계단』,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등을 통해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입니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더욱 밀도 있는 심리 묘사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짧지만 강력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들을 완성해냈습니다.
정리하자면,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단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닙니다.
삶과 죽음, 진실과 책임, 기억과 침묵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한 번쯤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정의롭지 않은 세계에서,
우리는 끝까지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을 피하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
그것이 바로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