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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참을 들여다 보다 - 시인의 눈으로 본 그림 이야기
김형술 지음 / 사문난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무언가를 한참이나 바라보는 일. 그것만큼 애정 섞인 일이 또 있을까.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에는 그 만큼의 관심이 담겨 있으며, 진심이 스며 나오는 동시에 깊이가 배어 나오는 것이다.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그렇게 집중해서 시선을 내어줄 수 있으랴.
그림, 한참을 들여다 보다. 시인은 하염없이 그림 앞에서 시선을 내어주며 그림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비단 나를 포함해-) 그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인 사람은 무척이나 많았다. 또한 그것을 특별하게 이야기하며, 논하는 글 또한- 하지만 이 책이 그 보다 특이한 것은 ‘시인’이라는 것을 좀 더 강조한 것이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그림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시인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뭐가 다르랴.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직접 글을 읽으며 다시금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시인들은 확실히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 한 단어에도 많은 감정의 응어리를 함축할 수 있는 기묘한 재주가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만큼 그림을 파악하는 능력에도 매력이 듬뿍 묻어나왔다.
내가 처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흔히 다른 사람들처럼 고흐나 클림트, 피카소 등의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을 접하고 난 후였다. 그 후 여러 모로 전시회를 찾아다니거나, 책을 뒤져 보는 등 다양한 그림을 두루두루 섭렵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큰 매혹을 느끼고 달리의 그림에 충격내지는 감동을 받았다. 또한 뭉크의 그림에도 새로운 감각을 느꼈고, 보테로의 그림에서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느꼈으며, 클림트의 그림에서는 색다른 매력을 갖게 되었다. 최근엔 장 미요트의 추상화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전율을 받았다.
이처럼 그림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의 향연과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는 늘 새롭게 깨닫는 것이었다. 특히나 나는 추상화나 초현실주의와 같은 그림에 묘한 감정을 받는다. 다른 그림들 보다 내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림은 작가가 치열하게 싸우고 소통하고 고뇌하는 내면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경이롭기까지 하다.
<자화상을 그리는 일은 제 삶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며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완성해 나가고자 하는 일련이 작업과정이다. -52쪽 중> 자화상을 통해 드러낼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고 싶은 과정이라는 말에 신선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자기 자신의 자화상 그리는 일을 유달리 피했던 클림트 같은 경우는 대체 어떤 심리였을까 싶기도 했다. 문학이 그러하듯, 그 작품 하나 만으로 작가의 많은 심리적인 부분과 환경, 생애 등을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난 책이든, 그림이든 내가 스스로 사유하며 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것들이 좋다. ‘이것은 이러하다.’라는 등의 일반화는 싫다. 작가 스스로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작품에 대해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럴 자격은 오로지 그 작품을 그린 작가뿐이다.
보고 싶은 전시회가 많은 달에는 5번까지도 전시회를 찾아가곤 한다. 마음에 드는 전시는 몇 번이고 찾아갈 정도로. 그렇지만 별다르게 구미가 당기는 전시가 없는 달은 단 한번도 전시회장을 찾아가지 않는 허한 달도 있다. 그런 달은 어쩐지 안 그래도 허한 가슴이 더 허해지고 쓰린 것 같다. 하지만, 기껏 찾아간 전시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큼 쓰린 고통이 더 있을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나는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그저 예전에 그림을 조금 그렸고, 그림을 너무 좋아하는 것 뿐 그 이상도 아니다. 누구나 그림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과 주관이 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고 느끼는 깊이 또한 누구나 제각각이다. 난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든다. 일반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사유들이 말이다. 이젠 전시회를 찾더라도 조금 더 머무르며 애정 어린 시선을 듬뿍 담아 들여다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그 속에서 내 자신까지 들여다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림과 나 자신에 대해 한 참을 들여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