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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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같이 각박한 현실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투명인간이 되고픈 꿈을 꾼다.
내 존재의 속속들이를, 심지어 세포 하나하나까지, 무의식 저편까지 지배하고 있는 듯한 자본주의적 매트릭스.
그 안에서 나의 노동에 생존의 전부를 연계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또 다른 나의 존재.
사회적 관계의 틀 속에서 숨 쉴틈 없이 조여오는 인관관계라는 그물들.

만수씨 주위 사람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이 책의 전개는 그들의 대부분이 투명인간_유령이 되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일제시절 독립운동으로 고초를 그의 할아버지, 패가망신한 가족을 이끌고 화전을 하며 다시 집안을 키운 아버지, 서울와서 가스중독으로 바보가 된 동생,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아들, 기껏 키워놓은 아들에게 친엄마가 아니라서 무시당하는 엄마... 이루 셀 수도 없는 많은 존재들이 만수씨 주면에서 투명인간_ 유령이 되어 갔다.

하지만, 우리의 만수씨는 투명인간_유령이 수십번 되고도 남았을 법한 삶의 굴곡에서도 끊임없이 인간적인 실체이고자 노력했다. 아니, 그게 노력의 산물은 아니라 할 지라도 가족을 중시하는 그의 착한 천성은 훗날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온갖 희생을 다 해가며 실체적 인간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녹록한 세상이던가. 산업화의 거대한 과정 아래에서 공장의 관리직으로 천성 좋던 만수씨는 공장사수의 최후의 칠인으로 남아 주위를 돌보고, 결국에는 거액의 손해배상금까지 물게되는 위기를 겪는다. 이제 드디어 만수씨도 투명인간_유령이 되는 마지막 단계까지 다다른 것이다.

여기서의 반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수씨는 인간적인 실체이길 포기하지 않는다. 상상조차 할 수없는 손해배상액을 갚기 위해 여인숙 같은 벌집 쪽방촌에서 하루 20시간의 초인적 노동을 해 가며, 더더욱 놀랍게도 신장까지 고장나 고생하는 아내에게 매일 미안하다, 고맙다 해가며, 자기 새끼도 아닌 동생의 자폐증 아들과 바보 여동생까지 건사하며 결국 빚을 갚고 7년만에 신용불량에서 해방된다.

이쯤되면 만수씨는 이전에 본 적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로 탄생하는 듯 하다.
그냥 한없이 투명한 인간이다. 투명인간_인간.
한강다리 위에서의 어떤 투명인간과의 대화에서 그는, 자신의 가족 때문에 사는게 죽는 거 보다는 쉽고, 단 한번도 자신의 삶을 포기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과연 그의 삶은 우리에게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성실히 노력해서 어떤 빚이든 다 갚아내는 초인적인 인간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가 그토록 중요시했던 가족 구성원이 하나씩 하나씩 투명인간_ 유령이 되어갈 때 어떻게 그는 그 역경을 다 딛고 인간적 실체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그의 삶의 어떤 부분이든 그가 투명인간_유령이 되었을 기회는 널리고 널렸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유령이 된 투명인간이 아닌 투명한 인간이 되었다. 유령이 아닌 사람은 그들 투명인간들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투명인간_인간들끼리는 서로에게 힘이되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원할때 투명인간이 될 수도 있고 몸의 일부를 투명하게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자유롭기까지!
자본주의로 대별되는 이 각박하고 험한 세상에서 이렇게 자신의 의지로 투명인간_인간이 되는 것.
새로운 존재의 출현이자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한 훌륭한 방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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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금융 사용설명서 - 선물·옵션에서 구조화금융까지 쉽게 설명한 파생금융의 모든 것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11
권오상 지음 / 부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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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 제목을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서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인정하고서라도

이 책 제목 마냥 파생상품을 '어떻게' 사용하면 '돈'을 벌수 있는가에 관한 책인 듯 제목을 뽑는 것은 참 마뜩찮다.

일단의 독자는 책 제목을 보고 관심을 갖기는 하겠지만, 책 제목의 저열함에 비해 가끔 훌륭한 내용의 책을 접하게 될 때는 왠지 저자에게 괜히, 대신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처럼.

 

저자의 특이한 경력부터 시작해, 영미권 투자은행의 전유물처럼 생각되던 파생상품을 순수한 한국 혈통의 저자가 집필한 것이 좀 생경하다. 서브프라임모지기사태, 리먼브라더스사태, 글로벌유동성경색 등 굵직굵직한 탑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저 변방에서 묵묵히 온 힘을 다해 고난의 행군을 해 왔던 한국 금융의 당사자들은 사후에야 그들의 저자들로부터 단지 불친절한 설명을 들어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서 보면 되겠다. 우선 선도, 선물, 옵션 등 델타원 파생상품부터 금융의 연금술이라 부르는 구조화금융까지 파생상품의 기본적인 틀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 둘째 이들 파생상품이 실제로 작동해서 세계경제에 미쳐왔던 파급효과에 대한 역사적 고찰 부분, 마지막으로 파생상품 시장을 주도해 세계경제를 쥐락 펴락해 온 영웅(?)들(투자은행, 설계자)의 흥망성쇠.

 

물론, 내가 분류한 상기 세가지 큰 틀이 이 책의 목차순으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 책 제목을 뽑은 감각 마냥 편집의 틀도 이상하게 중구난방인 점은 저자의 잘못은 아닌 듯 하다.

 

금융에 관심있는 학생들, 실제로 파생상품에 직간접적으로 발을 들이고 있는 일반인들, 특히 이론적인 부분과 실무적인 부분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한 시야 좁은 한국 금융인들에게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저자의 이 책을 보고 감명받은 본인은 「기업은 투자자의 장난감이 아니다」라는 책도 즉시구매해서 설레는 마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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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창비시선 343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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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은 '마음'이 아닌 '거리'가 멀어지는 것

그대에게 이별의 말을 들을 때

내가 익숙했던 모든 것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이별의 말은 공기처럼 공중에 가득 차고

그대와 같이 앉았던 벤치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별의 말을 종일 호흡하겠지

 

당신을 데려다 주던 분당이라는 거리가 아득히 멀게 느껴질테고

자주 들리던 식당과 찻집과 사랑을 나누던 그 곳이

다시 갈 수 없는 먼 거리가 되겠지

 

다시 사랑이란 말을 듣게 되더라도 울진 않을거야

사탕이란 말에도

하지만 당신을 만나던 사당이라는 단어에는 눈물이 날 지도 몰라

 

익숙해 있던 거리의 멀어짐...

그렇게 이별은 나를 밀어내며 먼 곳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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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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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으로 해방, 6.25전쟁, 4.19, 5.16 등을 주로 이야기 하곤 한다. 그렇다면 광주는?  현대사의 일부에 포함시키기에 너무 가까운가? 혹은 너무 사소한 사건인가? 저자는 한국의 지금 이 순간을 광주에서부터 시작한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이미 죽은 시민을 떠나지 못해 죽음을 선택했던 그들과, 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광주의 자식들'이 한국 현대사를 규정짓는 한 세대가 되었다고 한다. 광주항쟁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광주항쟁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완전해 질지도 모른다. 민주화 투쟁, 직선제 개헌, 노동운동,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모두 광주를 매개로 살아 숨쉰다.

저자의 특강 내용을 토대로 엮은 이 책은 실제로 강의 현장에서 듣는 것 이상으로 사실적이다. 그래서 광주도청의 상황, 노무현 전대통령의 장례식 때의 김대중 전대통령의 통곡 장면에서는 차안에서 책을 읽다가도 눈물을 훔쳐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겪게 했을 것이다. 당대를 살아온 사람이 당대의 역사를 전공하는 것이 시간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모순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에 더 풍부한 자료와 관련 과거사 위원회를 거친 경험이 녹아든 강의가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식민지를 거쳐 해방 이후 100년 간의 기득권의 역사에 광주 이후의 민주주의의 역사는 너무도 짧다. 오히려 그들이 잃어버렸다는 10년은 그들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보는 광주의 기억은 그래서인지 잊고 지냈던 만큼이나 더 새롭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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