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아날학파와 엠마뉘엘 라뒤리
하루에 책 한권씩을 읽지는 못하더라도 책 한권 정도와는 안면을 터놓는 게 나대로의 '기본'이다. 오늘의 책으로 고른 건 프랑스의 역사학자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1929- )의 <몽타이유>(길, 2006)이다. 나로선 생소한 이름인데, 아날학파의 대부 페르낭 브로델의 뒤를 이어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근대사를 담당했다고 하니까 걸출한 역사학자라는 것 정도는 알겠다. 하긴 주초에 교보에 들렀다가 신간으로 나온 책을 보고 몇 페이지 넘겨보기는 했지만 대체 어떤 책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제목부터가 알듯 모를 듯한 '몽타이유' 아닌가? 오늘자 경향신문의 서평을 읽어보니 '몽타이유'는 지명이다. 자세한 서평이므로 일독한 연후에 라뒤리의 세계로 한번 빠져보는 것도 그럴 듯한 역사기행이겠다. 중세사는 아직 내게 유혹적이진 않지만, "20세기 서양사학이 거둔 최대 역작의 하나로 평가받는 명저"라고 띄워주니 또 눈길이 안 갈 수도 없지 않은가.
경향신문(06. 11. 25) 중세 이단마을 민중의 삶·운명·神
전세계적으로 지난 20세기의 역사학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학파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뜻 아날학파를 지목하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거기에 속하는 역사가들은 양과 질에서 모두 풍요로운 업적을 산출하며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역사학의 영토를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향력을 반영이라도 하듯 우리나라의 출판계에서도 아날학파의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가들의 저작을 앞다투어 번역 출간했다.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 페르낭 브로델에서 자크 르 고프와 조르주 뒤비를 거쳐 마르크 페로와 로제 샤르티에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날학파 역사가의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지적 호기심과 열의를 가진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외된 한 공백이 있으니 그가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이다. 게다가 그는 한 점 공백이라고 말하기에는 아날학파 내에, 더 나아가 사학사 전반에 너무도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1973년 그가 브로델을 계승하여 99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명성 높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근대사를 담당한 교수였다는 사실은 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한 지표에 불과하다.
66년에 책으로 출간된 그의 박사학위 논문 ‘랑그독의 농민들’은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프랑스 남부 지방의 토지대장에 수록된 방대한 양의 계량적 정보를 분석하여 농업의 성장과 쇠퇴에 거대한 주기가 있음을 밝힌 연구서이다. 토지는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집중되고 분할되는 주기가 있지만, 그 변화는 극히 완만하여 랑그독의 역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였다는 그의 결론은 초기 아날학파 연구 방법론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실로, ‘움직이지 않는 역사’라는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 강연의 제목은 (최소한 초기) 아날학파의 특징인 구조주의 역사학의 면모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구호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라뒤리에게 국제적으로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책이 바로 ‘몽타이유: 중세 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이다. 본디 75년에 발간되었던 책이 30년도 넘어서야 우리글로 소개되니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지만, 최선의 번역자와 출판사를 만나기 위해 걸린 시간이라 자위하며 그 간행을 반긴다. 더구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저서의 실제 내용은 알 수 없는 공백으로 남아있던 아날학파의 한 핵심 인물의 저작을 통해 아날학파의 계보를 실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도 기쁨을 더해준다.
그뿐 아니라 이 책은 아날학파를 넘어서는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인정 받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피터 버크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 책이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와 함께 ‘미시사’를 지식의 지도 위에 올려놓은 저작으로서, 물질문화와 망탈리테(집단무의식)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문화사에 크게 기여했다고 칭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여류 역사가로 여러 면에서 유럽 중세와 근대 초의 역사를 개척한 선구자로 꼽히는 나탈리 데이비스는 자신의 학문 여정을 회고하는 연설에서 자신이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저작을 쓰게 된 계기의 하나가 ‘몽타이유’라는 미시사의 저작이 거둔 성공에서 얻은 자극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1294년부터 1324년까지 프랑스의 남쪽 랑그독 지방 피레네 산맥의 1,300m 고원 지대에 자리한 몽타이유 마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연구서이다. 이 시기에 몽타이유 마을은 카타르파 이단에 물들어 있었다. 카타르파는 물질계를 사악한 신의 피조물인 것으로 간주하는 기독교의 극단적인 이단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빵을 통해 우리 몸에 임한다는 성체성사의 핵심적인 교리마저 부정했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이들을 척결하기 위해 1244년에 십자군을 파견했고, 그 이후 생존한 카타르파의 일부가 피레네 산간 지방으로 도피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후에 교황 베네딕투스 12세가 된 자크 푸르니에가 1317년 몽타이유 마을 근처의 파미에 교구에 주교로 부임했다. 그는 이단재판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을 피의자로 소환했다. 그는 마을의 모든 비밀을 꼬치꼬치 끈덕지게 심문하여 그 내용을 양피지에 정서했다. 라뒤리는 그의 기록을 이용하여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의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모두를 생생하고 정교하게 되살려놓았다. 농경 방식, 집, 다른 마을과의 관계, 세속 권력이나 교회 권력과의 관계와 같은 물질 세계와 신, 운명, 삶, 죽음, 마법, 공간, 시간, 구원, 성(性)과 같은 정신 세계의 모습이 복원된 것이다.
그렇게 복원된 이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 기독교 사회의 엄격한 행동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 마을 사람들의 자유로운 성 관념과 느슨한 성 풍속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14세기에 이르기까지도 기독교의 윤리관은 아직 민중 문화에 깊이 침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몽타이유’의 번역 출간을 계기로 ‘랑그독의 농민들’ ‘로망스의 사육제’를 비롯하여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그의 저작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조한욱|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
06. 11. 25.
P.S. <로망스의 사육제>는 영역본(1979)으로도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