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지나가다
조해진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이 도시에 던져진 순간부터 고독과 몰락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청춘이란 그 예정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삶의 매 순간순간이 불가항력의 재난이 박두한 시시각각이라는 것을." 권여선 소설가님이 말하는 이 글귀가 작품 <여름을 지나가다>의 순간순간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고독과 몰락, 상실감과 무기력함으로 짓눌린 인생이라는 삶속에 갇힌 청춘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현재 그대로를 보여준다.

 

글속의 주인공들인 민, 수, 연주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자 바로 내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녹록하지 않은 청춘의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공감되고 그래서 더 서글프기만 하다. 우연치않게 붙어 있는 부동산중개업소의 구인공고를 보고 덜컥 일하게 된 민은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매물로 나온 집에 몰래 들어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을 자신의 삶인 것처럼 만끽하게 된다. 그 짧은 삶이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면 그녀는 다시금 큰 상실감에 빠져든 채 가구점에 들어가 스스로를 달랜다. 처음 민이 우연히 비를 피하기 위해서 들어간 건물 아래 1층 부동산에 붙어 있던 구인공고. 만약 그곳이 다른 가게였다면 그녀의 직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때 민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계획도, 희망도, 포부도, 심지어 예기치 않은 상황에 절망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저 가벼운 내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동전을 던지면 앞 아니면 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삶은 순간의 선택으로 다른 종류의 삶으로 쉽게 빠져든다. 늘 삶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입대를 앞두고 있는 수는 채무자의 신분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우연히 일하던 피씨방에서 주운 지갑의 주인인 박선호라는 신분으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페이스북을 검색해 찾아낸 지갑의 주인인 박선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예정이었다. 수는 그의 페이스북을 계속해서 살펴보며 그의 사진들을 살폈다. 마치 자신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들을 그의 사진을 통해서 투영하는 것처럼. 그것이 수에게는 빛의 통로와 같았다. 자신은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또 다른 주인공인 연주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만 곧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그들의 삶은 위태로운 경계에 머물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기차 칸을 통과하는 승객처럼 단편적인 삶, 끊어질 철로를 달리는 기관사처럼 위험한 삶, 묵묵히 달리는 기차바퀴처럼 고단한 삶. 세계는 거듭 폐허이며, 그들에게는 작은 피난처라도 필요하다. 아무리 허약하고 위태롭더라도 눈물겹게 그것이 갈급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쉴 수 있는 피난처가 없고 목적지가 불분명하며 어둑한 공간에 놓여 있다. 마치 우리 청춘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그래서 그들을 지켜보는 일이 더욱 눈물겹게 슬프고 가슴 아프기만 하다. 눅눅하고 위태로운, 상실감과 쓸쓸함으로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면, 그들에게도 시원하고 눈부신 가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계절이 지나가듯 그들에게도 고통과 아픔 뒤에 기쁨과 행복이 찾아오기를. 우리네 청춘들에게도 눈물 겨운 아픔보다 푸르르고 눈부신 꿈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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