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 컬러판
생떽쥐베리 / 문예출판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때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가슴 설레었던 기억이 있고, 그 후에도 대학때 다시 이 책을 읽었었다. 좀더 많은 생각으로. 그리고 이제 나이 서른에 그동안 꼭한번 원서로 읽고 싶었던 이 책을 원작 그대로 느껴보고 싶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역시 새로웠다. 책이란것은, 늘 그렇지만, 그 감동이 몇년이고 지속되어서 우리 맘을 훈훈하게 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

지금도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그 행성에서 어린왕자가 살고 있을까. 물질과 세속적인 것들로 난무한 이 지구라는 행성에 다시 한번 우리에게 똑바로 살것을 경고하러 오지는 않을까.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그것을 길들이고 벗삼아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이제는 의심스럽기만하다. 그게 세번째로 읽으면서 가장 마음아픈 부분이었고, 내 스스로 반성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늘 어린왕자의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와 어린왕자를 누구보다 흠모하면서 그림을 그렸었다. 지금은 아득하지만, 아직도 내 주변에 어린왕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있을까. 학생들과 만나는 일이 직업인 난 아직 그런 아이들을 만나본적이 없다. 그저 연예인들의 사진이면 모를까.

작은 바램이 있다면, 그런 어린왕자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그런 아이를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의 욕심이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장장 두달 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읽은 책이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묘한 사람을 끄는 힘에 이 책을 사게 되었는데 정작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에코라는 인물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나 박식하던지.

이 책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것은 '연극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나느지를 아는 방법'이라는 단편이었다. 항상 첫부분을 놓치는 한 친구와, 항상 끝부분을 놓쳐 연극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친구의 얘기였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도 둘이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서 궁금증을 해소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 에코가 마지막에 남긴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미 판이 벌어진 뒤에 들어왔다가 남들이 어떻게 될지를 알지 못한 채 판을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는 바로 그 인생처럼 연극을 경험한 셈이다. 혹시 우리는 그런 특권을 누린 자의 풋풋함을 잃게 되는 것을 아닐까?'

에코는 그랬다. 내가 생각하고 결론내리는 것보다 한 발자국 항상 앞서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모두다 이해한건 아니다. 내 무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았기에.

하지만, 단편, 단편을 통해 다는 아니더라도 내가 이해한 부분만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기에 충분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라도 에코라는 이름만으로 망설임없이 책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음 / 살림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흥겨운 음악을 이내 꺼버린다. 너무도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였기에. 양귀자! 아마도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어떤 섬찟함이 강민주를 만들었으리라 생각된다. 강민주! 그여자의 그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차가운 가슴을 난 흠모해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이 정도의 극렬함은 아니라고. 작가의 표현그대로 그녀는 테러리스트이다. 이 사회를 비난하고 힐책하는 이는 너무나 많은 이 사회이지만, 누구의 잘못인지 가리고 잘못을 벌하는 이도, 죄값을 받는 이도 없다. 난 그녀의 가끔씩 변화하는 모습을 사랑하고 싶다.

그녀는 그야말로 바라고, 원하고,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리고 보통사람들과 다르다고 자신하고 자신에게 금지되어진 것들. 누군가 대책없이 불문율로 금지해놓은 일들을 욕망했다. 난 이해할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죽음에 대해선 전적으로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그는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단순히 패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종을 울리고 죽어간 새마냥 우리의 가슴속에 자각하라는 마지막 경고를 내린 셈이다. 목숨을 걸고. 그녀는 평범하지 않았다. 결탄코 그러나 그녀에게 좀더, 아주 조금만 더 일찍 그런 너그러움과 약간의 자기감정이 있었다면, 이성이 감정을 억누룰만큼 더 강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좀더 희망적이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인다.

현대를 사는 인간 모두는 한번쯤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지. 무엇을 얻으며 살아가는지 알 필요가 있다. 우린 주울 사람을 위해 잃을 줄 아는 너그러움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관대하고 남에게는 너무도 냉정하고, 비정하기까지한 사람들이 우리들 자신이 아니던가. 일찌기 공자가 말한 구절이 떠오른다.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고,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으라는 말, 그렇다,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말인것이다. 그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이 사회를 이렇게 흘러가도록 만든 우리 모두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강민주, 그녀는 무죄인 것이다. 그는 여성을 갈망했고, 남성을 증오했지만, 결국 그녀도 알았을 것이다. 이건 모두의 잘못이라는 걸. 그녀를 죽게해준 남기야말로 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래, 그의 말이 옳다, 지신의 변화로 인해 갈등겪고 힘겨워하며, 결국은 세상에 그녀를 드러내 놓는것 보다야 신의 딸이라 자칭하던 그녀를 신에게 돌려주는 편이 옳았다. 우린 아직 이성과 감성을 조화롭게 하는것을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기위해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치애인
신달자 지음 / 자유문학사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백치애인이 있다.그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저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는 바보다, 바보애인이다.-

이 에세이 집을 읽으면서 느낀것이 정말 많았다. 한구절한구절 하나하나가 모두다 내겐 너무도 큰 경험이었기에 함부로 통독할 수 없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아주 천천히 글을 음미하며 아주 오래 읽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그의 너그러움을 배운것 같다.

그는 세상을 낙관적이지만 망상은 아니고, 염세적이나 비관적인 것만이 아닌 그런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는 희망이란 단어를 믿는듯 보였다.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슬프진 않다. 그가 백치가 아니었다면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테니까.

세상이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느껴지는건 작가와 조금이라고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혜린 이야기
이덕희 지음 / 예하 / 1990년 11월
평점 :
품절


그녀의 치열했던 삶과 죽음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여자이었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쩌면 전세계에 다신 존재하지 않을지 모를 그런 인물이었다고 본다. 그녀의 짧은 서른둘의 생애. 인식욕에 사로잡힌 그녀. 끝없이 고뇌하고 침울함과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는 실로 위대했다. 그녀를 닮고 싶다.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이 닮고 싶다. 전혜린, 그녀가 지금 존재하지 않음이 유감이다.

그러나 그녀의 언어는 날, 그리고 독자를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권태는 끔찍하게 증오하고 혐오하던 그녀. 언제나 침묵을 두려워해서 늘 무언가를 지껄이던 그녀. 그녀를 닮아야 한다는 당위감이 날 당황스럽게 한다. [탄호이저 서곡]에 그리고 그릴파르쩌의 작품과 그의 인생에 심취되었던 그녀. 쟝 아제바도, 진정 행운아였단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누군지 모르지만 그를 찾고 싶다. 이덕희씨의 집착을 충분히 알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의 삶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고 난 확신한다.

위의 글을 내가 대학2학년 그러니까 스무살의 나이에 내가 쓴 글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지금 난 서른이다. 전혜린이라는 사람에게 미쳐(?) 난 그녀 이름이 들어간 모든책을 샀고, 읽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책장에는 '죽음'이란 글자가 들어간 모든책들이 함께 꽂혔었다. 고등학교때부터 흠모했기에 서른둘이라는 숫자까지도 예사롭게 지나치지 못했을 정도니까. 이제 그나이, 서른둘이라는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 다시금 그책을 들추고 다시 보면서, 전혜린씨가 추구했던 그 삶이 과연 진짜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 처절함과 절실함은 역시 이해가 되지만, 십년이라는 세월후에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절실함으로 살면될것을 이라는 생각이다. 아마 내가 많이 세월에 닳았거나, 아님 정말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런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난 이제 전혜린이라는 이름의 저서들을 다시 보면서 희망을 읽는다. 그리고 그 대학시절에 느꼈던 염세적이고 우울했던 날들에 대한 단순한 동경이 아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세상을 밝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내가 너무 늙은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