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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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에 왔다. 일주일의 시간을 가족들과 보내며 특별히 한 것은 없다. 그러다 문득, 가족들과 보내는 이 시간 자체가 그 이상으로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를 읽으며 더더욱.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지나간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고등학생인 선우혁과 그의 친구 강도운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장면에서 나 또한 남일같지 않았다. 친구 사이에서도 내가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은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고, 관계란 그렇게 서로의 이면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마냥 웃을 수 없던 부분은 강도운의 왕따 경험이었다. 도운은 왕따를 당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선우혁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위해 이곳에선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덕분에 도깨비바늘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그러나 눈치가 부족했던 도운은 자신에게 이성적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 주희의 마음을 모르고, 그에게도 똑같이 친절하게 대해 오해를 사고 만다. 결과적으로 도운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이댄다는 소문이 퍼지며 그에게는 머리가 셋 달린 괴물, 케로베로스라는 별명이 붙는다.


별명은 보통 타인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나 행동으로 인해 사람마다 나를 이해하는 범위가 다르다. 친구 A가 나를 B라는 별명으로 불렀을 때, 또다른 친구 C는 이 별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고등학생 때 별명이 여럿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다중이', '오덕'이었다. 왜 오덕이냐고 묻는 친구와 다중이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친구가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보여준 이미지가 달랐기 때문이겠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의 도운이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친절한 것만이 정답이라고 여긴 것은 슬프지만 공감됐다. 도운이 모두에게 친절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별명은 치명적일 수 있다. 별명은 그 사람의 일부분일 뿐 전체가 아니다. 별명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강도운이 자신의 과거를 선우혁에게 말하며 혁이 도운의 새로운 면을 보았듯, 앞으로 그들이 서로의 여러가지 모습을 발견하며 나아가길 기대한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가족의 부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선우혁은 13살 터울의 형이 있고, 불의의 사고로 5살 때 그 형을 잃는다. 고1이 된 선우혁이 죽은 형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며 형이란 퍼즐을 맞춰나간다. 책에 간간히 나오는 선우진(혁의 형)이 선우혁에게 보이는 태도는 참 따스했다. 아기 대하듯 때론 친구 대하듯 하는 그 모습에 진이 살아 있었다면 정말 좋은 형이 되었겠다는 생각, 나 또한 8살 터울의 내 동생에게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지금이야 말로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말이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오랜 시간을 건너온 화해를 다룬다. 귤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해송은 진의 죽음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며 귤을 싫어하게 된다. 해송이 귤이 먹고 싶다고 지나가듯 한 말에 선우진은 해송에게 귤을 전해주러 밤 중에 나가고, 그 길에 사고를 당한다. 가장 좋아했던 것이 가장 소중했던 것을 잃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다 부정하고 싶어진다. 선우진의 동생인 선우혁이 마지막에 해송에게 귤을 건네는 장면은 13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서 해송을 치유한다. 선우진과 똑닮은 선우혁이 형의 죽음은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더이상은 그 죄책감을 안고 가지 않기를 바라며 건넨 그 귤이 해송이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를 바란다.


#여름의귤을좋아하세요 #이희영 #창비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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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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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창 바쁜 9월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주 동안은 책 읽을 시간도 모자라는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내서 독서하면 되는 건데, 글자를 보는 게 힘들 정도... 바쁜 게 얼추 끝나고 나니 <네가 있는 요일> 서평의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책은 마지막 몇 장을 남겨두고 있지만 아직 끝까지 읽지 못하고 글을 쓰게 된 것에 양해를 구한다. 서평 마감일 후에라도 이 글에서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다시 작성하도록 하겠다.


<네가 있는 요일>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는 의문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그 중 하나를 적어본다. 나는 시각의 지배를 크게 받는 인간이다보니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보다는 외형이 먼저 생각난다. <네가 있는 세계>처럼 뇌의 데이터를 여러 몸에 옮기면서 그 사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의 현실성(물론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꽤나 미래인 것 같지만)에 의문이 들었다. 나는 김달이나 젤리처럼, 계속해서 여러 신체에 뇌(영혼) 데이터를 옮겨 심으며 복수를 실행하려는 울림에게 협조할 수 있을까? 365(인간7부제를 실시하지 않고 태어났을 때의 신체 그대로 뇌 데이터를 유지하고 사는 사람)와 요일 7부제(신체 하나를 요일마다 7명의 보디메이트들이 돌아가며 오프라인의 삶을 사는 것)를 실시하기 전에는 나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인권의 문제도 있었을테고. 그러나 환경문제가 인권문제를 뛰어 넘을 한참 뒤 미래라면 내가 있기에 세상이 있다는 왕과 같은 마인드는 버리는 편이 나았으리라. 환경부담금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세금을 내면서 무리하게라도 365를 유지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게 힘든 대다수 사람들은 요일 7부제에 참여하면서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내 몸을 잃고 다른 사람의 신체를 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정해진 요일에만 현실의 삶을 산다는 것. 그 외의 요일은 낙원이라든 가상세계에서만 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 말도 안 되는 정책(365, 요일 7부제 등)이 실행되는 사회에 대한 상상력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고 환경보호에도 더 힘써야겠다고 느꼈다. 지구가 있고 우리가 있다는 생각을 잃지 않기로...


<네가 있는 요일>은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있을 법한 일들을 잘 풀어낸 소설인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상상(요일마다 다른 사람이 눈을 뜬다는 건 나도 해본 적 있다)에 여러 디테일을 입혀서 소설이 뜬구름 잡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정교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책을 읽다가 의문이 드는 설정이 생기면 작가님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얼마 안 되어 그 설정에 대한 설명이 등장했다. 그래서 이야기에 몰입이 잘 되었고, 뇌 데이터를 여러 몸에 옮길 수 있다는 설정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새로운 외형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인물들의 개성, 극중에서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벌어지는 역동적인 이야기들, 인권과 환경, 윤리적인 문제들을 다양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네가있는요일 #박소영 #소설Y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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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휴먼스 랜드 창비청소년문학 120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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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휴먼스 랜드>는 머지 않은 미래를 그려낸 소설이다.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이젠 극한호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가 번갈아 나타나고, 어디서는 엘니뇨때문에 올해의 태풍의 규모와 강도가 엄청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자연이, 환경이 인간에게 단단히 화났고 그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노 휴먼스 랜드>는 1차 기후 재난과 2차 기후 재난을 겪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되어 그곳엔 공식적으로 사람이 살 수 없다. 사람이 없으니 자연히 개발은 멈췄고, 자연이 회복되고 나면 그곳에 다시 사람들을 살 수 있게 하겠다는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이주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노 휴먼스 랜드 중 하나인 한국을 조사하기 위해 미아와 한나, 파커, 크리스, 아드리안 총 5명으로 이루어진 조사단이 서울로 향한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아드리안의 죽음, 수상한 크리스의 행동, 파커와 한나의 과거 그리고 시은이라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미아 등 개개인을 둘러싼 여러 사정들이 밝혀진다. 또한 노 휴먼스 랜드, 말 그대로 사람이 없어야 하는 서울에는 불법 거주민이 있었고, 암묵적으로 노 휴먼스 랜드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미아 일행은 알게 된다. 아드리안의 죽음과 크리스의 실종을 겪으며 비밀 연구소의 존재까지 알게 된 미아와 팀원들은 해당 연구소에서 미아 본인 할머니의 옛 동료인 앤 소장의 음모를 듣는다. 앤 소장은 플론(plone)이라는 유전자 편집 식물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불안과 우울이 극심한 사람들을 안정시키는 새로운 향정신성 의약품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204쪽). 마약이나 다름 없는 플론으로 사람이 만들어 내는 모든 종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앤 소장의 목적은 어딘가 뒤틀려 있다. 플론은 '전쟁과 기근, 폭력과 차별, 불평등과 기후 재난 걱정 없이 천년만년 인류가 계속 지구에 존재할 수 있게 할 유일한 방법(217쪽)'이라고 앤 소장은 말한다. 플론에 중독된 인간은 자아 없는 인형과 같다. 자아가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미아는 묻는다.

앤 소장의 음모를 막기 위해 플래그리스라는 단체에서 파견된 빅토리아는 미아에게 시은을 연기하게 하며 노 휴먼스 랜드 조사단을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한 ‘X’다. 그는 연구소에 몰래 잠입해 플론을 뿌리겠다는 앤 소장을 막고자 폭탄을 설치하지만 이 작전은 미아로 인해 실패한다. 폭탄이 터지면 플론에 중독된 피험자들이 전부 죽게 되므로 미아는 폭탄을 들고 밖으로 나와버린다. 미아는 불법 거주민인 채윤의 도움을 받아 연구소 언덕 아래로 폭탄을 던져버리고 폭탄은 제한시간이 되어 터지면서 미아는 의식을 잃는다. 그 후 연구소 근처에 있던 국제연합군이 폭발을 감지하고 사고를 수습한다. 그 과정에서 앤 소장과 그 주변인들은 수감되고, 노 휴먼스 랜드의 불법 거주민에 대해 방관하고 은폐하면서 그들에게 비윤리적 실험을 진행하고 있던 UNCDE(유엔기후재난지구)를 향한 사람들의 시위가 이어진다. 그리고 노 휴먼스 랜드 제도가 폐지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책을 읽으며 두려웠다. 머지 않은 미래, 2050년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는 <노 휴먼스 랜드>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연을 무분별하게 이용하고 파괴하는 행위가 결국은 마약이나 다름 없는 플론을 상상하고 실현하게 하는 인간답지 못한 현실을 낳았다는 것을. 단순히 픽션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논픽션이자 머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살기 힘든 세상이다. 디스토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은 그 때문이겠다. 가까운 미래가 암울하고 희망이 없다고 암시하면서 미리 매를 맞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를 관조하거나 낙관하지 말고, 바꾸겠다고 조금씩 움직이는 것. 아픈 자연과 사회 속에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의문을 품고 행동하는 것이다. 노 휴먼스 랜드를 막는 것은 오로지 그 뿐이다.

※ 이 글은 창비 출판사의 <노 휴먼스 랜드> 소설Y 클럽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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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희 청소기
김보라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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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 때 가장 기다리던 시간은 방학이었다. 아쉬운 건 학교에 가면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들과도 방학이 되면 만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그럴 땐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안녕하세요. OO이 있나요?"로 시작하는 인삿말과 함께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서 몇 시에 만날 건지 정하면 된다. 그마저도 귀찮을 땐 아이들이 주로 모이는 놀이터에 그냥 가보면 적어도 한 명은 그곳에서 마주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그러나 3~4학년쯤 되자 하나 둘씩 폴더나 슬라이드 폰을 가졌음에도 집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방학을 가장 기다렸던 이유도 매일 학교에서만 보던 아이들과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웃고 떠들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조용희 청소기>의 첫 장면은 방학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용희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장면에 등장하는 아이들 모두 친구들과 모여 있거나 어디를 갈지 의논하고 있는 반면, 용희는 어딘가로 홀로 뛰어가고 있다. 누가 용희인지 확실하게 눈에 띈다. 용희의 양옆으론 '방학 특강 접수, 내신완성반 접수, 영어집중반 모집, 수학집중반 모집'을 홍보하는 어른들과 홍보물이 있다. 지방 소도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시골에 가까웠던 지역)에 살았던 내 기억엔 여름이나 겨울방학식 때 교문 앞에서 솜사탕이나 풍선, 병아리, 달고나, 뽑기 등을 팔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신완성반이나 방학 특강 등에 대한 홍보 따윈 없었다. 방학 특강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텔레비전에서 봐야 했던 EBS 방학특강만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용희에게 '내신'이라는 말을 적어도 중학교 때나 가야 접할 수 있는 말인데, 초등학생들에게 학업이 주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용희나 다른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과 대비되어 씁쓸함을 안겨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용희의 방학 계획표는 하루의 3 분의 1이 자는 시간이다. 용희와는 반대로 나는 방학 계획표를 세우면 초등학생에겐 비정상적으로 이른 시간인 6시에 일어난다고 계획을 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실한 방학을 보내고 싶다고 6시에 기상한다고 세웠던 계획을 한 번도 지킨 적은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너무 어른처럼 성실하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 땐 몰랐다.

<조용희 청소기>에는 '조용'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소리가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님이 소리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다.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부터,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 밥이 지어지는 소리, 오토바이나 자동차 엔진 소리, 매미가 우는 소리 등 용희가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책은 이 각각의 소리들에 대한 용희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 강아지가 내는 소리는 둥글고 부드러운 글씨체로 표현하여 용희의 강아지가 마치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용희네 강아지는 순한 기질일 것이라는 짐작까지 하게 한다. 밥이 지어지는 소리는 거칠고 날카롭게 긴 글씨체를 활용하여 치키치키 칙칙거리며 밥이 지어지는 소리와 고소한 향까지 생생한 느낌을 준다.

용희의 방학 목표인 늦잠자기는 이런 다양한 소리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창의력이 풍부한(그림을 보면 상도 받은) 용희는 아이디어를 내서 조용희 청소기를 만든다. 조용희 청소기는 주변의 소리를 흡수해서 조용히 만들어주는 용희만의 발평품이다. 용희는 늦잠자기를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주변 소리를 빨아들이고 소원대로 늦잠자기에 성공한다. (나는 지금도 종종 잠을 깨우는 주변 소음이 사라져서 푹 잘 수 있는 나날을 바라기도 한다.) 잠에서 깬 용희는 강아지가 내는 소리,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 등을 듣지 못한다. 조용희 청소기가 소리를 빨아들인 탓! 용희는 조용희 청소기의 커다란 (풍선처럼 생긴)주머니를 분리하고 세상에 여러 소리들을 돌려준다. 늦잠을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이 가진 소리들을 통해 경험을 키워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걸 용희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조용희 청소기>는 귀엽고 따뜻한 그림과 아이다운 이야기를 통해 어릴 적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포근한 그림책이다. 한편으론 아이가 아이답게 뛰어 놀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모습들, 예를 들면 방학에도 공부나 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다. 늦잠을 자고 싶다는 마음, 주변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용희의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방학이라는 시간이 학기 중에는 아이들이 하지 못했던 여러 경험들을 이뤄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길 다시 한 번 바라본다.

※ 이 글은 창비 출판사의 <조용희 청소기>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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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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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로 마인드맵을 그린다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괴담이겠다. 오죽하면 <학교 괴담>이라는 제목의 만화영화가 있을 정도니. 나 또한 <학교 괴담>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학교와 괴담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크게 느낀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그 만화를 덜덜 떨면서 봤고 무사히 봤다 싶으면 꿈에 귀신이 나와 놀라서 깬 적도 수두룩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뻔한 무서운 이야기일 뿐인데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공포는 배가 됐다. 괴담은, 특히 학교 괴담은 학생이라면 매일 만날 학교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한 환경이 달라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갖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스터디 위드 X>는 여러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고 '스터디 위드 미'와 같은 공부 브이로그, 카톡 감옥, 트위터 일탈 계정 등과 같이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이 모를 수 없는 소재를 끌어왔다. 내가 중학생일 때 카톡이 생겼는데 그때는 친구들과 단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단 정도에 그쳤다.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카톡은 악용하려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 몇 년을 지나오면서 비대면이 일상이 되었고, 그렇기에 카톡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톡 감옥>과 같이 단체 카톡방 속 누군가가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가 맞는지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도상현이 맞는지'를 물었을 때, D가 맞다고 한 것처럼 상대가 긍정하면 더이상 의심하지 않고 긴장의 끈을 풀어버린다. 결국 D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람인지 귀신인지는 끝까지 밝힐 수 없었으나 <카톡 감옥>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학교폭력 문제와 익명성의 위험성이라고 생각한다. '카톡 감옥' 개설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벌주기 위한 누군가(D)의 행동이었고, 이 누군가는 D라는 익명에 가려진 알 수 없는 존재다. '나'는 'D'에 대해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 담임선생님에게라도 물어보아야 했을 것이다. D가 도상현이 맞는지. 오픈채팅이나 인터넷 카페 등 익명성이 보장된 곳에서는 나를 숨길 수 있다. 또,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만연하고 우리로선 그가 정말 누구인지 알 방도가 없으니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수구 아이>를 읽으며 나 또한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에도 일방적인 소문이 따라다니던 아이가 있었고, 나는 그 아이(이하 A)와 6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짝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나도 자연히 A와 짝이 되었다. A를 따라다니던 일방적 소문 중 하나는 A가 머리를 감지 않아서 이가 있고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는데, 짝이 되고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확실했다. 이전에 그 아이와 짝이었던 아이들도 분명히 A의 소문은 사실이 아님을 알았을텐데 아무 말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실은 말로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았던 게 아닐까 싶다. 소문이 사실이 아님은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은 그 아이를 차별하지 않았어!'라고 은근히 나를 치켜 올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때의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A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그냥 A와 교실 안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복도를 같이 걷고 도서관에 함께 가서 책을 읽고 그랬던 게 다였다. 왜냐하면 A와의 시간은 재밌었고 우린 짝이었으니까. 다른 아이들이 걔랑 왜 다니냐고 물으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A랑 다니는 게 재밌으니까. 시간이 지나자 A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이 생겨났고, A가 다가간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짝을 맞이했다. 그저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맞는 아이들과 다녔지만 같은 반에서 웃으며 인사하고 잘 지냈다.


A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A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A에게 어떤 아이였을까? 그 정답을 찾아간다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 아이를 따라다니던 근거 없는 소문들은 6학년이 끝날 때쯤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그 아이 마음에는 그 소문으로 인한 상처가 남아있을테다.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A의 마음에서 상처가 많이 아물었기를 바랄뿐이다.


※ 창비 <스터디 위드 X> 가제본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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