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창비청소년문학 112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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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쯤 신종플루가 발병했을 때 나는 중1이었다. 등교하면 선생님들이 계단마다 서 계셨고 그때마다 멈춰서 체온을 재야 했다. 그 관문을 모두 통과하면 그날의 학교생활이 가능했던 그런 시기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KF94 마스크와 같은 동그랗고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고, 며칠에 한 번씩 몇 반의 누군가가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내 일은 아니지만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는 두려움에 빠졌던 몇 달이었다.
신종플루가 어떻게 사그라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신종플루에 걸렸던 아이는 자기 이름이 다른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두려워했고 매번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 아이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리고 2019년 말, 또다시 도래한 전염병의 시대에 나는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 코로나19가 2009년의 신종플루처럼 몇 달 안에 잠잠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있다. 처음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했을 때 겁에 질려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답답해 보였을지 몰라도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삶이 지루하고 혼자인 편이 나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니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조차 몰랐다.
작년에는 아픈 가족을 떠나보냈다. 병문안은 갈 수 없었다. 병원에서 간병인 1명을 제외하고는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전국적으로 그랬지 싶어 나처럼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한 가족이 여럿 되었을 것이다. 2022년이 되어서는 사실상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고 그것에 해방감을 느꼈나면 그렇지는 않다. 그만큼 확진자 수가 늘어났고, 나같은 겁쟁이는 더욱 겁을 내며 몸 사리기 바빴다.
<페퍼민트>의 세상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프록시모 바이러스라는 것이 세상을 뒤덮었고 그 후 몇 년이 지난 세상을 비추고 있다. 프록시모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 해원과 해일 남매는 부모님이 일을 하는 동안 시안의 집에서 시안의 엄마(해원과 해일은 시안의 엄마를 ‘이모’라고 불렀다.)와 시안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외국에 사는 막내이모를 보러 갔다가 프록시모 바이러스에 걸린 해원과 해일의 엄마는 계약직이라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 바이러스 의심 증상이 있었음에도 이를 숨기고 일상생활을 계속해 나간다. 그렇게 해원과 해일의 엄마는 슈퍼 전파자 N번이 되었고, 해원의 가족은 신상이 털리고 고소를 당하며 삶을 이어나갈 수 없었기에 아무도 몰래 지방으로 도망을 간다.
‘1호’와 ‘슈퍼’는 뒤에 어떤 말이 오느냐에 따라 어감이 확 달라진다. 전파자라는 말이 왔을 때, 그리고 그 1호 전파자나 슈퍼 전파자라는 말이 나에게 해당했을 때 주어지는 무게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서운 것이다. 실제로 엄마 지인의 딸이 내가 사는 지방의 1호 코로나 확진자였다. 엄마의 친구는 지역 병원에서 일하고 계셨는데 병원 사람들의 따끔한 눈길과 친하게 지내던 이웃까지 날카롭게 돌아섰던 그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도 많이들 떠났다고 했다. <페퍼민트>의 해원 가족의 이야기는 현실의 엄마 친구가 겪은 일과 다르지 않았다.
해원과 해일이 매번 시안의 집에 들렀기에 프록시모 바이러스는 시안의 엄마에게 발병하고 뇌손상이라는 후유증을 남기며 시안의 엄마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6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페퍼민트>는 식물인간 상태인 자신의 어머니를 간병하는 시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3인 시안은 같은 고3인 해원과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보편적인 고3의 학생들이 고민하는 진학, 연애, 친구관계 등은 시안에게 먼 나라의 일이다. 교실 칠판을 바라볼 일도 없는 시안은 자신이 주번인지도 모를 만큼 간병만이 자신의 일상이다. <페퍼민트>는 시안과 해원의 파트로 나눠져 진행되는데 시안은 1인칭으로, 해원은 3인칭으로 서술되어 처음에는 시안의 입장에 공감이 되고 가깝게 느껴졌다. 보편적 고3일 뿐인 해원의 고민이 조금은 철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점차 해원의 파트가 늘어나면서 해원의 상황에도 공감이 되었는데 입시와 학원선생님으로부터의 은근한 무시와 압박 등 고3을 지나왔던 사람이라면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독자에게는 공감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시안과 해원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안은 간병하는 삶에 지쳐있었고 해원의 탓이 아닌데도 모든 것을 해원에게로 돌리고 싶어한다. 해원은 고3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시안의 알 수 없는 태도와 식물인간의 된 이모의 상태를 알게 되며 혼란스러워 한다. 시안은 해원에게 엄마의 산소통을 잠궈 주길 부탁했지만 실제로는 시안의 아빠가 산소통을 잠그고 이를 해원이 막아서며 시안의 엄마는 다시 숨을 쉬게 된다.
간병에 지친 보호자가 환자의 목숨을 끊은 사례를 뉴스로 종종 접한다. 그런 뉴스를 접하면 살인은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를 탓할 수만은 없어진다. 간병인이 20년 넘게 환자를 돌보면서 간병이 자신의 몫으로만 돌아가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때를 상상하면 환자의 목숨을 끊은 간병인을 탓해야 할지, 간병을 간병인의 몫으로만 남게 한 사회를 탓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시안은 마지막으로 해원을 만났을 때 영원히 죄인으로 살았을지도 모를 아빠를 말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그들은 카페에서 만나 페퍼민트 차를 마신다. <페퍼민트>의 제목이기도 한 ‘페퍼민트’는 시안의 엄마가 좋아하는 차다. 엄마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기에 페퍼민트 차를 우려 엄마의 입술에 묻혀주는 시안의 행동은 엄마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또, 엄마가 페퍼민트 차 맛을 느끼고 있을 것이란 기대감처럼 언젠가는 엄마가 일어나주길 바라는 마음이 드러난다. 시안은 “서로의 영혼을 해칠 것이다.”라며 해원과 더이상 만나지 않기로 다짐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서로의 영혼을 해쳤을지는 몰라도 해친 영혼이 아물어지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용서와 화해가 바로 페퍼민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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