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허술한 번역이 눈에 띄어 몇가지 짚어봅니다.

주인공 Mackenzie Philips(책에서는 주로 Mack)은 다섯 아이들의 아빠인데 4년 전 아이들과 간 캠핑에서 아동만을 폭행하는 연쇄살인범에 의해 딸을 희생당한 아픔을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책은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겪은 후의 혼수와 환상을 축으로 하여 종교적 계시와 상처, 치료와 용서라는 주제들을 축으로 하여 전개됩니다.,

차가운 얼음비가 내려서 모든 교통, 인적이 두절된 어느 겨울 날을 배경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주인공이 미끄러운 뜰을 지나 우체통으로 가는 장면의 묘사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The ice had magically turned this simple everyday task into a foray against the elements: the raising of his fist in opposition to the brute power of nature and, in an act of defiance, laughing in its face. The fact that no one would notice or care mattered little to him — just the thought made him smile inside.

역서: 얼음비는 불가사의하게도 이 간단한 매일의 업무를 폭풍우에 맞서는 저항운동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자연의 힘에 주먹을 불끈 쥐고 호탕하게 웃었다. 아무도 자기를 보지 못할 것이며, 보더라도 신경 쓰지 않으리라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절로 웃음이 나왔다.

콜론(:)의 의미를 무시하고 번역을 해서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옮기게 되었습니다. 콜론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 하다기 보다는 앞에 나와있는 내용을 부연하고 설명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기호입니다. 여기서 콜론 다음의 문장은 앞 문장, 즉 매일 편지를 가지러 우체통까지 가던 사소한 일상이 지금은 주인공에게 마치 자연의 잔혹한 힘에 시위하기 위해 주먹을 들어 올리는 짓이나, 저항의 행위로써 자연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조롱의 웃음을 웃는 짓처럼 느껴졌다는 의미입니다. 점잖은 가장에서 졸지에 비 오는 날 밖에 나가 날궂이를 하는 미치광이로 바뀐 주인공이 기분이 좋을까요?

제안 번역: 얼음비 때문에 신기하게 이 사소한 일상의 일이 폭풍우에 맞서 저항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연의 잔혹한 힘에 시위하기 위해 주먹을 들어 올리거나, 저항의 행위로써 자연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조롱의 웃음을 웃는 짓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우편물을 가지러 나가든 말든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고 관심도 없을 것이라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문장도 미진한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When you face the force of an ice storm, you don't exactly walk boldly forward in a show of unbridled confidence. Bluster will get you battered. 역서: 얼음 폭풍이 몰아 닥치면 대담하게 걷기가 힘들어지고 세찬 바람에 몸은 지치게 된다.

글쎄요, face를 몰아 닥친다고 의역을 했다고 봐야 하나요? 바람을 face하는 것은 정면으로 맞는 것을 의미하죠. Bluster will get you battered는 ‘허세를 부리면 결국 너만 지치게 된다’ 라고 해석을 해야 하겠구요. 그러면

‘얼음 폭풍이 정면으로 불어 올 때는 거침 없는 자신감을 보이기 위해 꼭 담대하게 앞으로 전진할 일은 아니다. 허세를 부려봤자 자신만 지칠 뿐이다.’

라고 해석을 하는 게 좀 더 본문에 충실한 번역이 아닐까요? 독자가 줄거리만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저자가 세상을 이해하고 서술하는 방식을 함부로 절단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해석은 번역에 종속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의역을 해서 우리 형편에 더 잘 어울리고 독자들에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의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면 rain was now freezing on impact with the frigid ground outside the house(비는 집 밖의 차가운 땅에 부딪치자 마자 얼어붙었다)를 ‘얼음비는 집 앞 마당까지 얼려 놓았다’라고 번역을 해 놓는 것은 독자가 심상의 눈으로 그려볼 수 있는 이미지를 너무 제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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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 부분중 몇 페이지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2장에서 잠이 들기 전 아빠에게 어린 딸들이 질문을 하는 장면입니다.

There was a silence and Mack knew that another question was forming in the darkness.

“Did it really happen?” This time the question was from Kate, obviously interested in the conversation.

“Did what really happen?”

“Did the Indian princess really die? Is the story true?”

번역서:침묵이 흘렀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질문이 들려왔다.

진짜로 있던 일인가요?

이 대화에 흥미를 느낀 케이트의 질문이었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난 거죠? 인디언 공주가 정말로 죽었나요? 그 이야기가 사실이에요?

번역되어 있는 마지막 문장, 즉 큰 딸의 말이 너무 장황하거나 마치 따지는 듯한 말투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그 이유는 아빠의 말 (하이라이트 된 부분)을 딸에게 붙여놓았기 때문입니다. “Mack knew that another question was forming in the darkness.”을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질문이 들려왔다”로 번역을 한 이유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네요. 제 딴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조그만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를 왜 삭제해버린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안 번역: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맥은 어둠가운데서 미시(막내 딸)에게 또 다른 질문거리가 생겨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로 있던 일인가요?” 이번엔 아빠와 미시의 대화에 흥미가 생겼음에 틀림없는 케이트(첫 째 딸)가 질문을 했다. “뭐가 진짜로 있었냐는 거니?” “인디언 공주가 정말로 죽었나요? 그 얘기가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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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unset of brilliant colors and patterns played off the few clouds that had waited in the wings to become central actors in this unique presentation.

역서: 이 굉장한 쇼의 주인공이 되어보려고 옆에서 얼쩡거리던 구름들은 일몰의 찬란한 색채와 모양에 기가 죽고 말았다.

화려한 일몰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문장에서 “Play off”는 “기가 죽다”가 아니라 “반사되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제안 번역: 이 굉장한 쇼의 주인공이 되어보려고 옆에서 얼쩡거리던 구름들에 일몰의 휘황한 색채와 무늬가 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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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k’s heart broke as he understood what this conversation had really been about. He gathered his little girls into his arms and pulled her close. With his own voice a little huskier than usual, he gently replied.

번역서: 맥은 미시의 질문을 듣자마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어린 딸아이를 꼭 껴안고 평상시보다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대답했다.

미시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아빠에게 질문을 해 댄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깨달은 아빠가 어린 것이 혼자 그 어려운 질문에 답을 찾으려 애를 썼을 것을 생각하고 안쓰러움에 가슴이 먹먹해오는 오는 대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보다는 가슴이 아프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 더 낮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건 끝 문장에서 husky는 마음이 짠해 목이 메인 아빠의 목소리이지 “평상시보다 낮은 목소리”는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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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e seriously enjoyed tormenting her older brother about the entire matter, and he would reward her taunting by stomping off to the tent-trailer, all bluster and gripe.

역서: 케이트가 신바람이 나서 오빠의 연애사건을 놀려대자 조시는 동생을 텐트트레일러로 끌고 가서 큰소리로 야단치기도 했다.

Stomp off는 눈을 털거나 아니면 화가 날 때 발을 쾅쾅 내딛는 걸 말합니다. All bluster and gripe는 “큰 소리로 투덜대는”이 적당하겠구요.

제안 번역: 케이트가 신바람이 나서 오빠의 연애사건을 놀려대면 조시는 쿵쿵 발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투덜대면서 텐트트레일러로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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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sponse to the searing pain, he knocked over the stove and griddle and dropped the bowl of pancake batter onto the sandy ground.

역서: 손가락이 타오를 정도로 아픈 나머지 오븐과 철판을 내리치다가 팬케이크 반죽을 모래 바닥에 다 쏟아버렸다.

아빠가 아침을 준비하다가 손을 데어 고통스러워하는 대목입니다. Knock over는 발이나 손으로 쳐서 넘어뜨린다는 뜻이죠. 손가락이 덴 순간 너무 아파서 허둥대다가 발이나 손으로 오븐과 철판을 건드려 넘어뜨렸다는 것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오븐을 내려친다는 것은 뭔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 같군요.

제안 번역: 손가락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몸을 제치다가 오븐과 철판을 넘어뜨렸고 이 바람에 팬케이크 반죽이 모래투성이 땅 바닥에 쏟아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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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에서 삼위일체의 교리는 이해하기 아주 어려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런 만치 그 것을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시키려는 시도들이 많이 행해졌지만 자칫하면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이해, 신학의 용어를 사용하면 이단의 길로 빠지기가 쉽습니다. 가령 원서의 103페이지에 나오는 지문을 한 번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We are not three gods, and we are not talking about one god with three attitudes, like a man who is a husband, father, and worker. I am one God and I am three persons, and each of the three is fully and entirely the one."

여기서는 성부 하나님(소설에서는 Papa라는 흑인 여성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이 성삼위에 관해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있는 그대로 해석을 하면 “우리는 셋의 구별된 신들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한 사람이 남편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일 수도 있고 노동자도 될 수 있는 것처럼 한 하나님이 세가지 직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도 아니야. 나는 하나의 하나님이고 3개의 위격을 가지고 있지. 각각의 위격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전적인 나야.”

정통신학에서의 성삼위 이해, 즉 “성삼위의 셋은 구별되지만 서로 안에 거하시며 분리되지 않는다”는 교리를 저자가 Papa의 입을 빌려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번역서에는

“우리는 세 신이 아니라 세 속성을 가진 하나의 신이죠.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노동자인 한 사람처럼 말이에요. 나는 하나의 하나님이고 또한 세 인격이며 이 셋은 전적으로 하나죠.”

라고 명백히 오역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마주치게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소설의 플롯을 따라 갈 때는 오히려 역서에 번역된 대로 이해를 하는 편이 자연스럽고 편할 수 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연히 저자의 의도하고는 상관이 없는, 아니 자칫하면 저자를 기독교의 이단자로 몰아갈 수 있는 번역임에도 틀림이 없구요. 그 자체로 정합성이 있는 번역작품 또는 이해하기는 좀 어려워도 원문에 충실한 번역작품, 어떤 쪽을 독자들은 원하는 것일까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면 과감히 책의 중추신경과 심장의 위치까지도 바꿔줄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타락”이라고 번역을 했어야 할 곳을 글자 그대로 “천지창조의 붕괴”라고 옮겨 놓는 등 소소한 아쉬움 들도 눈에 띄지만 그 정도를 저자의 의도에 반한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고자 하는 번역이라면, 아니 그것을 떠나서 공연한 오해와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을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좀 더 신중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읽다가 몇 가지 더 첨언하고 싶어서,,

직역이 옳으냐 의역이 옳으냐 아무도 보지 않는 한 구석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정작 역자들은 관심도 없다는 사실.

오두막 한글판을 넘겨보다가 글이 영 어색한 곳에서 눈이 멈췄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집 앞의 선착장으로 마실을 나간 주인공 Mack과 예수님이 나란히 누워 쏟아질듯 눈부시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대화를 한다. 예수님은 Mack에게 성자인 자신과 성령 Sarayu, 성부 Papa의 이름들이 지닌 뜻을 각자의 직능과 함께 설명해준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Mack이 예수님에게 질문을 한다.

172page “그래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마치 전 인류를 대신해서 질문하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 언제나 가려고 했던 그 곳이죠. 우리 사랑과 목적의 바로 한가운데 말이에요.” 다시 침묵이 흐른 후에 그가 대꾸했다. “그것과는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해석만 보면 마치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 나오는 한 소절을 옮겨놓은 것 같다. 성부, 성자, 성령을 논하다가 갑자기 우리를 어디로 데려 갈 거냐, 네가 가려던 곳이다, 그것과는 함께 살 수 있겠다,,,요새말로 “이게 뭥미?”다.

원문을 찾아보니

“So then, where does that leave us?”라는 문장과 “I suppose I can live with that.”이란 문장을 그렇게 번역해 놓았다.

“Where does that leave us?”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colloquial한 표현이다. 한 참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들은 다음에 “그래서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좀 공손히 표현하자면 “그럼 저희는 어찌되는 거죠?”의 의미를 가진 의문문이다. 책에선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삼위의 관계도에서 인간은 어디쯤 있게 되는 거냐 주인공이 묻고 있는 것이다.

질문을 어디로 데려갈 거냐고 시작을 해 놨으니 예수님의 대답도 어디로 데려갈 거라고 해석을 해야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색함이다.

“그것과는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로 뜬금없이 번역한 “I can live with that.”도 상대방의 제안에 대해 “그 정도면 괜찮다”는 만족감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구어표현이다.

제안 번역: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거죠?” 마치 전 인류를 대신해서 질문하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 언제나 있기 원했던 그 곳에 있는 거죠. 우리 사랑과 목적의 바로 한가운데 말이에요.” 다시 침묵이 흐른 후에 그가 대꾸했다. “꽤 괜찮네요.”

나머지는 블로그에서 더,,

http://blog.naver.com/as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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