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 이야기
이덕희 지음 / 예하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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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녀의 치열했던 삶과 죽음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여자이었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쩌면 전세계에 다신 존재하지 않을지 모를 그런 인물이었다고 본다. 그녀의 짧은 서른둘의 생애. 인식욕에 사로잡힌 그녀. 끝없이 고뇌하고 침울함과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는 실로 위대했다. 그녀를 닮고 싶다.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이 닮고 싶다. 전혜린, 그녀가 지금 존재하지 않음이 유감이다.

그러나 그녀의 언어는 날, 그리고 독자를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권태는 끔찍하게 증오하고 혐오하던 그녀. 언제나 침묵을 두려워해서 늘 무언가를 지껄이던 그녀. 그녀를 닮아야 한다는 당위감이 날 당황스럽게 한다. [탄호이저 서곡]에 그리고 그릴파르쩌의 작품과 그의 인생에 심취되었던 그녀. 쟝 아제바도, 진정 행운아였단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누군지 모르지만 그를 찾고 싶다. 이덕희씨의 집착을 충분히 알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의 삶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고 난 확신한다.

위의 글을 내가 대학2학년 그러니까 스무살의 나이에 내가 쓴 글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지금 난 서른이다. 전혜린이라는 사람에게 미쳐(?) 난 그녀 이름이 들어간 모든책을 샀고, 읽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책장에는 '죽음'이란 글자가 들어간 모든책들이 함께 꽂혔었다. 고등학교때부터 흠모했기에 서른둘이라는 숫자까지도 예사롭게 지나치지 못했을 정도니까. 이제 그나이, 서른둘이라는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 다시금 그책을 들추고 다시 보면서, 전혜린씨가 추구했던 그 삶이 과연 진짜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 처절함과 절실함은 역시 이해가 되지만, 십년이라는 세월후에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절실함으로 살면될것을 이라는 생각이다. 아마 내가 많이 세월에 닳았거나, 아님 정말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런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난 이제 전혜린이라는 이름의 저서들을 다시 보면서 희망을 읽는다. 그리고 그 대학시절에 느꼈던 염세적이고 우울했던 날들에 대한 단순한 동경이 아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세상을 밝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내가 너무 늙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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