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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에겐, 로맨틱 - 나를 찾아 떠나는 300일간의 인디아 표류기
하정아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인도’란 내게 있어 그야말로 신비함을 넘어서 벅찬 곳이다. 늘 스스로를 꿈꾸게 만드는 동시에 설레게 하는 곳이다. 언젠가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건만, 어쩐지 인도만큼은 쉽사리 결정짓기가 어렵기만 하다. 작가도 말하지 않았는가. 이것저것 재거나 걱정부터 하게 된다면, 이미 그 여행은 이뤄지지 못한다고 말이다. 인도는 마음먹었을 때 비행기 표부터 끊어야 한단다. 그래야 갈 수 있는 곳이 인도라고. 내 나이도 서른 쯤 되면, 겁 없이 비행기 표부터 끊을 수 있을까. 아님 외려 용기내지 못한 채 나약해 질 것인가. 이 책을 읽고 난 뒤, ‘인도’란 나라는 내게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감동을 주었다. 그와 동시에 내게 손짓하며 부르는 인도의 존재로 며칠은 멍- 해지곤 했다. 그 며칠 간 고민한 것은, 몇 년 안에 인도 여행은 꼭 가야겠다는 결단이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인도 여행에 있어 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길가를 가득 채워주고 있다는 소똥도, 쓰레기도 아닌 바로 벌레들이었다. 벌레만한 바퀴벌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더불어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벌레라고 하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끔찍하게 생각하는 내 입장으로서는 벌레의 존재를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하지만 그 보다 꿈꾸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으니까.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운 가치들이냐, 벌레라는 단 한 가지 끔찍함이냐. 그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당연지사 헤아릴 수 없는 인도의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벌레를 너무 끔찍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둘 사이의 격차가 아주 미미한 정도다.)



  인도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오이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정말 작가의 말처럼 어찌나 깜찍한지. 대한민국 사람들이 오이를 들고 지하철, 버스를 타고 다닌다면 정말 초 깜찍해 질 것 같긴 하다. 아삭 아삭. 상큼한 오이 냄새와 함께. 또한 네팔에서의 하루 한 번의 정전시간의 글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 속에 있는 내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 앉아 달빛에 새어드는 창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다 또 하루는 분위기 있게 촛불을 켜 놓고는 맥주 한 잔하는 것도 좋겠지. 그러다 또 하루는… 그런 어둠 속에 갇혀 대자로 누운 채, 한껏 침묵을 즐기며 스스로의 끝없는 공상에 빠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은 때론 두렵지만, 때론 너무 아름답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늘 환하고 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침묵의 어둠은 익숙하지 않은 거다. 난 종종 저녁에 불을 끄고 누워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홀로 생각에 잠기곤 한다. 늘 그때만큼은 진지한 내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늘 아름다움에 감동받은 건 아니다. 아픔에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인도 릭샤꾼들의 발 사진과 함께 나온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어찌나 가슴이 아파오던지. 작가 말처럼 부모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의 고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우리는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요구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우리의 편안한 이면에는 인도의 릭샤꾼들처럼 열심히 인생을 사는 사람도 많다는 거다.



  그리고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인도에서는 갠지스 강으로 시체를 태워 보낸다고 한다. 익히 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였지만, 새삼스럽게 죽음에 대한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나를 붙잡았다. 최근 죽음과 관련 된 책들을 두루 읽었다. 또한 여러모로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됐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이란 나와 전혀 무관한, 감흥 없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죽음은 삶과 동일선상에 있다. 계속 걷다 보면 죽음은 나오기 마련이다. 그 삶과 죽음을 잇는 선의 길이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지 현재 바로 이 순간,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몇 가지가 있다. 내게 있어 새로운 깨달음과 변화를 가져다 준 내용들. 첫째는, 파리를 쫓는 소년이야기다. 수박을 잘라 파는 아저씨 옆에서 하염없이 파리를 쫓는 소년. 그 소년의 꿈은 후에 수박을 잘라 파는 아저씨가 되고 싶다는 거였다. 작가는 말했다. 아무리 수박이 좋아도, 너 자신을 제일 사랑하고 그 다음이 수박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싶었다. 무슨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아니, 노력을 하고는 있는 걸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안일하게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늘 살아 숨 쉬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지만 정작 내 인생은 너무 건조하고 평범하지 않았나.



  또한 내가 알고 있는 가치관이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너무 획일한 단면을 바라보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옳다고 믿은 채, 단 한차례의 의심도 갖지 않았을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던 글은 “그래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당신이 없으면 이 지구는 당장 불완전해진다는 것. 너무나 불편해진다는 것.” 그래,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가 늘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기를. 아프고 무섭고 험난하고 더러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로맨틱한 인생이지 않은가.



  이 책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인도를 담고 있는 사진이 많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글 자체는 솔직히 말해 별다르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유에 동참하지 못한 글들도 종종 있었달까. 또한 모든 인도 풍경 속에서 그녀의 사랑이야기나 과거가 겹쳐 나오는 통에 다소 흥미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내용만을 보자면, 내게 있어 와 닿았던 글들도 많았다. (위에서도 몇 가지 소개를 했지만. 아,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이 책이 별로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평소 에세이집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편하게 쓴 글이었다. 내가 보기엔 조금 불편해 보이는 글도 있었는데, 외려 그런 글을 편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긴 하다. 아무쪼록, 인도 여행 한 번 잘 다녀왔다. 다음에는 이 사진 속 풍경 안에 서 있는 내 자신을 위하여 오늘도 로맨틱한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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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참을 들여다 보다 - 시인의 눈으로 본 그림 이야기
김형술 지음 / 사문난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무언가를 한참이나 바라보는 일. 그것만큼 애정 섞인 일이 또 있을까.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에는 그 만큼의 관심이 담겨 있으며, 진심이 스며 나오는 동시에 깊이가 배어 나오는 것이다.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그렇게 집중해서 시선을 내어줄 수 있으랴.

  그림, 한참을 들여다 보다. 시인은 하염없이 그림 앞에서 시선을 내어주며 그림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비단 나를 포함해-) 그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인 사람은 무척이나 많았다. 또한 그것을 특별하게 이야기하며, 논하는 글 또한- 하지만 이 책이 그 보다 특이한 것은 ‘시인’이라는 것을 좀 더 강조한 것이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그림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시인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뭐가 다르랴.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직접 글을 읽으며 다시금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시인들은 확실히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 한 단어에도 많은 감정의 응어리를 함축할 수 있는 기묘한 재주가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만큼 그림을 파악하는 능력에도 매력이 듬뿍 묻어나왔다.

  내가 처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흔히 다른 사람들처럼 고흐나 클림트, 피카소 등의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을 접하고 난 후였다. 그 후 여러 모로 전시회를 찾아다니거나, 책을 뒤져 보는 등 다양한 그림을 두루두루 섭렵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큰 매혹을 느끼고 달리의 그림에 충격내지는 감동을 받았다. 또한 뭉크의 그림에도 새로운 감각을 느꼈고, 보테로의 그림에서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느꼈으며, 클림트의 그림에서는 색다른 매력을 갖게 되었다. 최근엔 장 미요트의 추상화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전율을 받았다.

  이처럼 그림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의 향연과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는 늘 새롭게 깨닫는 것이었다. 특히나 나는 추상화나 초현실주의와 같은 그림에 묘한 감정을 받는다. 다른 그림들 보다 내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림은 작가가 치열하게 싸우고 소통하고 고뇌하는 내면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경이롭기까지 하다.

  <자화상을 그리는 일은 제 삶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며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완성해 나가고자 하는 일련이 작업과정이다. -52쪽 중> 자화상을 통해 드러낼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고 싶은 과정이라는 말에 신선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자기 자신의 자화상 그리는 일을 유달리 피했던 클림트 같은 경우는 대체 어떤 심리였을까 싶기도 했다. 문학이 그러하듯, 그 작품 하나 만으로 작가의 많은 심리적인 부분과 환경, 생애 등을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난 책이든, 그림이든 내가 스스로 사유하며 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것들이 좋다. ‘이것은 이러하다.’라는 등의 일반화는 싫다. 작가 스스로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작품에 대해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럴 자격은 오로지 그 작품을 그린 작가뿐이다.

  보고 싶은 전시회가 많은 달에는 5번까지도 전시회를 찾아가곤 한다. 마음에 드는 전시는 몇 번이고 찾아갈 정도로. 그렇지만 별다르게 구미가 당기는 전시가 없는 달은 단 한번도 전시회장을 찾아가지 않는 허한 달도 있다. 그런 달은 어쩐지 안 그래도 허한 가슴이 더 허해지고 쓰린 것 같다. 하지만, 기껏 찾아간 전시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큼 쓰린 고통이 더 있을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나는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그저 예전에 그림을 조금 그렸고, 그림을 너무 좋아하는 것 뿐 그 이상도 아니다. 누구나 그림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과 주관이 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고 느끼는 깊이 또한 누구나 제각각이다. 난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든다. 일반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사유들이 말이다. 이젠 전시회를 찾더라도 조금 더 머무르며 애정 어린 시선을 듬뿍 담아 들여다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그 속에서 내 자신까지 들여다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림과 나 자신에 대해 한 참을 들여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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